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까지 ‘이른 열대야’ 공연을 이어가는 브로콜리너마저. 스튜디오브로콜리 제공
잔인한 계절이었다. 코로나19로 일상은 멈춰 섰고, 공연장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였을까.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 그들이 선택한 노래는 바로 ‘잔인한 사월’이었다. 화창한 봄날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가 울려 퍼지자, 다소 긴장감이 흐르던 객석은 이내 공연이 주는 기대와 설렘으로 물들어갔다. 관객들은 저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 손이나 발로 박자를 맞춰가며 오랜만에 마주한 ‘해방구’와도 같은 공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지난 4일 저녁 7시부터 서울 용산구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는 모던록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공연 ‘이른 열대야’가 펼쳐졌다. 2007년 ‘앵콜요청금지’로 주목을 받은 뒤, ‘보편적인 노래’ ‘유자차’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등의 곡으로 사랑을 받아온 밴드다. 7월 현재, 덕원(보컬·베이시스트), 잔디(키보디스트), 류지(보컬·드러머) 3인조로 활동 중인 이들은 첫 곡을 부른 뒤 객석을 향해 감사의 마음부터 전했다. “힘든 일상을 보내고 계실 텐데, 어려운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이 ‘이른 열대야’ 공연을 시작한 것은 2011년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았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콘서트를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됐기 때문이다. 공연은 지난 3일부터 오는 19일까지 3주 동안 매주 금·토·일에 열린다. 대부분의 콘서트가 코로나19로 연기되거나 취소된 가운데 사실상 처음 열리는 3주간의 장기 콘서트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7월19일까지 ‘이른 열대야’ 공연을 이어가는 브로콜리너마저. 스튜디오브로콜리 제공
특히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가운데 어렵게 마련한 공연인 만큼, 이들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부분은 방역이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전공한 멤버 잔디가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공연에 앞서 의사, 간호사 등 방역전문가들로 별도의 ‘방역팀’을 꾸렸어요. 서울시의 방역지침도 모두 따랐습니다.” 공연을 마친 뒤 <한겨레>와 만난 잔디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방역전문가 자문을 통해 온라인 문진표 항목과 관객 동선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거리두기를 위해 공연장 자리도 대폭 줄였다. 앞뒤, 좌우 1칸씩을 모두 비워, 객석 사이를 1m 이상씩 띄웠다.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처음 경험하는 공연의 모습이지만, 이제는 이런 공연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들은 방역 전담 의료진도 공연장에 배치했다. 보통 공연장이나 대학, 결혼식장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체온을 재는 이들은 교육받은 일반인이지만, 이 공연은 실제 간호사가 참여해 전문성을 더했다. 간호사 김아무개(31)씨는 이날 공연장에 들어서는 모든 이가 마스크를 썼는지, 문진표를 작성했는지 확인하고 체온을 잰 뒤 일일이 몸의 이상 여부도 파악했다. 공연이 시작된 뒤에는 공연장 안에서 진행요원들과 함께 관객들이 마스크를 제대로 쓰는지와 거리두기를 잘 지키는지 등도 확인했다. 김씨는 “최근 며칠 동안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증가한 탓에 긴장하고 있다”면서도 “방역팀이 정부의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안전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7월19일까지 ‘이른 열대야’ 공연을 이어가는 브로콜리너마저. 스튜디오브로콜리 제공
관객들의 태도도 돋보였다.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공연에서 관객들은 손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쓴 채, 거리두기가 이뤄진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즐겼다. 환호하지 않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른바 ‘떼창’도 없었다. 다만, 큰 박수 소리로 공연에 화답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정은주(40)씨는 “공연장에 오기까지 솔직히 걱정되긴 했지만, 철저하게 방역이 이뤄지는 모습에 안도했다”며 “문진표 작성부터 공연장에 들어오기까지 이뤄지는 여러 절차가 전혀 번거롭지 않았다. 공연을 통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객석 거리두기로 관객 수를 수용 가능한 인원의 40% 수준으로 줄였는데도 공연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후원 덕분이다. “수익을 바라고 공연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에요. 지금 어디선가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다 비슷할 거예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그냥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덕원이 말했다.
그는 이런 마음을 이번 공연에서 공개한 신곡 ‘바른생활’에도 담았다. “그냥 걸어가다 보면, 잊혀지는 것도 있어/ 아름다운 풍경도 또다시, 나타날 거야”라는 노랫말을 담고 있다. “힘들고 우울할 때, 일상의 변화가 찾아왔을 때 기본적인 것을 못 챙길 때가 많잖아요. 그러면 더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해온 대로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어려움을 극복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만들었어요.”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공연은 끝이 났다. 앵콜은 공연장이 아니라 하늘이 열린 노들섬 실외에서 이뤄졌다.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젠가 문득 너무 힘들 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유자차’)
노래가 울려 퍼지는 노들섬 위로 둥근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