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3층 전시장에 나온 남화연 작가. 전통 춤사위에 근대춤을 접목해 만든 최승희의 창작춤 <에헤야 노아라>의 1930년대 실연 사진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19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서막을 올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와 20세기 한국 근대춤의 선구자 최승희(1911~1969)가 바라보고 겪었던 바다의 모습은 어떻게 달랐을까. 두 예술가는 각기 어떻게 바다를 느꼈던 것일까.
남화연 작가는 자신의 개인전 ‘마음의 흐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3층 전시장에서 뜬금없는 역사적 공상을 실현하려 한다. 쿠르베와 최승희, 그리고 후대 동서양 사람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전혀 다른 시공간의 바다와 파도에 얽힌 그림과 동영상을 가져와서 보여준다.
2층 영상설치물 ‘사물보다 큰’은 4개의 스크린에 쿠르베의 눈길로 묘사된 노르망디 해변의 광기 어린 파도 풍경화를 비롯해 멀리 후지산이 보이는 일본 간토 지방 해안가의 풍경, 덴마크 바다에서 파도 등을 타고 오르는 서퍼의 모습, 먹먹한 북해 바다의 거친 파도 영상 등을 잇달아 보여준다.
동영상과 명작의 이미지로 재생돼 나타나는 각기 다른 파도의 이미지는 최승희라는 존재가 얽힌 남북 현대사의 무대로 바뀐다. 3층에 나온 단채널 영상 <풍랑을 뚫고>에는 1959년 북한과 일본 정부 사이의 협정에 따라 재일동포 북송이 개시됐을 때, 청진에서 니가타로 왔던 소련 여객선 주위로 몰아치던 파도를 클로즈업한 사진이 비친다. 바로 그 배에 최승희가 펴낸 <조선민족무용>(1958)이란 무보 해설서가 실려 있었으며, 총련의 재일한국인 춤꾼들이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 최승희 춤을 필사적으로 익혔다는 사실이 원로 무용가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다.
남 작가는 최승희의 안무와 행적을 통해 받은 강렬한 역사적 영감으로 지난 수년간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왔다. 2012년 최승희 안무 퍼포먼스 <이태리 정원>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도 최승희의 공연 자취를 살피는 영상 작품을 내놓는 등 지금까지 최승희의 춤과 역사적 흔적을 연구해왔다.
최승희가 1930년대 선보였던 춤 안무 <습작>의 몸짓을 재해석해 빚어낸 남화연 작가의 흙 조형물들. 맞은 편 벽에는 <습작>의 안무를 재현하기 위한 두 춤꾼의 실연 장면이 영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아트선재의 전시는 8년여간의 ‘아카이브’를 다양한 설치, 자료, 퍼포먼스 등으로 정리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전시장의 영상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여줌으로써 식민과 분단의 격동기를 거쳐 간 천재 춤꾼 최승희를 통해 나타난 역사의 힘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려 한다. 1920년대 일본 무용 거장 이시이 바쿠의 수하에 들어가 무용을 배운 뒤 1930년대 우리 전통춤과 근대춤을 결합한 신무용으로 절정의 인기를 얻었고,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과 중국의 춤판의 토대를 닦고 60년대 숙청당한 거장 최승희. 그 존재 자체를 작가는 ‘역사의 시간이 관통하는 신체’라는 화두로 풀어낸다. 그래서 전시는 최승희의 업적에 대한 오마주나 전기적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 개인을 규정하고 이끌어가는 역사의 흡입력과 질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에 가까워 보인다.
작가는 조선 최초의 신무용인 <에헤라 노아라>, 로댕의 <키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습작> 등 최승희의 안무에 자신의 역사적 상상력을 덧붙여 춤꾼들의 동영상, 점토 조형물 등으로 치밀하게 재구성해 보여주는데, 이런 작업 틀은 전례 없이 독창적이다. 사료가 거의 없는 최승희 안무의 형성 과정을 고인과 지인들의 메모와 드로잉, 공연 기록 등을 토대로 별개의 퍼포먼스와 역사적 상상력을 직조한 영상 작업으로 만들면서 작가는 자연과 역사, 그 속에서 부대껴온 인간 존재의 관계를 묻는 데까지 나아간다. 출품작들은 작가가 실제와 픽션 사이에서 만난 최승희의 존재를 다기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과 엮으면서 만든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달 2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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