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 차려진 ‘툴루즈 로트렉’전 전시장. 로트렉이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밤무대 배우들을 부각한 석판화 포스터들이 줄줄이 내걸려 있다.
‘마스크 미착용 시 입장을 제한합니다.’
지난 25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엔 이런 공지문이 붙었다. 미술관 1~3층에 차려진 세 개의 기획전 입장객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전파를 막기 위해 조처를 취한 것이다. 세 전시는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전(3층, 4월19일까지)과 19세기 말 프랑스 대중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회고전(1층, 5월3일까지),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전(2층, 4월26일까지)이다. 관객은 전시장 앞에서 손 소독과 마스크 착용을 확인받아야 감상이 허용된다. 전시 담당 직원에겐 ‘관객을 잘 살펴 기침을 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거나 발열 증상을 보이면 지체 없이 격리시키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예술의전당은 이틀에 한번씩 전시장을 소독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에서 세잔까지…’전 1부 전시장. 관객들이 코로와 레세르 우리, 부댕 등 인상파 계열 작가들의 그림을 줄지어 감상하고 있다.
전시장 방역이 강화된 데는 사정이 있다. 지난주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심각’ 단계로 격상시키자 국립·공립 미술관의 휴관 발표에 이어 예술의전당도 자체 기획한 전시와 공연을 중단 또는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상업 기획사들이 한가람미술관을 빌려 지난 1월부터 차린 이 세 건의 기획전시는 달랐다. 모두 투자자가 있는데다 사전 예약 관객과의 약속이라는 점을 명분 삼아 강행 입장을 밝혔다. 인상파 전시와 로트렉 회고전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와중에도 이달 중순까지 평일 1000여명, 주말 2000~3000명이 들면서 흥행 순풍을 탔던 점도 고려됐다. 예술의전당 쪽은 “관객한테 오라고도, 오지 말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난처해했다.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미술관의 브루클린 미술관 컬렉션 전인 ‘프렌치모던’ 같은 다른 상업전시도 중단돼 한가람미술관은 대형 상업전이 운영되는 유일한 공간이 됐다. 세 전시에 관객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모네에서…’전에 나온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 <잔느의 초상화>(1893). 피사로가 한때 심취했던 신인상주의파 특유의 점묘적인 붓 터치로 딸 잔느의 용모를 묘사했다.
유대인 부호의 기증품을 중심으로 짜인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 컬렉션 100여점을 소개하는 ‘모네에서…’전과 그리스 헤라클레이돈 미술관 컬렉션을 들고 온 로트렉전은 출품작, 구성 면에서 비교적 잘 짜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모네에서…’전에는 모네의 <수련연못>을 비롯해 폴 세잔의 <강가의 시골 저택>, 르누아르의 남녀 초상화 등 인상파 대가의 기법과 스타일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숨은 명작이 많다. 국내엔 생소한 인상파 실력자 피사로의 농촌 풍경화와 독일 작가 레세르 우리의 감각적인 일상 도시 그림을 재발견하는 묘미가 있다.
한가람미술관 2층에 마련된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전 말미의 ‘포스터의 숲’ 섹션. 산업디자인의 세계적인 거장을 기려 국내외 그래픽디자인 대가들이 헌정한 포스터 작품 34개를 한자리에 모아 내걸었다.
로트렉전은 19세기 프랑스판 팝아트 작가의 포스터, 석판화, 일러스트 등을 집약한 컬렉션이다. 남성 배우의 초상 포스터 등은 일본 다색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평면적 화풍이 서구 석판화 스타일에 이식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카스틸리오니전은 가로등에서 착안한 아르코 조명등과 간이 전기 스위치 장치 ‘롬피트라타’ 등 거장이 남긴 친숙한 생활 디자인 제품을 조명하면서 쓰임새의 창조를 중시하는 ‘익명의 디자인’ 정신을 일러준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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