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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살이 외로움 달래려다 ‘커피 그라인더’ 수집광 됐죠”

등록 2020-06-01 18:21수정 2020-06-02 02:37

【짬】 나무와에너지 이승재 대표

이승재 대표가 전시 중인 커피 그라인더 수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이승재 대표가 전시 중인 커피 그라인더 수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원두커피가 우리 주변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친숙해진 기계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로스팅한 커피콩을 분쇄하는 ‘커피 그라인더’다.

지난달 1일 서울 지하철 동대입구역 1번 출구 쪽에 커피 그라인더 850점을 내년까지 상설 전시하는 공간 ‘말베르크’가 생겼다. 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가 2005년부터 수집한 커피 그라인더를 선보이고 있다. 말베르크는 기업 파라다이스에서 지역사회 공헌 사업으로 중구청에 내놓은 건물을 전시장 용도로 꾸몄다. 지난 26일 전시장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이승재 대표가 2차 대전 초기 독일 남부에서 탄피나 포탄으로 만든 황동 그라인더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이승재 대표가 2차 대전 초기 독일 남부에서 탄피나 포탄으로 만든 황동 그라인더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1998년 독일 유학을 떠났던 이 대표는 2005년 학업 대신 사업의 길을 택했다. 취미로 커피 그라인더 수집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였다. “국회의원의 비서관을 하다 독일로 갔죠. 뮌스터대학에서 어학과 사회학을 5년 정도 공부하다 2005년 도르트문트로 옮겨가 창업했어요. 한국기업 수출품의 화학물질 관리 인허가를 대행하는 일이었어요. 그때 유럽에서 화학물질 규제가 강화됐 거든요. 많을 때는 직원을 7명까지 뒀어요.”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가 1840년에 만든 커피 그라인더.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가 1840년에 만든 커피 그라인더.

커피 그라인더 수집은 도르트문트 벼룩시장에서 시작했다. “도르트문트가 석탄과 철광이 많이 나는 루르공업지대에 속해있어 벼룩시장에 생활 철기 제품이 많았어요. 하나둘 사다 2008년 한국에서 카페를 여는 친구가 인테리어용으로 100개를 부탁해 본격적으로 벼룩시장을 뒤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200개쯤 모았을 때 그를 전문 수집가의 길로 나서게 한 사건이 생겼다. “2012년이었어요. 리쉬케란 이름의 독일인 어르신의 거실에서 그분의 수집품을 봤어요. 지금껏 내가 모은 게 쓰레기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래된 커피 그라인더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루르 지역에선 1700년대 중반부터 커피 그라인더를 만들었어요. 20세기만 해도 이 지역 반경 70㎞ 안에 제조사가 40개나 됐죠. 몇 개월 흥정해 그 어른신이 모은 수십 점을 1800만원에 샀어요. 그 뒤로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 다른 도시는 물론 스페인, 프랑스, 헝가리, 체코 등을 다니며 수집했죠.”

이번 전시장에는 그가 모은 1600여 점 중 절반 가량이 나왔다. 리쉬케한테 산 18세기 제품들도 여럿 볼 수 있다. 프랑스 자동차회사인 푸조가 1840년에 만든 것도 있다. “푸조는 원래 커피 그라인더 제조사였어요. 지금도 생산해요. 커피 그라인더 전시장도 있고요.” 수집품에 대한 그의 해설이 쏟아졌다. “2차 대전 초기인 1939년 독일 남부에서 버려진 포탄과 탄피로 만든 황동 그라인더와 스위스 군대용으로 만든 1960년대 제품도 있어요. 1차 대전 뒤 나온 보리차 그라인더도요. 전후 커피가 귀해지자 유럽 사람들이 보리차를 마셨거든요. 그래서 보리차 전용 그라인더가 나온거죠.”

의원 비서관하다 1998년 독일 유학
“벼룩시장 구경서 시작해 1600점 모아”

동대입구역 상설전시장서 850점 소개

뮌스터대학 사회학 전공 뒤 사업가로
본업은 ‘산림바이오매스 에너지 컨설팅’
“한국 간벌목·톱밥 등 연간 400만톤”

그는 2017년 귀국했다. 20여년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랜 좋은 친구가 커피 그라인더였다고 했다. “독일 체류 10년쯤 되니 주변 한국분들이 다 귀국하고 우리 가족만 남았어요. 저녁이면 벼룩시장 등에서 한두 점 사온 그라인더를 분해해 닦아 광을 내고 관련 자료도 찾아 공부했죠.”

말베르크 전시장에선 이 대표의 커피 그라인더 수집품 850점을 볼 수 있다. 이승재 대표 제공
말베르크 전시장에선 이 대표의 커피 그라인더 수집품 850점을 볼 수 있다. 이승재 대표 제공

그의 진짜 일은 산림 바이오매스의 에너지 활용 컨설팅이다. 산림 바이오매스는 간벌한 나무나 톱밥 등 이용하기에 마땅치 않은 목재 부산물을 말한다. 한국에서 버려지는 나무는 연간 400만톤에 이른다. “2005년 독일에서 버려진 나무로 만든 목재 펠릿으로 난방을 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죠. 이듬해 네이버에 카페를 개설해 신재생에너지원인 산림 바이오매스의 중요성을 국내에 알리기 시작했어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앞세우며 목재 펠릿 지원책까지 내놓자 갑자기 카페가 북적였단다. “이명박 정부 때 800억원을 들여 농산촌 가정에 목재 펠릿 보일러 3만5천대를 깔았어요. 2008년 말엔 펠릿 공장도 만들었죠. 공장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저를 찾아 함께 독일 펠릿 공장을 둘러보기도 했죠.” 그는 2016년 가동한 전북 완주군 고산자연휴양림 산림 바이오매스 센터 설립 때 컨설팅도 맡았다. 이 센터는 400kW급 산림 바이오매스 목재 칩 보일러로 난방과 급탕을 제공한다. 지금은 산림청 산림에너지자립마을 사업에 뽑힌 전북 완주군과 강원 횡성군의 마을 네 곳을 컨설팅하고 있다.

그는 정부의 산림 바이오매스 정책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산림 바이오매스가 탄소 중립적인 친환경에너지가 되려면 생산과 활용이 같은 지역에서 이뤄지는게 좋아요. 하지만 우리는 값싼 에너지원으로만 취급해요. 2018년 기준으로 국내 목재 펠릿 생산량은 19만톤인데 가정용은 5만톤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 대형화력발전소로 가요. 충북 진천의 나무를 강원도 동해에서 태우는 격이죠. 2012년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 도입으로 대형화력발전소가 목재 펠릿 300만톤(2018년 기준)을 태웠는데 이중 94%를 수입했어요.” 그는 가정용 목재 펠릿 보일러도 너무 성급하게 보급하는 바람에 지금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해법은? “산림 바이오매스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달리 전기와 열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고 24시간 발전이 가능해요. 다만 원료의 수급과 운영, 배출가스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죠. 무엇보다 성공적인 시범사업 운영이 중요해요. 장기적인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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