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위태로운 대치 속에 칼날같은 이념의 선 위에 섰던 그들. 햇볕 한줌도 서글픈 감옥에서 기약 없이 필선을 그었던 그들. 류낙진·박성준·석달윤·신영복·안승억·오병철·이구영·이명직·이준태 등 장기수 출신 9명 서예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펼쳐진다.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재단 사람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 ‘선(線) 위에 선(立)’은 옥중에서 글씨를 배우고 쓰면서 역사의 무게를 감내했던 이들의 자취를 만나는 자리다. 1990년대 인권운동사랑방이 기금 마련을 위해 장기수들의 붓글씨 작품을 대거 모아 선보인 적이 있으나 적당한 기회를 찾지 못하고 남은 작품들은 인권운동사랑방이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이삿짐과 함께 섞여 운명을 같이해왔다. 그동안 류낙진·신영복·이구영·이명직 등은 고인이 되었다. 이번에 전시장에 나온 50여점의 글씨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뜬 사람들의 작품, 옥에서 쓴 것과 출소 뒤의 작품들이 섞여 있어 감회가 깊다.
붓글씨 주인의 인생엔 곡절많은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휘감겨 있다. 감옥에서 신영복·이명직 등에게 글씨와 한학을 가르쳤던 이구영은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항일운동을 벌였고,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1958년 대남공작원 교육을 받고 남파된 그는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에게 붙잡혀 22년동안 수감 생활을 했으며, 출소 후엔 이문학회를 열어 한학교육에 힘썼다. 의병가문 출신인 그는 호서 지방의 의병 자료집을 엮기도 했다. 칠순의 나이에도 붓의 펄떡이는 힘이 살아 있는 1991년작 <자천우지>(自天佑之·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는 뜻)는 “자신의 일생에 시대를 담아낸 정직함을 사신 분”(신영복)이라는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가까이 복역한 신영복·박성준·오병철, 간첩단 공작에 얽혔다가 28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석달윤, 대남공작원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이명직 등의 작품을 바라보면, 분노와 억울함, 절망이 저 정갈한 글씨로 담기기까지 얼마나 스스로를 곧추세우려 애썼을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문근영 배우의 외조부인 류낙진이 쓴 ‘좋은 쇠는 뜨거운 화로에서 백번 단련된 다음에 나온다’는 뜻의 ‘백련강’(百練剛·1990), 박성준의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지 혼자 무력함에 부대끼고 부대끼다가/어디 한군데로 나자빠져 있다가/알맞은 바람 만나/살며시 더운 가슴/그 사랑을 알겠느냐”(이성부의 시 ‘누룩’·1978) 등은 옷깃을 다시 여미게 만든다. 신영복이 출소 전인 1986년 쓴 ‘회우보인’(會友輔仁·벗을 모아 어짐을 더한다는 뜻)도 반갑다. 30일까지 서울 관훈동 라이프러리 아카이브. (02)363-5855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신영복의 ‘한겨레 한나라’(옥중작·연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