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8가’를 부른 가수 손현숙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기타를 들고 서 있다. 손씨는 최근 발매한 앨범을 중심으로 다음달 2일부터 첫 단독 콘서트를 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는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 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워~’
90년대를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는 민중가요, ‘청계천 8가’다. 민중가요의 전설적인 곡 가운데 하나인 ‘청계천 8가’를 부른 그룹 ‘천지인’의 보컬 손현숙이 10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왔다. <노래이야기2>라는 새 앨범을 들고 다음 달 2일에는 홍대 인근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연다.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그와 마주했다.
“힙합과 포크가 결합했으니, 힙폭이라 부르면 어떨까요?” 이번 앨범의 새로운 점을 한마디로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누가 30년 전, 민중가요에 록음악을 도입해 새바람을 일으켰던 ‘천지인’ 보컬 아니랄까 봐, 손현숙은 이번에도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랩을 많이 듣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고등래퍼>, <쇼미더머니> 같은 랩 배틀 프로그램도 많이 보다 보니 저도 좋아하게 됐어요. 그래서 노래에 내레이션이 아닌 랩을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제가 쓴 가사를 신예 래퍼인 이상민씨가 랩으로 만들어줬어요. 힙합과 포크도 꽤 잘 어울리지 않나요?”
잔잔하게 흐르는 포크 멜로디에 랩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이번 앨범 속 ‘암태아들 영기’라는 곡은 이런 시도를 잘 보여준다. 가사도 심금을 울린다. 손현숙이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직접 가사를 썼기 때문이다.
‘자식들 위해 손수/ 삼계탕을 끓일 줄 알았던/ 아낼 위해 빨래와/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던/ 힘겹게 살았던 55세 다가온 정년퇴직/ 건강한 중년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최후 당신이 선택한 직업은/ 아파트 경비원’
“아버지는 섬에서 나와 서울에서 정착했어요. 어렵지만 성실하게 잘 살아오셨죠. 그러다가 55살에 정년퇴직을 하셨는데, 너무 건장하신 거죠. 그래서 경비 일을 하셨어요. 열심히 살다 가신 아버지를 위한 추모의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짧지만 개인의 전기”와도 같은 이 노래에 팬들이 많은 공감을 해줘서 기뻤다고 했다.
‘청계천 8가’를 부른 가수 손현숙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기타를 들고 서 있다. 손씨는 최근 발매한 앨범을 중심으로 다음달 2일부터 첫 단독 콘서트를 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렇게 대단한 열정을 어떻게 10년이나 참았을까?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1995~1996년 그룹 ‘천지인’의 보컬 활동에 이어 1998년 1집 <아름다운 약속>을 발표하며 대중가수로 첫발을 내디뎠던 손현숙은 2004년 2집 <그대였군요>를 발표하고 포크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7년 싱글 음반 <노래이야기1―문답무용>을 내고 얼마 안 돼 중국 베이징으로 떠났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 때문이었다. 기약 없이 떠난 외국 생활은 베이징에서 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6년으로 이어졌다.
“베이징에 간 뒤 아이도 생겼어요. 이렇게 (음악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그때 좀 더 잘할걸 아쉬움도 남았어요. 그런 아쉬움을 담아 10년간의 제 이야기를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5곡을 담은 게 이번 앨범입니다.”
오랜 타지 생활의 상념들은 이번 앨범에 깊숙이 녹아 있다. ‘원 어 데이’ 역시 자카르타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점을 쓴 곡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원 어 데이, 하루에 한가지만 하자라는 말이 있다고 해요. 한국은 경쟁사회다 보니 그렇게 살 수가 없잖아요. 저 역시 인도네시아에서 천천히 살다 보니 처음엔 화가 많이 났어요. 하루에 한가지만 하는 자세, 한국에서도 필요하단 의미에요.”
손현숙이 ‘천지인’ 보컬로 불렀던 민중가요 ‘청계천 8가’는 지난 8월, 에스비에스 드라마 <닥터 탐정>의 삽입곡으로 리메이크돼 젊은 세대에게 다시 알려졌다. “청계천 8가가 다시 불리니 좋았어요. 제가 베이징, 자카르타에 살아보니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곳의 시장
과 거리를 지켜보면서 청계천 8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청계천 8가는 어디에나 있구나’ 하고.”
‘청계천 8가’를 부른 가수 손현숙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기타를 들고 서 있다. 손씨는 최근 발매한 앨범을 중심으로 다음달 2일부터 첫 단독 콘서트를 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민중가요 가수 출신이기에 손현숙은 요즘 다양한 집회 현장에서 불리는 민중가요를 들을 때 감회가 새롭다. “아무래도 집회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천편일률적일 수 있어요. 그래서 민중가요는 다 똑같구나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제 집회도 문화제 형식으로 바뀌는 추세잖아요. 그만큼 민중가요도 다양해지고 있고 또 더 다양해져야 합니다.”
그가 부재했던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음악 생태계도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고 했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음악 활동의 저변이 넓어졌다는 것. 유튜브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냐고 묻자 “없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상업적인 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기에 저는 하지 않을 거예요. 콘서트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기획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다시 하는 마당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것이 제 결심입니다. 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천천히 제 속도대로 나아가고 싶어요.”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