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나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올해 상반기 문화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한때 공연장과 영화관이 문을 걸어 잠그면서 공연과 영화는 줄줄이 취소됐고, 미술관과 박물관도 잇달아 휴관하면서 각종 전시는 ‘올스톱’됐다. 가요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가수들은 신곡 발표를 연기했으며, 콘서트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요계는 공연·영화·미술계보다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다. 콘서트는 여전히 어렵지만, 음악은 그 특성상 여러 사람이 모이지 않더라도, 대중이 개별적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초토화된 문화계 다른 분야와 달리, 상반기 가요계를 그나마 정리해볼 수 있는 이유다.
<아는형님>에 출연한 <미스터트롯> 톱7. 제이티비시 제공
상반기 가요계는 세가지 열쇳말(키워드)로 압축된다. 바로 ‘트로트’, ‘언택트’(비대면), ‘오에스티’(OST)다.
올 상반기 트로트 열풍은 가요계를 뒤흔들었다. 지난해 <미스트롯>(티브이조선)의 인기로 재조명된 트로트는 올 상반기 <미스터트롯>을 거치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임영웅·영탁·이찬원·김호중·정동원·김희재·장민호 등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들은 일약 스타로 떠오르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시장을 접수했다.
음원 차트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이돌 가수가 점령해온 음원 시장에 트로트 가수의 곡이 이례적으로 진입한 것이다.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가 대표적이다. 이 곡은 지난 4월3일 발표된 직후 바이브, 벅스, 소리바다 실시간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석달이 지난 1일 현재,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의 일간 차트 기준으로도 31위에 올라 있다.
트로트 열풍은 방송까지 이어졌다. <미스터트롯> 인기 이후 <뽕 따러 가세>(티브이조선), <트로트퀸>(엠비엔), <나는 트로트 가수다>(엠비시에브리원) 등 트로트 예능이 이미 선을 보였고, <트롯신이 떴다>(에스비에스),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이상 티브이조선), <내게 온(ON) 트롯>(에스비에스플러스)이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엠비엔>(MBN)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방방콘 더 라이브’ 공연을 펼친 방탄소년단(BTS).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트로트 붐이 상반기 가요계의 내용적 변화라면 외적 변화는 바로 ‘온택트’다. ‘온택트’는 온라인과 콘택트(접촉)의 합성어로, 온라인 공연이 올 상반기 ‘언택트’ 시대의 대안적 모델로 자리잡았음을 뜻한다. 코로나19로 가수들이 콘서트나 쇼케이스를 열 수 없게 되자, 돌파구로 삼은 ‘랜선 공연’이나 ‘온라인 쇼케이스’에 첨단기술이 더해져 하나의 장르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 선두에 방탄소년단(BTS)이 있다. 이들은 지난 6월14일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를 통해 유료 온라인 콘서트 ‘방방콘 더 라이브’를 열었다. 이 온라인 공연 동시접속자는 최대 75만6600여명이었다. 온라인을 통한 새로운 공연 문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엔시티(NCT)127 등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그룹도 온라인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로 전세계 수만명의 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음원 사이트 ‘멜론’의 지난 4월25일 일간 차트 순위. 멜론 갈무리
올 상반기에는 드라마 삽입곡(오에스티)의 강세도 이어졌다. 인기 드라마에 삽입된 오에스티는 늘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신곡 발표가 뜸해지면서 드라마 오에스티가 더욱 주목을 받았다. 특히 <슬기로운 의사생활>(티브이엔)의 삽입곡 ‘아로하’(조정석),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전미도)를 비롯해 <이태원 클라쓰>(제이티비시)의 ‘시작’(가호), ‘돌덩이’(하현우) 등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하반기에도 이런 세가지 흐름이 계속 이어질까?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온라인 공연은 불가피하게 이어지겠지만, 트로트 열풍은 티브이만 틀면 나오는 트로트 예능에 따른 ‘피로감’으로 다소 주춤해질 것”이라며 “7월 중순 이효리, 비, 유재석으로 꾸려진 혼성그룹 ‘싹쓰리’가 데뷔하면, 하반기 가요계에 1990~2000년대 ‘복고 음악’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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