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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거대 목판화에 펄떡이는 DMZ 248㎞

등록 2020-05-31 16:57수정 2020-06-15 09:48

[김억 작가 ‘국토서사’전]
금강산 전망대부터 백령도까지
1년간 발품 비무장지대 재현
연작 17점 장쾌한 파노라마
설치작품처럼 사선으로 겹쳐 배치한 김억 작가의 목판화 연작 ‘디엠제트’(DMZ).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철원 역곡천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허리 비무장지대 6곳의 답사 풍경을 대형 목판에 처음 재현한 작품이다. 새긴 각각의 풍경을 검은색·붉은색 안료를 바탕으로 한 두 종류의 화폭에 재현해 작품에 리듬감을 주었다.
설치작품처럼 사선으로 겹쳐 배치한 김억 작가의 목판화 연작 ‘디엠제트’(DMZ).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철원 역곡천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허리 비무장지대 6곳의 답사 풍경을 대형 목판에 처음 재현한 작품이다. 새긴 각각의 풍경을 검은색·붉은색 안료를 바탕으로 한 두 종류의 화폭에 재현해 작품에 리듬감을 주었다.

67년째 이 땅의 허리를 끊어놓은 248㎞의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언저리에도 자연과 사람의 풍경은 어김없이 펼쳐진다. 40여년간 목판화를 새기고 찍어온 김억(65) 작가는 이 엄숙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숱한 목판화 화폭에 그가 직접 보고 겪은 비무장지대의 땅과 사람, 자연을 채워 넣었다. 충북 진천 생거판화미술관에는 작가가 지난해 1년간 발품을 들여 작업한 ‘디엠제트 2019’ 연작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국토서사’전이 5월22일 차려졌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철원 역곡천까지 비무장지대 영역 6곳과 한강 하구와 강화만·백령도 등 황해 수역 경계선 부근 4곳의 인문지리적 풍경을 샅샅이 훑어낸 목판화 연작 17점이 과거 국토기행 작품 20점과 함께 나왔다. 1990년대 이래 국토 구석구석의 경관을 발품 들여 돌며 눈에 넣고 목판으로 찍어온 작가의 작업 경력에 새로운 획을 더하는 결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로 1m80㎝, 가로 50㎝의 빨간색·까만색 바탕의 대형 화폭 열두 폭이 사선 구도로 겹쳐져 걸개그림처럼 늘어진 광경을 보게 된다. 동쪽 금강산 전망대부터 양구의 두타연 계곡, 철원의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를 거쳐 황해의 강화만·백령도까지 디엠제트 분단 현장을 17점의 대형 목판화 연작으로 재현한 전례 없는 작업이다. 특히 대여섯번이나 찾아갔다는 철원 화살머리고지를 담은 연작 목판화는 곰곰이 뜯어볼 거리가 적지 않다. 국군 전방초소(지피) 바로 위에 전사자 유해 발굴작업 현장이 보이고, 바로 위로 남북 병사들이 길을 개통하고 악수하는 장면 등이 산악 비무장지대의 스산한 분위기와 대조를 이룬다. 분단의 질곡이 어린 군사적 대치 광경과 온기 어린 인간들의 풍경이 열 겹 넘는 화폭들 속에서 여기저기 겹친다.

지난 26일 전시장에 나온 김억 작가. 지난해 작업한 ‘디엠제트’(DMZ) 연작의 앞부분인 <고성 통일전망대>를 가리키며 그림의 구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금강산과 해금강이 보이는 휴전선 남방한계선 최북단의 자연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담은 목판화다.
지난 26일 전시장에 나온 김억 작가. 지난해 작업한 ‘디엠제트’(DMZ) 연작의 앞부분인 <고성 통일전망대>를 가리키며 그림의 구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금강산과 해금강이 보이는 휴전선 남방한계선 최북단의 자연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담은 목판화다.

김포에서 강화도, 황해안 해상 분계선 일대까지의 바다 경계선 풍경들은 가로 3m, 세로 80~40㎝의 별도 화폭 3점에 새긴 목판화 연작으로 재현된다. 작가가 2019년 만든 대작 <금강산을 바라보다>는 가로 2m19㎝, 세로 50㎝의 길쭉한 화면에 강원도 고성 최전방 지피에서 본 북녘 금강산의 경관을 담고 있다. 연봉과 마지막 자락 구선봉, 감호, 해금강 등의 장쾌한 경치가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진다.

“북한 풍경은 분단 이래로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풍경입니다. 이번 목판 연작에서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임을 강조하고자 했어요. 그렇게 분단 상황을 부각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우리는 휴전선 디엠제트 철책을 가시 같은 이미지로 인식하고 표현해왔어요. 접근이 힘들다는 상징성을 드러낸 거죠. 하지만 시각적으로는 다 보이기 때문에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에요. 언젠가는 가야 하는, 희망을 갖고 회복해야 하는 장소임을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억 작가의 2018년 작 &lt;한강과 임진강이 아우르다&gt;. 가로 2m78㎝에 이르는 길쭉한 화폭에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조강을 이루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의 풍경을 파노라마식 구도로 펼쳐 보여준다.
김억 작가의 2018년 작 <한강과 임진강이 아우르다>. 가로 2m78㎝에 이르는 길쭉한 화폭에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조강을 이루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의 풍경을 파노라마식 구도로 펼쳐 보여준다.

한반도 허리를 가른 땅의 분단 풍경은 세로가 길고 가로가 좁은 걸개그림을 사선 구도로 겹쳐놓은 얼개로 풀었다. 황해 해상 수역의 보이지 않는 분단 풍경은 가로가 길고 세로는 작은 가로축선 형태의 대작 세 개로 풀어서 그 시선과 감흥에 변화를 줬다. “분단 지대의 지형적·환경적 조건에 맞춰 작품의 형식을 달리했다”는 김 작가의 설명에서 그가 내용과 잇닿은 형식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국토기행을 목판화로 풀어내는 데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김억 작가가 2019년 만든 대작 &lt;금강산을 바라보다&gt;. 가로 2m19㎝, 세로 50㎝의 길쭉한 화면에 강원도 고성 최전방 지피에서 본 북녘 금강산의 경관을 담았다. 연봉과 마지막 자락 구선봉, 감호, 해금강 등의 장쾌한 경치가 펼쳐지고 있다.
김억 작가가 2019년 만든 대작 <금강산을 바라보다>. 가로 2m19㎝, 세로 50㎝의 길쭉한 화면에 강원도 고성 최전방 지피에서 본 북녘 금강산의 경관을 담았다. 연봉과 마지막 자락 구선봉, 감호, 해금강 등의 장쾌한 경치가 펼쳐지고 있다.

김진하 기획자가 전시 발문에서 짚었듯 작가는 현장 스케치, 사진 등을 통해 장소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고지도나 진경산수화, 항공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현장감이 인상적이다. 땅의 인문적 역사·현실과 함께 와닿는 스펙터클한 목판화는 이미 수십년째 판각하고 찍어온 작가의 판화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풍성해졌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는 마치 기록하듯 땅의 인문적 경관을 스케치하고 돌아다니는 일에 지친 기색도 내비쳤다. “이젠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하고 관조하려고 해요. 비무장지대 연작의 마무리 작업도 통일시대 비무장지대의 미래를 보여주는 쪽으로 구상하고 있어요. 지금은 인적 없이 새들만 날아다니는 강화만과 한강 임진강 하구에 유람선이 떠다니고, 적막한 철원평야를 고속열차가 질주하는 판타지의 풍경을 칼맛 나게 표현해보려고요.” 8월19일까지.

진천/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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