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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팔순 연출’의 50년 기다림…“고도는 아직도 오지 않았죠”

등록 2019-05-03 06:59수정 2019-05-03 07:17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임영웅 산울림 대표
1969년 초연…50년간 1500여회
극단 ‘산울림’ 있게 한 작품 재공연
46년만에 명동예술극장 무대

“정의되지 않은 ‘고도’의 의미…
관객에게 공감과 희망 심어줘
연극이란 사람을 그리는 것”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임영웅 연출.  극단 산울림 제공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임영웅 연출. 극단 산울림 제공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올해로 초연된 지 50주년을 맞았다.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어느 시골길에서 방랑객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부질없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이 작품은 한국 연극 최초로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1989년)에 초청받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1500여회 공연되며 22만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다.

초연 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준비 중이다. 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이 재공연되고, 7~25일에는 연극을 연출한 한국 연극의 거목 임영웅(83) 극단 산울림 대표의 연극인생을 조명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전’이 열린다. 임 대표의 딸인 임수진 산울림소극장 극장장은 지난 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버지가 많은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한국 연극의 역사를 이끌어오셨구나 하는 걸 행사를 준비하며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사 피디와 신문기자 생활을 한 임 대표는 1955년 <사육신> 연출로 데뷔했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여겨지는 <살짜기 옵서예>(1966년)를 비롯해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1991년) 등을 만들며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노환으로 몸이 편치 않음에도 이번 연극 연출도 직접 나섰다. 임 대표는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비결로 “보편적인 메시지”를 꼽았다. “살면서 누구나 뭔가를 절실하게 기다리게 되고, 그게 오지 않으면 절망했다가도 또 기다리게 되잖아요. 처음 읽었을 때는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누구나 느껴본 기다림과 절박함, 희망과 절망을 건드린 거죠.”

1969년 초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 제공
1969년 초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 제공
1969년에 350석 규모의 한국일보 다목적홀 개관 기념 공연으로 이 작품을 준비할 때만 해도 내용도 어렵고 작품을 쓴 사뮈엘 베케트가 잘 알려지지도 않아 흥행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공연 일주일 전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 천운이 됐다. 공연 시작 전에 입석 표까지 매진됐고, 연장 공연도 했다. “이 낯선 연극을 어떻게 전하나 했는데 운명이라는 말밖에 설명할 수가 없어요.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부담도 되고 그랬죠.”

연극의 인기로 극단 산울림이 창단했고, 1973년에는 대극장인 현재의 명동예술극장 무대에도 올렸다. 이후 홍대 앞 산울림소극장에서 올려왔는데 이번 기념공연은 46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큰 변화는 없고 대극장으로 오니 무대장치와 동선이 극장 규모에 맞게 좀 커졌어요. 넓은 공간에서 보니까 인물들이 더 고독해 보이고 주변이 더 황량해 보이긴 하네요. 예전 무대에 다시 오르니 긴장도 되고 감회도 새로워요.”

정동환·안석환·김명국·박용수 등 지난 50년간 이 작품을 함께 했던 배우들도 다시 참여한다. 임 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시간씩 배우들 디렉팅도 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쉽지가 않다”며 “워낙 이 작품을 잘 아는 배우들이라 알아서 잘들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연출적인 변화는 별로 없지만 ‘고도’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연출가가 생각하는 고도의 의미를 묻자 임 대표는 “작가도 고도가 뭔지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다”며 “그걸 하나로 정해버리면 관객들의 공감도 제한될 것 같다”고 했다. “종교인들한테는 신일 거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석방일 거고, 어렸을 때 가진 꿈일 수도 있고, 또 연극인들한테는 관객일 수도 있어요. 누구나 각자 의지하고 싶은 대상과 기다리는 고도가 있는 거고, 안 올 줄 알면서도 또 언젠가는 올 거라는 희망이 있는 거죠. 나한테 고도라면, 정말 하고 싶은 연극을 다른 걱정 없이 해볼 수 있는 환경 같은 거랄까. 물론 아직 안 왔고, 언제 올지도 모르죠.”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 자리한 산울림소극장. 극단 산울림 제공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 자리한 산울림소극장. 극단 산울림 제공
1985년, 홍대 앞에 있던 살던 집을 허물고 산울림소극장을 세웠다. 연극을 그만해야 하나 생각할 만큼 힘든 시기에 내렸던 결정인데 임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결정이었다”며 웃었다. 2012년부터 극장은 딸이, 극단 산울림은 아들 임수현 예술감독이 맡고 있다. 임 대표는 고생스러운 극장 운영을 남에게 맡기기 힘들었다고 한다. “극장 운영이란 게 워낙 힘든 거라 가족이 아니고서는 그걸 감당할 사람이 있을 거 같지가 않았어요. 마침 아이들이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어서 가족회의를 했죠. 애들이 이걸 이어나갈 생각이 있는지 의견을 듣고 맡겼어요. 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다가 정 힘들면 그때 또 생각해봐야죠.”

임 대표는 늘 “연극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라고 얘기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말이나 글이 없었을 때도 연극은 있었어요. 인간의 인생처럼 매일매일 사람들과 부딪히며 공연을 올리는 것이 연극만이 주는 매력이죠. 그런 공감을 주는 연극을 올리고 싶었는데 얼마나 이뤄졌는지 모르죠. 후회는 없어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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