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준 작가의 로봇극 <싸구려 인조인간의 노랫말 2>의 공연 장면. 사람 뼈대 형상의 로봇들이 술주정, 구걸, 설교 등 사람의 행위를 본떠 하면서 떼춤을 춘다. 로봇이 생산력의 상징이 아니라 소외된 인간상을 드러내는 내면 연기를 펼치는 마당이다.
로봇들이 인간의 부질없는 몸짓을 연기하는 그림자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1990년대~2000년대 초 삐삐롱스타킹 등 전위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그 뒤로 공연·미술판에서 사운드·미디어아트 작업에 전념해온 권병준 작가의 신작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플랫폼엘 컨템포러리아트센터에서 31일과 새달 1, 2일 열린다.
이 로봇 난장의 제목은 <싸구려 인조인간의 노랫말 2>. ‘로보트 야상곡'이라는 부제도 달렸다. 90년대 홍대 앞 클럽 공연을 모티브 삼아 로봇이 공연하는 ‘메커니컬 시어터’(기계극장)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다. 권 작가가 5명의 크리에이티브 팀과 함께 기획했다.
<싸구려 인조인간…>은 동서양에서 완전한 주기의 상징으로 여겨온 숫자 ‘12’를 화두 삼아 12대의 인조인간 로봇이 출연한다. 인간의 뼈대 형상을 한 각각의 로봇은 이름과 더불어 노숙자, 거리의 악사, 밤의 정령 같은 역할이 있다. 빛의 시선을 따라 로봇들은 각각 고물 수집, 취객의 술주정, 시위, 구걸, 설교, 면벽수련 등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며 떼춤을 춘다. 산업 현장에서의 월등한 생산력과 달리 로봇답지 않은 ‘쓸모없는’ 행동과 유약한 내면을 부각하는 설정이다. 과학기술이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자 유력한 미래 권력으로 약진하는 지금, 작가는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소외상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매체로 로봇을 바라보며 과학 중심주의를 또 다른 방식으로 뜯어본다. “제한된 몸짓 안에서 서로를 비추며 춤추고 노래하는 로봇들을 바라보며, 소외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를 권한다”는 작가의 바람이 얼마나 실현될지 주목된다. 문의 (02)3141-1377.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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