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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김광석·이덕희가 사색하던 ‘학림다방’…33년의 기록들

등록 2020-01-23 17:07수정 2020-01-24 02:33

[28일 개막하는 ‘…젊은 날의 초상’전]
서울 대학로 예술인들의 안식처
주인장 이충열씨가 30년간 찍은
다방 안팎의 역사 처음 전시장에

황정민·송강호 젊은 시절 모습부터
윤구병·홍세화 등 지식인 자태까지
만주항쟁 등 역사적 장면들도 포착
1990년대 학림다방 내부 모습.
1990년대 학림다방 내부 모습.

그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33년간 이 유서 깊은 다방을 홀로 지켜왔다. 1956년 서울 대학로 119번지에 문을 연 이래 숱한 지식인과 예술인의 안식처가 됐던 ‘학림다방’이다.

1983년 원래 주인이 매각한 뒤 퇴락해가던 이곳을 1987년 인수해 원래 공간으로 복원하고 예술인의 아지트로 되돌린 주인장 이충열씨. 그를 아는 이들은 문화판에서도 드물다. 워낙 조용한 성격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던 그가 학림다방과 함께한 지난 세월을 담아 이달 말 전시를 연다.

‘학림다방’ 주인 이충열씨. 다방을 인수한 이듬해인 1988년 찍은 것이다.
‘학림다방’ 주인 이충열씨. 다방을 인수한 이듬해인 1988년 찍은 것이다.

오는 2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사진위주 공간 류가헌에서 개막하는 ‘학림다방 30년, 젊은 날의 초상’은 ‘공간이 없으면 시간은 어디에 기억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이충열씨의 사진전이다. 1974년 개설된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사진학원 1기생이자 군대 ‘사진병’을 지냈던 그가 지난 30년간 학림다방 안팎의 사람들과 풍경을 필름으로 기록한 결과물을 간추려 선보이는 자리다.

1990년대 빛나던 시절 대학로 공연장에서 찍은 가수 김광석.
1990년대 빛나던 시절 대학로 공연장에서 찍은 가수 김광석.

학림다방의 주인장 이씨는 다방 그 자체처럼 한자리에 정주한 채 ‘알려지지 않은 사진가’로 30년간 대학로를 스쳐 흐른 숱한 시절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잘 알려진 대로 학림다방은 오랜 세월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 구실을 해왔고, 혜화동 일대 대학로의 시대성을 간직한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다방을 운영하면서 이곳을 드나드는 숱한 문인과 예술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했다. 인근 대학로 소극장 등으로 나가 ‘가난한’ 문화예술인의 보도자료용 스틸 사진도 찍어줬다. 대학로 연극인들 사이에는 인심 좋은 보도자료 사진가로 알려져 있었던 그가 학림다방을 찾은 인물과 창밖의 일상의 풍경, 여러 역사적인 시위, 축제 장면을 꾸준히 찍어온 것은 최근까지 문화판에도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류가헌 기획진이 그를 찾아가 전시를 권하면서 유명 문화예술인들의 초년 시절부터 대학로의 변화하는 풍경까지 시대의 변화와 분위기를 담은 소중한 기록들이 처음 전시장에 나오게 됐다.

학림다방에 자신의 삶과 존재를 오롯이 의탁했던 문인 이덕희. 다방의 창가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생전 그의 모습이다. 이덕희와 막역했던 후배 소설가 정찬씨는 전시 서문에서 이 사진을 두고 “멍해 보이는 표정에 슬픔이 느껴진다”고 적었다.
학림다방에 자신의 삶과 존재를 오롯이 의탁했던 문인 이덕희. 다방의 창가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생전 그의 모습이다. 이덕희와 막역했던 후배 소설가 정찬씨는 전시 서문에서 이 사진을 두고 “멍해 보이는 표정에 슬픔이 느껴진다”고 적었다.

이런 내력을 담은 이씨의 첫 전시 ‘학림다방 30년…’은 세 영역으로 나뉘어 선보이게 된다. 첫 부분인 ‘젊은 날의 초상’은 학전소극장에서 공연하던 가수 김광석의 빛나던 모습을 비롯해 송강호·황정민·설경구 등 이젠 영화계의 주역이 된 배우들이 대학로 연우무대에서 활약하던 모습, 명가수이자 연출가인 김민기의 작업 장면 등을 생생한 스틸 사진으로 보여준다.

두번째 부분인 ‘창밖으로 흐른 시절들’은 다방 창밖으로 바라본 지난 시절 풍경이다. 무엇보다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처럼 같은 장소에서 십수년간 펼쳐진 다른 일상의 장면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보는 재미가 남다른 사진들이다. 민주항쟁이 한창이던 80년대 시위대의 태극기 행렬부터 90년대 대학로 행인들, 2000년대 월드컵 축제 응원 인파의 열기까지 대학로를 스쳐 간 현대사의 주요 장면이 학림의 차창 밖을 통해 펼쳐진다.

학림다방의 창밖에서 포착된 1987년 여름의 풍경. 민주항쟁 당시 태극기를 든 시위대의 행렬이 지나간다.
학림다방의 창밖에서 포착된 1987년 여름의 풍경. 민주항쟁 당시 태극기를 든 시위대의 행렬이 지나간다.

마지막 부분인 ‘학림다방’은 나무 탁자와 커피 향, 클래식 음악이 은은히 흐르는 학림에 머물렀던 이덕희, 김지하, 윤구병, 홍세화 등 여러 지식인, 예술인의 자태를 포착한다. 학창 시절부터 다녔던 학림다방에서 요절한 문인 전혜린과 교분을 쌓고 자신 또한 세상을 뜰 때까지 여기에 오롯이 존재를 의탁했던 문인이자 번역가 이덕희의 사진이 유난히 애잔하다. 다방 창가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생전 사진을 두고 고인과 막역했던 소설가 정찬은 전시 서문에서 “멍해 보이는 표정에 슬픔이 느껴진다”고 적었다. 전시를 차린 주인장 이씨는 “30여년이 지나고 보니 세월이 사진을 귀하게 만든 것 같아 오랫동안 사진기를 놓지 않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시회와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나왔다. 2월9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류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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