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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스트리밍 시대에 ‘힙한’ 이것…LP여, 영원하라

등록 2020-04-19 15:13수정 2020-04-19 20:06

[2030의 취미가 된 아재감성]
까다로운 관리, 가격 부담에도
디지털 세대 인기 아이템으로
SNS에서 유행타고 번지며
음반매장에 젊은 소비층 늘어

[신선함·따뜻함·소유하는 매력]
옛스러운 소리 질감에 ‘체온’ 느껴
“스트리밍은 흘러가는 음악일 뿐
엘피는 직접 만지며 교감 가능”
부모 세대와 음악으로 공감하기도

[덕질·패션으로도 완벽한 매체]
앨범 천천히 뜯어보며 덕심 단련
가요계에서도 LP앨범 적극 발매
예술작품 못잖은 개성적 디자인에
턴테이블 없이 재킷만 수집하기도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이게 뭐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턴테이블 앞에서 호기심이 일었다. “한번 들어봐.” 친형의 권유로 헤드폰을 썼다. 빗소리 같기도 모닥불 소리 같기도 한 잡음이 잠시 나더니 음악이 흘러나왔다. 소리의 질감이 그동안 들어온 스트리밍이나 엠피3(MP3)랑은 전혀 달랐다. 3년 전 19살이던 방민기(22)씨는 서울 이태원의 한 음반매장 청음코너에서 엘피(LP·Vinyl)를 처음 접했다. “소리가 따뜻하다고 할까요? 옛 음악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특히 베이스(소리)가 잘 들려서 좋았어요.” 그렇게 엘피에 빠져들었다.

돈을 아껴 엘피를 사고 턴테이블도 마련했다. 새 음반에서는 잡음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54)가 오래된 엘피 몇장을 꺼내놓았다. “엄마가 젊었을 때 듣던 거야.” 팝과 재즈 앨범이었다. 엘피는 시공을 초월해 엄마와 아들을 연결했다. 방씨는 엘피를 통해 엄마가 듣던 음악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됐다. 지난 15일 이태원에서 만난 그는 “엘피를 알게 해준 형에게 선물하려고 샀다”며 한참 동안 고른 엘피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스트리밍 시대’에 엘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엘피의 부활 움직임은 수년 전부터 나타났지만, 최근 들어 20~30대는 물론 10대로까지 유행이 번지고 있다. 실제로 시내 주요 음반 매장이나 동묘시장, 회현 지하상가에서는 엘피를 고르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동안 40~50대가 주로 찾았지만, 최근 들어 주 소비층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에도 엘피와 관련한 사진들이 유행처럼 올라온다.

이런 기류를 감지한 듯 가수들도 적극적으로 엘피 발매에 나서고 있다. 신승훈은 최근 30주년 기념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My Personas)를 발표하며 한정판으로 엘피 1천장을 제작했다. 엘피는 예약 주문 하루 만에 동이 났다. 엘피 제작을 목표로 음반을 내놓은 가수도 있다. 김현철은 지난해 11월 13년 만에 정규 10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이번 앨범은 시디(CD)가 아니라 엘피 발매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며 “팬들을 위해 엘피 발매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송가인도 최근 첫 앨범을 엘피로 제작했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엘피의 약진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가 최근 발표한 ‘2019 음악 수익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미국의 엘피 시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무려 18.7%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시디와 다운로드 음원 시장 매출은 각각 12.0%, 17.6% 감소했다. 물론 엘피의 매출액(4억9760만달러)은 여전히 시디(6억1450만달러)와 다운로드 음원(8억5570만달러) 매출보다 적지만, 미국 매체들은 올해 안으로 엘피 매출이 시디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국내에는 이와 관련한 통계가 없다. 업계에선 지난해 기준 엘피 매출 규모를 300억원대로 추정하는데, 20~30대 소비가 전체 매출액의 50~6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엘피는 꽤 번거로운 매체다. 디지털 음악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엘피는 다르다. 표면이 긁히지 않도록 신경 써서 다뤄야 하고, 제대로 즐기려면 표면에 묻은 티끌 하나까지도 제거해야 한다. 3만~4만원대인 엘피 가격 역시 부담이다. 엘피를 재생하는 턴테이블도 마련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이른바 ‘아재’들은 이런 번거로움에 짙은 향수를 느끼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로 음악을 접한 1990년·2000년대생들이 엘피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엘피가 주는 ‘체온’을 꼽았다. 하종욱 마장뮤직앤픽처스 대표는 “스트리밍은 흘러가는 음악일 뿐 ‘내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며 “엘피는 손으로 만지면서 교감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 디지털의 차가움에 익숙한 세대들이 불편한 엘피에서 ‘새로움’과 ‘따뜻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을 듣는 도구를 넘어 엘피가 ‘굿즈’(기념품)와 ‘패션’으로 기능하면서 젊은 세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종명 사운드트리 부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굿즈’를 사 모으는 것이 익숙한 세대에게 엘피는 또 하나의 굿즈”라며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엘피를 사는 이들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에스엔에스에 엘피 사진을 올리기만 해도 ‘트렌드에 앞서가는 사람’ ‘음악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엘피의 디자인적 매력도 열풍에 한몫을 했다. 검은색으로 천편일률적이던 엘피판은 최근 빨강, 노랑, 파랑, 초록, 하얀색으로도 제작된다. 엘피에 사진이나 그림을 입히는 ‘픽처 디스크’도 나오고 있다. 인디밴드 ‘로큰롤라디오’와 ‘밴드죠’는 지난해 각각 파란색과 붉은색 엘피를 제작했다. 변정식 골든노이즈 대표는 “엘피는 귀로 듣는 매력 외에도 눈으로 즐기는 매력이 크다”며 “가수나 제작자가 공들여 만든 앨범 재킷을 걸어만 둬도 12인치 예술 작품이 되기 때문에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층한테 인기”라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천편일률적이던 기존 검은색 엘피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엘피판은 파랑, 노랑, 초록, 빨강,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20~30대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진은 엘피 제작사인 골든노이즈가 지난해 만든 ‘컬러 엘피’들.

5년 전부터 엘피를 사 모았다는 장지원(30)씨는 “처음에는 좋아하는 밴드(언니네 이발관) 엘피를 갖고 싶어 턴테이블도 없는데 사게 됐다”며 “스트리밍 서비스는 음반이란 느낌도, 내 것이란 느낌도 안 드는데 엘피는 다르다. 재킷을 열어 사진집과 가사집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엘피판을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아티스트에 대한 ‘덕심’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중에 장비를 갖춰 음악을 듣게 됐는데 엘피가 주는 묘한 음질과 분위기에 빠져들었다”며 “자취방에 턴테이블과 엘피만 있어도 카페 분위기가 난다”고 했다. 정연정(21)씨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과 시간을 들여 옷을 사러 다니며 정성껏 관리도 한다”며 “나에겐 엘피도 옷과 같다. 번거롭다고 하지만, 이것이 내가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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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에 디지털 기능까지…이것이 바로 ‘신구 조합’

[LP 짝꿍 ‘턴테이블’]

마니아 중심이었던 고가 기기

10대까지 품은 ‘보급형’으로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

마켓컬리 제공
마켓컬리 제공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스트리밍 시대에 엘피(LP)가 화제를 모으며 턴테이블의 인기도 상승했다. 혹자는 “턴테이블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니 엘피가 나온 것”이라 말한다.

옥션·지마켓·지구(G9)를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에 따르면 옥션에서 올해 1~3월 턴테이블 판매량은 전년 동기에 견줘 13% 상승했다. 시디(CD)가 등장하면서 2000년대 초반 사라졌던 턴테이블 열풍은 2013년 한차례 미풍처럼 불더니 2016년께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2013년 조용필, 들국화, 전람회 등이 엘피판을 내놓으면서 음악 전반에 아날로그 향수가 번진 것이 계기가 됐다. 파나소닉도 2010년 단종했던 턴테이블을 2016년 다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운드룩 제공
사운드룩 제공

당시만 해도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고가로 형성됐던 것이 최근 들어서는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잇아이템’처럼 보편화하고 있다. 지마켓 기준으로 2016년에 견줘 2019년 10~30대의 품목별 구매 증가율이 가장 높은 상품이 턴테이블이다. 3년 전보다 판매량이 61% 증가했다. 가격도 음악 마니아들을 위한 고가에서 최근에는 10만원 전후의 제품도 흔해졌다. 2013년부터 턴테이블을 자체 생산해 판매해온 사운드룩의 김미현 영업부 과장은 “예전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고가의 기기를 찾아서 듣는 분위기였다면, 최근에는 10~20대 젊은층까지 포괄한 보급형 제품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영향으로 달라진 라이프스타일도 턴테이블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웰빙’을 넘어 ‘욜로’ 열풍이 불면서 사람들은 요리, 인테리어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신경쓰기 시작했다. 당일 수확한 채소와 과일 등을 다음날 새벽 배송해 주는 마켓컬리에도 지난 3월26일부터 턴테이블이 상품으로 등장했다. 송철욱 마켓컬리 홍보실장은 “요리할 때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많아 여성 고객들 사이에서 턴테이블을 판매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말했다.

옥션 제공
옥션 제공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턴테이블을 집 안 소품으로 가져다 두기도 한다. 묵직하고 투박한 예전 턴테이블과 달리 요즘은 색상과 모양도 다채롭다. 소품용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고가의 디터람스 턴테이블을 중고로 구매한 40대 김경희씨는 “엘피를 잘 듣지는 않는데 에스엔에스에서 턴테이블을 본 순간 너무 예뻐서 중고 사이트를 뒤져서 인테리어용으로 구매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아날로그적인 유행을 넘어 달라진 음악 소비 방식 등을 반영한 다양한 기능도 더해졌다. 뉴트로 감성을 유지하면서 블루투스 기능을 넣고, 턴테이블을 피시와 연결해 엘피에서 나오는 음악을 디지털 음원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추가하기도 했다. 옥션에서 디지털기기의 상품기획을 담당하는 변은정 디지털실 매니저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더해 복잡한 기능을 빼고 블루투스나 디지털 연동 등 자주 쓰는 유용한 기능만 탑재한 제품이 특히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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