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 작가의 1970년 작 <개폐>. 붓질을 칠한 유화 화폭에 실을 꿰매어 마치 털이 수북이 난 듯한 독특한 효과를 냈다. ‘1960~70년대 부산미술’전에 나온 주요 작품 중 하나다.
최근 화랑가에서 주목받는 1960~70년대 국내 실험미술의 숨은 역사를 담은 작품을 부산에서 무더기로 만날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 차려진 기획전 ‘1960~70년대 부산미술: 끝이 없는 시작’에선 40~50년 전 이 지역 미술작가 34명이 만든 낯선 전위 작품들과 조우한다. 붓질한 화폭에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실을 꿰매어 추상무늬를 만든 오브제 그림(김홍석)과 레코드판과 가수 이미자의 앨범, 대중잡지 누드 사진을 짜깁기한 팝아트 소품(김원), 액자 틀을 부러뜨리거나 붓질로 허구의 액자 틀을 그려 넣은 착시 그림(김정명)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한국 팝아트의 초창기 양상을 보여주는 김원 작가의 1967년 작 <선물>. 밥그릇 사발을 붙인 엘피 레코드판의 사방에 당시 대중잡지의 패션 이미지, 누드 사진, 가수 이미자의 음반 표지 등을 조각조각 콜라주 해놓았다. 부산 화단에 구상과 추상 구분을 넘어 일찍부터 팝아트의 개념이 싹트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1960~70년대 부산 미술인들은 가까운 일본의 출판물을 통해 서구·일본의 첨단 미술사조와 이미지 문화를 흡수하면서 독자적인 추상 그림과 전위 미술운동을 펼쳐나갔다. 전시장에는 당시 부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민 미술전’(1965), ‘이후작가전’(1968)을 비롯해 지역 미술 동인 ‘혁’ ‘습지’ 등에서 창작했던 작가들의 추상 그림, 매체 작업, 설치물 등 150여점이 나왔다. 기혜경 관장은 “지역 현대미술사 탐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시다. 이승택, 김구림 같은 국내 실험미술 대가들의 작업과 비견될 만큼 물성탐구 등에서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수작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9월8일까지.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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