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망했는데, 떴다. 이 무슨 앞뒤 안 맞는 해괴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가수 비의 노래 ‘깡’ 이야기다. 2017년 12월 발표된 ‘깡’을 향한 ‘조롱’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하고, 이에 대응하는 비의 ‘쿨’한 태도가 박수를 받으면서 2년 반 만에 이 노래가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깡과 관련한 각종 신조어도 줄을 잇는다. 하루에 한 번은 깡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는 ‘1일1깡’을 시작으로, 성지순례하듯 깡 콘텐츠를 찾아보는 ‘깡지순례’, 깡을 꾸준히 듣다 보면 이 노래가 명곡처럼 들리는 환각증세가 온다는 ‘깡각증세’, 밥 먹고 난 뒤에는 깡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는 ‘식후깡’ 등이다. 깡은 비의 2017년 미니앨범인 <마이 라이프 애(愛)> 타이틀곡이다. 허세 가득한 가사와 전혀 다른 노래 2곡을 이어붙인 듯한 부자연스러운 전개, 고릴라처럼 흔들어대는 과장된 안무 등으로 발표 당시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받으며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곡이다.
하지만 9일 기준, 이 노래는 멜론과 지니 차트(이상 일간차트 기준)에서 역주행해 각각 30위와 39위에 올랐다. 래퍼 겸 프로듀서 박재범이 이끄는 힙합 레이블 ‘하이어뮤직’이 재해석한 ‘깡 리믹스’ 버전은 각각 2위와 1위를 기록 중이다. 유튜브 깡 뮤직비디오 조회수도 이날 기준 1400만을 넘어섰다. 이런 깡의 인기에 힘입어 비는 최근 과자 ‘새우깡’과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 모델로 발탁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깡 열풍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밈’(meme) 문화가 꼽힌다. 밈이란 넓은 의미의 모방과 복제로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 콘텐츠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김영철의 ‘사딸라’(드라마 <야인시대> 대사),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영화 <타짜> 대사) 유행 등이 대표적이다. 누리꾼은 깡의 안무와 의상을 과장되게 따라 하고, 비 특유의 표정(입술 깨물기, 꾸러기 표정)과 신체 주요 부위를 잡는 이른바 ‘꼬만춤’ 등 평소 비의 퍼포먼스를 세세히 짚으며 깡을 창조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밈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썼다.
혼성그룹 ‘싹쓰리’의 유재석(왼쪽부터), 이효리, 비. 문화방송 제공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콘텐츠를 생산자가 만들면 소비자가 소비하는 방식으로 흘러갔지만, 이제는 밈이라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로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콘텐츠가 재생산되고 재해석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대중의 외면을 받은 깡이 수년이 지나 주목받는 기현상은 밈이 만든 풍경”이라고 짚었다.
‘조롱’을 대하는 비의 태도도 깡의 인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는 깡에 대한 누리꾼의 비아냥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이른바 ‘깡’동단결을 끌어냈다. 지난달 16일 방송된 <문화방송>(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그는 “(요즘 분들에게 깡이) 별로였던 것”이라고 진단한 뒤 “요새는 예능보다 (깡) 댓글 읽는 것이 더 재미있다. 나는 아직 목마르다. 1일7깡 해달라. 더 놀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하는 등 대중의 놀림을 재치있게 받아치면서 조롱을 응원으로 돌려놓았다.
다만, 깡 신드롬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작품성으로 (깡의) 제목을 정하면 ‘꽝’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며 “이런 졸작이 누리꾼의 유희 문화를 타고 한순간에 영전했다. (이는) 터무니없고 끔찍한 일”이라고 썼다.
유튜브 ‘깡’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들. 유튜브 갈무리
한편에서는 깡 열풍이 인신공격과 악성 댓글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깡이 뒤늦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애초 깡에 대한 관심은 비에 대한 조롱에서 시작했다”며 “대중의 놀이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악플이자 집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처럼 일부 누리꾼은 사람들이 몰리는 깡을 벗어나(‘깡’트리피케이션), 개연성 없고 유치한 가사 때문에 깡에 앞서 실패한 2014년 6집 수록곡 ‘차에 타봐’ ‘슈퍼맨’으로 자리를 옮겨 비슷한 ‘놀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덕현 평론가는 “비에 대한 밈은 혐오와 인신공격이라기보다는 트렌드에서 멀어진 옛 슈퍼스타의 노래를 창조적으로 즐긴 유희적 측면이 크다. 비도 ‘스스로 과잉됐다’고 인정하고 이를 즐기면서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아이템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며 과도한 우려를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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