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대통령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활극을 찍는 영화세트 장면으로 연출한 설치조각 신작 ‘쇼는 계속 되어야한다’. ‘김정운’이 돈가방 든 친구 ‘또람프’를 금전갈등 끝에 총으로 쏘아 사살한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형상화한 팩션 조형물이다.
‘우린 무엇을 위해 사는가?…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네’
록그룹 퀸의 요절한 노래꾼 프레디 머큐리가 부른 최후 명곡 <쇼는 계속 되어야 해(The show must go on)>의 가사가 비장하게 울려 퍼지는 전시장. 그런데, 들머리 바닥엔 방울 등 번쩍거리는 레드카펫이 깔리고 그 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본뜬 주검이 쓰러져 있다. 돈가방과 가방에서 쏟아진 100달러 짜리 지폐들이 흩어진 모습도 보인다. 뒤쪽에 주검을 내려다보는 또다른 인물상이 있으니 바로 권총을 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돈 빌리는 문제로 시비를 벌이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쏘아 숨지게 하는 가상의 장면을 펼쳐놓은 것이다.
13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전시실에 펼쳐진 조각가 임영선(59)씨의 신작전은 코믹하면서도 섬뜩한 활극의 뒤끝을 내보인다. 프레디의 노래와 같은 제목을 단 이 작품은 일종의 팩션(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것) 조각. ‘김정운’이 돈 많은 친구 ‘또람프’에게 이자까지 쳐서 돈을 빌렸으나 차용 계약서를 놓고 시비를 벌이다 격분해 사살한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재현했다. 촬영기재인 마이크와 카메라, 반사등을 두 인물 주위에 설치하고 맨 뒤쪽 벽에는 노래 제목을 단 네온사인까지 반짝거리게 해놓아 컬트영화를 찍는 듯한 세트장 분위기를 냈다. 작가는 비핵화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두 정상의 실제 상황을 친구 사이의 갈등으로 패러디하면서도 실제 인물처럼 극히 정교한 합성수지 인물상의 세부 표현을 통해 살육의 갈등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한 은유도 던진다.
작가는 80년대 이래로 인간의 존재조건이나 시대를 비판하는 ‘이야기 조각’ ‘연출 조각”의 길을 걸어왔다. 전통 조각과는 맥락이 전혀 다른 고무, 옷, 카펫, 발광소자 같은 이질적인 재료와 사운드아트, 첨단 영상기술 등을 결합시킨 형상 조형물이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요소다. 15년만에 마련한 신작전에서는 북미관계, 난민, 글로벌 자본 등의 거시적인 세계적 현안들을 비디오아트와 조형물의 결합 등을 통해 영화나 연극 무대처럼 풀어냈다. 20개의 화면에 세계 각국 지도자의 입만 클로즈업하면서 연설 육성과 국가가 흘러나오는 영상설치물 <은닉된 재산>, 이름없는 민중의 얼굴을 형상화한 50여 개의 남녀노소 백자 두상(<피안의 땅>) 등은 재료와 형식을 넘어 예술가의 존재 방식 자체를 되묻고 성찰한다. 극사실적인 표현과 황당한 풍자적 상황이 부딪히며 빚는 허망감이 감상의 또다른 묘미다. 19일까지. (02)580-13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임영선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