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송영달 미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 명예교수
이번 책에는 송 교수가 2007년 캐나다 에드먼턴에 사는 키스의 조카 집을 찾아가 처음 확인하고 구매까지 한 ‘푸른 옷을 입은 조선 시대 무인’ 수채화도 실렸다. 그림엔 제목이나 제작연도도 없지만 송 교수는 거북선 병풍 앞의 당당한 무인이 이순신 장군이라고 추정한다. 여수나 통영 등 남해 쪽 사당에서 지금은 사라진 이순신 초상화를 스케치하고 색을 입혔으리라는 것이다. 그림이 이상범 작가의 이순신 초상화(1932년 작)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이순신 전문가 박종평씨 의견도 그의 추정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가정이 맞는다면 그림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순신 초상화가 된다. 이상범 작품도 사라졌고 그 뒤에 나온 초상화는 다 상상 속 창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 작품의 무인이 이순신 5대손의 얼굴과 비슷하다는 등 다른 견해도 있다. “키스가 한국을 찾은 1920년대에는 서양 사람들이 한국 여행을 하려면 연줄이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여수나 순천 등 남해에는 감리교 선교사들이 많았어요. 전라도 남해 경치가 수려해 서양 사람들이 많이 찾았죠. 또 이순신 초상화 중 하나를 당시 서양 사람들이 가져갔다는 기록도 있어요. 키스가 한국에 오면 머물던 곳이 의료 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 집이었어요. 로제타 아들 셔우드는 거북선으로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려고 했어요. 일제 반대로 무산됐지만요. 키스도 거북선의 의미를 잘 알았을 겁니다. 그는 상상으로 그린 사람이 아니었죠. 이 초상화는 또 키스 작품 중 가장 큽니다. 작가가 그림 속 인물을 특별하게 생각해서겠죠.”
서울 신촌이 고향인 그가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로터리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간 게 4·19 나던 1960년이다. 7년 뒤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미국 정부 재무행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70년에 연세대 교수로 부임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 향했단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군인들이 대학 캠퍼스 안에까지 들어오고 수시로 최루탄이 터지고 언론 자유가 제한된” 시국 탓도 있었단다.
대학에서 미국 정부론을 가르쳤던 그는 틈틈이 고서점 순례를 했다. “퇴임하고 읽으려고 서양인이 한국에 대해 쓴 책을 모았어요.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궁금하더군요. 휴가 때 뉴욕이나 워싱턴, 런던 등 큰 도시를 가면 꼭 헌책방을 들러 한국 관련 책을 찾았어요. 고서점에 몇 권씩은 꼭 있어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구석에 있더군요. 비싸지도 않았고요. 미국 대학도서관에서 장서를 정리하며 세일할 때도 샀죠.”
행정학 박사 따고 귀국…연세대 교수로
1971년 다시 건너가 ‘미국 정부론’ 강의
취미로 ‘서양인 쓴 한국 관련 책’ 수집 영국인 키스 자매 펴낸 ‘올드 코리아’
2006년 첫 번역…최근 ‘완전 복원판’
“키스 그림들 고국 전시·기증하고파” 그는 이렇게 모은 400여 권을 4년 전에 고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 “1880년부터 1950년까지 서양인이 낸 단행본 가운데 코리아 제목이 있는 책은 거의 다 모았죠. 98년 교수 퇴임 뒤에 내가 책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한국 도서관에 기증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에 보낸 게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증 도서를 궁금해하자 그는 먼저 캐나다 출신 장로회 선교사 제임스 게일(1863~1937) 이야기를 꺼냈다. “기증한 책 중에 게일의 <한영사전> 초판본(1897)이 있어요. 한국어 변천사를 아는 데 중요한 책이죠.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다 사전을 만들었어요. 게일은 <천로역정>을 한국어로 옮기고 김만중 <구운몽>을 영역했어요. 한국에 동정적이었던 스코틀랜드계 캐나다 언론인 프레데릭 매켄지가 쓴 <한국의 비극>과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도 있어요. 외국인 선교사들이 짧은 시간에 한국어를 읽히고 역사에 대한 책까지 썼다는 게 놀라워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41년 7월 미국에서 낸 <재팬 인사이드 아웃>(한국어판 <일본내막기>)도 있죠.”
키스의 책은 90년대 초반 고서점에서 처음 접했다. 이 만남은 은퇴 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단다. 그는 98년 퇴임 무렵부터 키스 작품 수집에 힘을 쏟았고 키스의 저작 두권도 우리말로 옮겼다. 왜 키스였을까.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했을 무렵 나온 서양인 책을 보면 한국에 긍정적이지 않아요. 일본이 문호를 열어 서양 문물을 잽싸게 받아들인 것은 좋게 보고 조선은 미개하고 문화도 보잘것없다고 썼어요. 차라리 일본이 식민 지배해 다스리면 좋을 것 같다고도 했죠. 기자나 학자들이 쓴 글이 대부분 그래요. 그런데 키스는 한국에 너무 친절하고 동정적으로 썼더군요. 그림은 우리 일상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고요. 알아보니 판화로 만든 게 많았어요. 교수 월급이 많지 않아 하나씩 사기 시작했죠.” 그는 키스 작품을 구하러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은 물론 영국 런던까지 찾았다고 했다. 그렇게 키스의 판화 34점을 다 모았고, 수채화도 나오는 대로 다 구매해 지금 9점을 가지고 있다. “김윤식(조선말 문신, 1835~1922)이 죽기 몇 달 전에 관복을 입고 그린 초상화는 런던에서 꽤 많은 돈을 주고 샀어요. 요즘은 나오는 게 없어요. 이름이 알려져 값도 꽤 올랐고요.”
키스 그림의 매력을 묻자 송 교수는 “한국 문화를 그린 점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답했다. “우리 전통의 모습을 천연색으로 그렸어요. 그 시절 모습을 서양 사람들이 그렸는데 지금 남은 게 몇 점 없어요. 키스의 그림은 세부를 봐야 해요. 많은 이야기가 담겼어요. 그 이상으로 우리 문화를 표현한 게 없어요. 결혼식 날 침울한 모습의 신부를 천연색으로 그린 그림이나 신부를 태운 가마 행렬이 신랑 집으로 행차하는 그림이 대표적이죠. 청계천 어딘가 풍경인데 호랑이 가죽이 가마 위를 덮고 있어요.” 키스는 1919년에 그린 수채화 ‘신부’에 이런 설명을 붙였다.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 하고 앉아서 보지도 못한다. (…) 하루 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뎌내야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키스의 그림 역시 한국의 일상 풍경이 잘 드러난 ‘시골 결혼 잔치’다. “조그만 판화에 사람이 30명이나 있어요. 한국 시골 사람들의 잔치 풍경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그린 사람이 없어요. 우리 아버지들이 살아간 모습을 현실보다 더 아름답게 그렸죠.”
완전 복원판이란 이름으로 다시 번역한 이유를 묻는 말에 송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키스의 한국 작품은 그동안 찾을 수 있는 것은 다 찾았어요. 더 이상은 없다고 생각하니 총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품목록이나 참고 문헌 그리고 같은 그림이라도 수채화나 판화를 비교하는 고화질 도판을 실어 키스 연구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한국에 ‘이순신 초상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의 마음속엔 지금 두 가지 계획이 있다. 하나는 키스가 한국이나 동아시아 문화를 소재로 그린 그림을 다 모아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 그동안 모은 키스 작품을 한국의 책임 있는 박물관에 기증하는 일이다. “국립 중앙박물관과 같은 중심적 위치에 있는 미술관에서 키스 전시를 했으면 해요. 한국 소재 그림만으로 전시 가능한 수채화는 56점 정도 됩니다. 제가 작품을 그동안 많이 찾아다녀 세계 각국의 소장자들과 접촉할 수 있어요. 키스가 중국과 일본 필리핀 등의 문화를 그린 그림도 80점 정도 됩니다. 같이 모아 전시회를 하면 더 좋겠죠. 이순신 초상화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면 한국 그림만으로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덧붙였다. “내가 모은 키스 그림은 하나의 묶음으로 우리나라의 책임 있는 박물관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기증하려고 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송영달 교수 뒤로 보이는 그림은 키스의 목판화인 ‘민씨가의 규수’이다. 송 교수는 미 노스캐롤라이나 그린빌 소재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에서 1998년에 퇴임했다. 송영달 교수 제공
“키스에게 씐 것 같다는 말도 들었죠. 허허.”송영달(83) 미 이스트캐롤라이나대 명예교수는 최근 ‘완전 복원판’이란 수식어와 함께,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화가인 엘리자베스 키스(1881~1956)와 언니 엘스펫이 1946년에 함께 쓴 <올드 코리아>를 번역 출간했다. ‘방랑의 화가’로도 불린 키스는 1919년 이후 한국을 여러 차례 찾아 한국의 문화와 일상을 그렸다. 1919년 도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소재로 전시회를 열었고 2년 뒤에는 서양화가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도 했다. <올드 코리아>는 3·1 운동이 나던 1919년에 한국을 찾은 두 자매의 한국견문기로, 일제의 폭압적 탄압에 고통받던 한국 민중에 대해 온정적인 시선이 배어 있다. 글은 언니가 썼고, 동생이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을 생생히 그린 판화와 수채화 등 40점이 담겼다. 이번에 나온 한국어 번역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책과함께)에는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85점이 모두 고화질로 실렸다. 송 교수가 앞서 2006년에 낸 첫 번역본보다 19점이 더 많다. ‘완전 복원판’이라고 한 이유다. 지난달 25일 저녁(현지시각) 미 플로리다 자택에 머무는 송 교수와 전화로 만났다.
송영달 교수가 최근 낸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 표지.
송영달 교수가 ‘이순신 초상화’로 추정하는 키스 수채화. 책과함께 제공
1971년 다시 건너가 ‘미국 정부론’ 강의
취미로 ‘서양인 쓴 한국 관련 책’ 수집 영국인 키스 자매 펴낸 ‘올드 코리아’
2006년 첫 번역…최근 ‘완전 복원판’
“키스 그림들 고국 전시·기증하고파” 그는 이렇게 모은 400여 권을 4년 전에 고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 “1880년부터 1950년까지 서양인이 낸 단행본 가운데 코리아 제목이 있는 책은 거의 다 모았죠. 98년 교수 퇴임 뒤에 내가 책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한국 도서관에 기증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에 보낸 게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증 도서를 궁금해하자 그는 먼저 캐나다 출신 장로회 선교사 제임스 게일(1863~1937) 이야기를 꺼냈다. “기증한 책 중에 게일의 <한영사전> 초판본(1897)이 있어요. 한국어 변천사를 아는 데 중요한 책이죠.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다 사전을 만들었어요. 게일은 <천로역정>을 한국어로 옮기고 김만중 <구운몽>을 영역했어요. 한국에 동정적이었던 스코틀랜드계 캐나다 언론인 프레데릭 매켄지가 쓴 <한국의 비극>과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도 있어요. 외국인 선교사들이 짧은 시간에 한국어를 읽히고 역사에 대한 책까지 썼다는 게 놀라워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41년 7월 미국에서 낸 <재팬 인사이드 아웃>(한국어판 <일본내막기>)도 있죠.”
엘리자베스 키스 초상화.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인 이토 신수이 목판화다. 송 교수가 일본인 소장자에게 구매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책과함께 제공
키스 작품 ‘신부’ 책과함께 제공
키스 작 ‘과부’. 키스는 이 작품을 두고 이렇게 썼다. ‘(모델은) 한국 북부 지방 출신으로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 고문당한 흔적도 있지만 표정은 평온했고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키스는 1919년 한국 방문 때 이화학당 교장을 따라 만세운동으로 옥에 갇힌 학생들을 두차례나 면회했죠.”(송영달 교수). 키스 자매는 <올드 코리아>에 “3·1만세운동은 놀라운 발상이었고 영웅적 거사였다”고 기술했다. 책과함께 제공
키스가 그린 ‘시골 결혼 잔치’. 송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작은 판화 공간에 한국인 30명을 그렸다. 책과함께 제공
키스가 그린 ‘서당 풍경’. 키스는 이 작품 설명 끝에 “참으로 매혹적인 한국의 모습이었다”고 적었다. 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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