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글자 빼곡한 신문지 화폭 위 ‘격변의 중국’

등록 2020-01-30 19:14수정 2020-01-31 02:34

[중국 작가 천위쥔 서울 개인전]

중 현대미술 전형성 벗은 3세대 작가
잡지·천 조각·문짝 화판 삼아 콜라주
급변 사회와 일상, 개성 있게 그려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만난 천위쥔 작가. 신문지, 한지 등을 콜라주한 화폭에 그린 자신의 근작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만난 천위쥔 작가. 신문지, 한지 등을 콜라주한 화폭에 그린 자신의 근작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는 대만과 마주 보는 대륙 해안의 푸젠성 사람이에요. 거기 푸톈이라는 항구도시에서 나고 자랐죠. 잘 이해가 안 갈지 모르지만, 제 작품 세계는 이슬람 문화와 꽤 친숙해요. 푸젠성 사람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하면서 먹고살았거든요. 유럽 기독교도와 동남아의 무슬림 상인들도 숱하게 항구로 드나들면서 후손들을 남겼지요. 저 또한 무슬림의 후손과 어울려서 살았고, 지금도 그림 속에 이슬람 사원의 아치를 주된 배경으로 그려 넣곤 하지요. 할머니 따라 말레이시아로 이민 갔다가 돌아온 적도 있어요.”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 ‘우리, 저마다의 이야기’를 열고 있는 중국 작가 천위쥔(44)의 고향과 성장 이야기는 해상 실크로드 무대의 이주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덩치와 강렬한 색감을 강조하는 중국 현대미술작가의 전형적인 특징과 크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천위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리추얼> 연작의 일부. 세상의 사연과 사건들을 실은 신문지로 화폭을 짜고 그 위에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일상과 사람들의 이미지를 채색 드로잉으로 담아냈다.
천위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리추얼> 연작의 일부. 세상의 사연과 사건들을 실은 신문지로 화폭을 짜고 그 위에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일상과 사람들의 이미지를 채색 드로잉으로 담아냈다.

요즘 중국 미술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3세대 작가로 알려진 천위쥔은 글자가 가득한 일간지로 화폭을 짜서 그 위에 수시로 보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기물이나 사람들의 갖가지 모습을 드로잉하는 연작을 즐겨 그린다. 잡지나 신문지 조각, 물들인 천들을 얼기설기 기워 거대한 콜라주 화판을 만드는가 하면, 오래된 집에서 문짝을 뜯어내 그림틀로 활용하기도 한다. 1·2층과 지하 전시장에는 콜라주로 대표되는 그의 평면작품 30여점과 이런 구성을 3D프린터로 뽑아낸 입체물을 다시 조각한 조형물로 만든 사람 형상의 대리석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항저우 미술학교를 거쳐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작가는 이민과 이동이 급격히 늘어난 최근 중국의 도시화·세계화에 따른 내면의 정체성 혼란을 독특한 콜라주 매체를 활용한 인물·사물 드로잉이나 자기 주변의 공간·현상의 단면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작업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급속도로 변모한 중국 사회를 그의 개인적 일상과 연결지어 개성적인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상징하는 대상물로 신문지를 지목하고 그 신문지를 액자틀에 엮어 시간성을 은유하는 일상 사물, 풍경 등의 채색 드로잉을 풀어내는 배경으로 쓴 역사적 감수성을 주목할 만하다.

천위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lt;리추얼&gt; 연작의 일부. 세상의 사연과 사건들을 실은 신문지로 화폭을 짜고 그 위에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일상과 사람들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천위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리추얼> 연작의 일부. 세상의 사연과 사건들을 실은 신문지로 화폭을 짜고 그 위에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일상과 사람들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젊은 예술가의 눈으로 격변의 중국 사회를 살아온 개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풀어내고자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작품들의 세부적 단면을 살펴보면 이산과 이주를 어려서부터 겪은 특유의 지역적·개인적 정서가 휴머니즘과 온화한 시선으로 화폭에 반영되어 표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특정한 예술 유행이나 사조의 영향은 중요하지 않다. 나를 둘러싼 생활방식·생활환경의 변화가 매체를 선택하고 작업할 형식을 만들고 바꿔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거대한 규모와 거칠고 조야한 표현으로 질리는 느낌을 주곤 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근래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소소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성이 와닿는 작품들이다. 그는 내년 중국 상하이 룽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2월22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