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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신구의 크리스마스캐롤’ 뮤지컬 연습 현장

등록 2005-12-21 17:45수정 2005-12-22 14:06

[100℃르포] “좋아, 아주 좋아 꼬마들이 좋아”
“연기생활 43년만에…이렇게 많은 아이들과 때로 출연하긴 처음이야”

“오늘, 밤 12시는 넘어야 끝나겠는데?”

배우 신구(69)씨가 심드렁한 말투로 내뱉었다. 지난 14일 오후 6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3층. 신씨가 ‘스크루지 영감’으로 출연하는 뮤지컬 <신구의 크리스마스캐럴>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날은 연습실을 떠나 처음으로 무대를 밟아보는 날이다.

연습실 한켠에서는 ‘군기반장’ 임철형(뮤지컬 배우)씨가 아이들을 으르고 있다.

연습실 한켠에선 “군기확립”

“무대에 가면 지켜야 할 예의가 있어. 뭐 먹는다든지, 껌 같은 걸 씹다가 어디다 붙여놓는다든지 하다가 걸리면 삼춘이 안 봐줄꺼야.”

유치원생부터 뮤지컬 전문 배우까지 수십명이 함께 하다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할밖에. 일곱살 지은이는 딴 짓을 하다가 또 야단을 맞았다.

“야, 지은이 쟤 제일 앞에다 앉혀. 쟤만 집중하면 다 알아들어.” 임씨의 ‘군기확립’은 계속됐다. “괜한 일 가지고 분위기 험악해지면 정작 무대에서 표정도 안 살아요. 잠깐 하더라도 제대로 하자고, 알았지?” “예.”


성인 배우 한 사람당 어린이 배우 하나씩을 ‘배당받아’ 1층 무대로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무대 리허설은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시작했다. ‘꼬마 배우들’을 가르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신씨는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 하는 걸 지켜보는 시간이 많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거에요. 처음엔 이걸 어떻게 무대에 올리나 싶었는데 말이야.” 말꼬리가 올라가는, 신씨 특유의 빠른 말투가 이어졌다. “꼬마들이 따라서 하려고 애쓰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웃기고 뭐 그렇지.”

아이들 짝 배당하는데 30분

연기인생 43년 만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과 떼로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너나 걱정하세요” 등의 시에프(CF) 유행어로 어린이들 사이에서 벼락 스타가 된 덕분이다.

“꼬마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구. 전에는 없던 일이지. 아주 좋아. 꼬마들 하고 같이 자주 연극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신씨는 요즘 8개월짜리 손자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뒤집고, 일어나려고 낑낑대고. 해맑은 웃음이 좋아. 예전엔 손자 자랑하는 친구 녀석들 팔불출이라고 놀렸는데, 아 그게 안 그렇더라구. 걔하고 같이 있으면 다 잊어버려. 내가 외려 위안을 받지.”

무대에서는 ‘못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세트가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처음 본 꼬마 배우들은 “와, 예쁘다”며 탄성을 질렀다. 임철형씨의 ‘군기 확립’은 계속됐다. “똑바로 앉아! 엉덩이 의자에 딱 붙이고.”

“안쓰럽고 귀엽고 웃기고…”

조명이 꺼지자 촛불을 든 출연자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맞춰 천천히 무대에 올랐다. 십자가 대형으로 정렬해야 하는데 무대 뒤쪽의 장막 때문에 여의치 않다. 연습이 중단됐다.

“십자가가 안 만들어지잖아. 앞으로 두 발짝 더 나와봐.” 연출가 강대진씨가 마이크로 지시하자 맨 앞에선 아이들이 앞으로 내디뎠다. 오케스트라 피트 ‘절벽’ 위에 선 셈이다. “어 위험한데.” 객석에서 꼬마들을 지켜보고 있던 신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절벽 위에 서 있는 지은이는 그 와중에도 객석의 엄마한테 아는 체를 하느라 바빴다.

연출가가 무대에 올라와 상황을 정리한 뒤에야 연습은 재개됐다. 이번 노래는 <징글벨>이다. 지은이를 비롯한 꼬마 배우들의 앙증맞은 춤이 귀엽다. 신씨는 어느새 무대로 올라가 연기할 준비를 했다.

“빌어먹을 놈들 처먹고 할일이 없으니까.” 스크루지 영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보다 두배는 큰 것 같다.


문에 문고리 장식을 달지 말지, 난로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프레드가 스크루지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속도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들로 진행은 무척 더뎠다. 연습은 또 중단됐다.

무대 뒤편 분장실. “오늘 한 2~3시는 돼야 끝나겠는 걸.” 신씨는 예의 심드렁한 말투로 끝날 시간을 수정했다. 옆에서 뮤지컬 배우 임병욱씨가 신구 예찬론을 폈다.

무대팀 연말특수라 워낙 바빠

“거의 신구 선생님 모노드라마에요. 대사가 제일 많은데, 대본은 제일 먼저 떼셨죠.” 칭찬을 받은 신씨는 시비 걸듯 대꾸했다. “외우지 않으면 무슨 방법이 있나? 방법 있으면 뭣 하러 외우나?”

꼬마 배우들이 대기하고 있는 분장실에선 지은이를 둘러싼 삼각관계가 화제였다. 지은이가 배우 성두섭(23)씨와 박진수(21)씨 중 “누구와 결혼할 지 마음을 못 정해”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8시40분, 신씨의 예상을 뒤엎고 연습은 훨씬 빨리 ‘중단’됐다. 세트가 완성되지 않아서였다. 연말 특수라 무대팀이 워낙 바쁜 탓. 무대 뒤편은 망치질 소리, 톱질 소리 사이로 퀴퀴한 먼지가 자욱했다. 객석의 즐거움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있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성남아트센터에서 25일까지. (02)3448-2285.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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