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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소리꾼 이희문…이번엔 재즈풍 ‘잡가’로 남성을 우스꽝스럽게

등록 2020-06-14 18:12수정 2020-06-15 02:35

[‘한국남자’ 2집으로 돌아온 이희문]
3년 전 ‘한국 남자’ 프로젝트
처음엔 ‘여성에 대한 위로’

2집은 양갈래 가발 쓰고
주근깨 찍고 콧수염 달고…
한국 남성 희화화
“전통은 그 시대에 가장 힙해야”
소리꾼 이희문이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 <한국남자>2집. 이희문컴퍼니 제공
소리꾼 이희문이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 <한국남자>2집. 이희문컴퍼니 제공

박자와 선율에 실려 신명에 닿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형형색색의 가발과 얼굴을 덮은 짙은 화장도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짧은 머리 위에 챙이 넓은 모자(스냅백)를 쓰고, 인터뷰를 위해 소리가 깃들지 않은 공간에 홀로 앉아 있는 그에게서 무대 위 모습을 떠올리긴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시끄러운 편이 아니었어요. 평상시엔 말도 별로 없고요.” 목소리는 쉽게 들뜨지 않았고, 내내 차분하면서도 평온했다. ‘절전 모드’와도 같은 무대 밖 삶은 오로지 무대를 향해서만 열려 있는 듯 보였다.

소리꾼 이희문. 우리 소리에 다른 장르의 음악을 포개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무대를 선보여온 그가 이번에는 재즈의 옷을 입힌 ‘잡가’를 들고 돌아온다.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작업한 <한국 남자> 2집이 그것이다. 오는 20일께 나올 이 앨범은 2017년 발표된 민요 위주의 1집과 달리, 잡가가 중심이다. “민요가 별도의 전승 과정 없이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노래라면, 잡가는 주로 소리꾼들이 부르던 전문적인 노래예요.” 잡가는 소리꾼들이 ‘목 자랑’ ‘숨 자랑’을 하던 노래다 보니, ‘즉흥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즉흥성은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그가 프렐류드와 협업하며 잡가를 선택한 이유다. 앨범에는 ‘선유가’ ‘제비가’ ‘금강산타령’ ‘풍등가’ ‘달거리’ 등이 담긴다.

소리꾼 이희문이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 &lt;한국남자&gt;2집. 이희문컴퍼니 제공
소리꾼 이희문이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 <한국남자>2집. 이희문컴퍼니 제공

잡가는 이희문과 여러모로 닮았다. 국악계의 이단아, 세계적인 난봉꾼, 조선의 아이돌, B급 소리꾼 등의 수식어가 붙는 그는 늘 장르를 넘나들고, 젠더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워왔다. “잡가의 ‘잡’은 한자로 ‘섞인다’는 뜻이에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가 모호하면서도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장르가 잡가인 거죠.”

이희문은 파격과 변신의 아이콘이다. 강렬한 비주얼 퍼포먼스는 그의 주무기이자, 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다. 하이힐과 망사스타킹을 신고, 폭탄 머리 은빛 가발이나 코르셋을 착용한 채 몸을 비틀며 무대를 압도한다. 국내는 물론 일찌감치 국외에서 주목한 이유기도 하다.

이번에도 예상을 뛰어넘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마련한 온라인 콘서트 ‘링크’(4월27일~7월3일)의 지난 5일 공연을 맡은 그는 앵두빛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 섰다. 머리에는 양 갈래로 땋은 가발을 쓰고, 얼굴에는 주근깨 메이크업을 한 영락없는 여성의 모습이었지만, ‘숯검댕이’ 눈썹에 두꺼운 콧수염, 역도 선수들이 허리에 차는 리프팅 벨트로 남성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높이 1m가량의 호랑이 모형도 무대에 올렸는데, 이 모형은 ‘한국 남자’의 ‘한국’을 표현한 것이다. 한반도 지도가 통상 호랑이 형상에 비유되는 것에 착안했다. 의상과 무대 등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패션 브랜드 푸시버튼의 박승건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한국 남성을 희화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남성성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거죠.”

소리꾼 이희문(가운데)이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 &lt;한국남자&gt;2집. 이희문컴퍼니 제공
소리꾼 이희문(가운데)이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 <한국남자>2집. 이희문컴퍼니 제공

3년 전 ‘한국 남자’ 프로젝트는 여성들에 대한 위로에서 시작됐다. “민요 가사를 보면, 대체로 여성의 슬픔을 달래주는 내용이 많아요. 그동안 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잘못을 많이 해왔잖아요. 민요를 통해서 여성들을 위로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저를 포함해 당시 한국 남자 7명(지금은 5명)이 모여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거예요.”

그는 소리꾼이 되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소리’를 시작한 것은 17년 전인 27살 때다.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간 민요 공연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공연을 보는 도중 아는 민요가 나와 흥얼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엄마 친구’가 “소리를 한번 해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어머니는 고주랑 명창이고, 소리를 권한 ‘엄마 친구’는 그의 스승이 된 이춘희 명창(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이다.

경기민요의 세계로 들어서기 전, 그의 꿈은 대중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유년 시절 주현미, 민해경, 마이클 잭슨, 마돈나에 열광했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가수가 되기 위해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획사가 아니었던 탓에 꿈은 6개월 만에 물거품이 됐다. 일본에서 영상 공부를 하고 귀국한 뒤, 가수의 꿈을 대신해 뮤직비디오 조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통해 감각에 깊게 새겨진 민요의 무늬를 그는 끝내 지울 수 없었다.

프로젝트 그룹 ‘오방신(神)과’. 가운데가 이희문이다. 이희문컴퍼니 제공
프로젝트 그룹 ‘오방신(神)과’. 가운데가 이희문이다. 이희문컴퍼니 제공

소리를 하며 그는 전통을 고수하는 대신 전복하고 파괴하는 길을 택했다. 부담은 없었을까. “스승님(이춘희 명창)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전통을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너처럼 파괴하고 갖고 놀 줄 아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그 말에 저는 두려울 것이 없었죠.”

그는 “전통은 그 시대에서 가장 ‘힙’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이 되기 위해선 당대에 살아남아야 하고, 그만큼 힘과 생명력을 가져야 해요. 시대와 맞물려 나아가야 하죠. 저 혼자 민요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영역을 넓혀가며 많은 이들과 협업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그의 노래에는 생성과 변형의 자유로움이 있다. 그것은 고착이 없는 한없는 노래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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