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희 작가가 2009년 만든 연필 드로잉 애니메이션 <변신이야기 제16권>의 한 장면. 사람 모양의 생명체 코오라와 공룡 플라시오사우르스, 고래 모양의 생명체 리바이어던의 삼각 사랑 이야기를 통해 지구 환경의 위기와 인간, 비인간 생명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변신이야기 제16권>의 한 장면. (c) 사진 조준용
일억년 전 바다에 살던 공룡 플라시오사우르스와 사람 모양의 생명체 코오라. 둘은 시공을 초월한 사랑에 빠진다. 공룡을 너무나 사랑한 코오라는 그를 죽여 몸 일부를 먹고 그의 존재 일부가 된다. 그리고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든다. 코오라를 짝사랑했던 고래 모양의 생명체 리바이어던이 나타나 통째로 코오라를 삼켜버린다. 그렇게 셋은 하나로 뭉쳐진 존재가 됐다. 세 존재의 화신인 고래는 석유가 흘러가는 송유관 속에 떠다니는 연인 공룡의 다른 몸 조각을 찾으러 유랑을 떠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전파탐지기 때문에 감각이 교란돼 표류하다 강을 거슬러가 죽음을 맞게 된다.
송상희 작가가 2009년 만든 연필드로잉 애니메이션 <변신이야기 제16권>의 줄거리다. 작가는 사람과 공룡, 고래의 삼각관계가 낳은 비극을 통해 환경의 위기와 인간, 비인간 생명체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결말은 세상의 종말이다. 고래의 죽음에 분노한 플라시오사우르스의 영혼이 자신의 몸이 깃든 송유관에서 검은 기름이 터지도록 염력을 일으켜 세상을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어버린다. 작가는 이 비극적 이야기를 세 생명체의 이종 간의 사랑이라는 서정적 스토리와 따듯한 연필 드로잉으로 표현해낸다. 황당한 줄거리와 장면이 연속되지만, 흑백의 선묘로 채워진 화면과 애잔한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코로나가 창궐하는 재앙의 시대에 맞춤한 울림이 귀와 눈에 전해져온다. 영상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지난 6일부터 열리고 있는 전시 `어스바운드’(Earthbound)의 들머리에서 상영 중이다. ‘어스바운드’는 지난해 7회 아마도작품기획상을 수상한 기획자 윤민화씨의 전시다. 송상희, 염지혜, 조현아, 김화용, 이소요, 진나래 작가 등의 영상 설치작품과 텍스트, 오브제 작업 등을 출품했다. 자연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는 인간 문명의 탐욕이 드러난 현장과 그 양상들을 다양하게 기록되고 연출된 영상작업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이 주된 지향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들머리의 <변신이야기…>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작품이 그 다음방에 나오는 염지혜 작가의 다큐와 가상이미지 합성 영상물 <커런트레이어즈(현재적 지층)>다. 이 영상물은 벌건 용암이 끓어올라 굳어가는 지구 표면의 생생한 단면과 질감들을 부각시켜 보여주는 1부와 인간 문명의 산물로서 플라스틱 물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2부로 나눠 간과하기 쉬운 실체로서의 지구를 드러낸다. 초미세화되어 우리가 수치화해 파악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플라스틱 폐기물의 참상을 비닐 봉지, 플라스틱 병들이 떠다니는 수중 공간과 페트병에 새들이 뽀뽀하듯 입을 대는 태블릿 영상을 통해 섬뜩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시각예술에서 작가들이 일방적으로 다른 생명종들을 대상화하는 것을 성찰하려 했다고 윤민화 기획자는 말한다. 26일까지.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신관 지하2층 보안클럽에서도 재앙의 시대와 연관된 성찰과 모색의 담론 마당이 차려진다. 14~15일 `고-비건(Go-vegan), 언-러닝(Un-learning): 비거니즘으로 그리는 문화예술의 새로운 지형도’란 제목으로 3개 섹션, 8개의 릴레이 이야기 마당이 열린다. 작가 그룹 옥인콜렉티브의 멤버였던 김화용씨가 기획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채식주의로 번역되는 비거니즘을 화두로 삼는다. 비인간 생물종을 착취하지 않고 재료를 덜 소비하는 예술방식을 논의하고, 지구의 자원을 착취하는 횡포를 부려온 인간 문명의 현실을 진단한다. 인간의 이기적 시스템과 탐욕을 심도있게 비판, 성찰하면서 대안으로서의 생태주의, 채식주의 비거니즘 등에 대해 논의한다. 전의령 전북대 교수,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전창림 홍익대 교수, 박진영 디자이너, 김화용 작가 등이 강연과 대화를 펼친다. (02)720-8409.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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