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전에 나온 80여년전 딜쿠샤 건물의 사진. 1920년대 후반 봄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앨버트 테일러의 옛 소장품으로 그의 손녀 제니퍼가 최근 기증한 것이다.
올해로 96살이 되는 서울 인왕산 언덕배기의 붉은 벽돌집은 80여년전 낡은 사진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옆 자리엔 그 시절 그 집 안에서 푸른눈의 외국인 가족들이 썼던 식기들과 벽난로, 그리고 함께 삶을 나누었던 조선인들의 정겨운 얼굴이 담긴 초상들이 나와있었다.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의 기증유물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에서 색다른 기록과 사진들로 만날 수 있는 이 벽돌집은 종로구 행촌동에 남아있는 근대가옥 `딜쿠샤‘다. 건물 이름은 힌디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지녔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금광을 운영했고 언론인으로 3.1운동의 실상을 널리 세계에 알렸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원래 주인이었다. 그가 1923~24년 지어 딜쿠샤라고 명명한 뒤 초석에 새기고, 그뒤 18년을 부인, 자식들과 살았던 건물이다. 전시장엔 이땅과 숙명적인 인연을 맺은 앨버트 부부가 딜쿠샤에서 꾸린 삶을 중심으로 그들이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인 1942년 추방되기까지의 곡절이 먼저 풀려나온다. 해방 뒤 앨버트가 미국서 숨지자 부인이 유해를 거두어 1948년 국내 양화진 묘지에 안장하고 다시 미국에 돌아간 뒤 50년이상 묻혔다가 2006년 아들 브루스 테일러의 방문으로 다시 인연을 찾게된 과정, 2015년 브루스가 타계한 뒤 그의 딸 제니퍼 테일러가 2016년 다시 딜쿠샤를 찾아와 선친이 간직했던 관련 자료와 유물 1000여점을 기증하기까지의 과정 등이 기증유물 300여점과 함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우리가 명절이면 고향집으로 돌아가거나 그곳을 떠올리듯, 앨버트 사후 50여년간 그의 후손들이 `딜쿠샤‘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옛 삶터를 찾으려 묵묵히 노력한 의지와 일념을 전시는 담담하게 전달한다. 전시 제목이 된 앨버트 부인 메리의 딜쿠샤 시절 회고록 <호박목걸이>의 원고뭉치들과 결혼 때 실제로 선물받은 호박목걸이, 2016년 후손 제니퍼가 부친 브루스의 뼛가루를 들고 방한해 행촌동 딜쿠샤와 그 옆 은행나무에 눈물 흘리며 뿌리는 동영상은 숙연한 감동을 전해준다.
‘백제의 집’ 전에 나온 한성백제 시대의 숫막새 기와들. 동전무늬, 풀꽃 무늬 등 다양한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마음 따뜻해지는 ‘딜쿠샤…‘전 외에도 올해 설 명절에는 집을 화두로 삼은 특별한 전시들이 여럿 보인다.한성백제역사박물관의 특별전 ‘백제의 집’에서는 부뚜막 움집, 벽주건물, 사찰, 왕궁의 문양기와, 당당한 대형 치미(장식 기와) 등을 통해 절제된 조형미를 추구했던 백제 건축의 숨은 매력을 엿볼 수 있다.국립고궁박물관의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전은 유럽의 소국이지만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웠던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화려한 궁궐 안에 소장했던 호화스러운 장식공예품 컬렉션을 보여준다.나전장식처럼 색돌을 일일이 붙여 정교한 풍경과 문양을 빚어내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의 예술가구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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