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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팬데믹 시대의 고립·외로움…‘사색하는 회화’ 팀 아이텔 개인전

등록 2020-07-16 18:38수정 2020-07-17 11:35

‘무제’ 대구미술관 10월18일까지
자연에 대한 갈망, 격리의 고통 등
기하학적 색면에 생생히 담아내
대구미술관 전시에 나온 팀 아이텔의 신작 <멕시코 정원_전경1>. 코로나가 유럽에 한창 확산하던 지난 3~5월 그려 완성했다고 한다.
대구미술관 전시에 나온 팀 아이텔의 신작 <멕시코 정원_전경1>. 코로나가 유럽에 한창 확산하던 지난 3~5월 그려 완성했다고 한다.

팬데믹 시대, 사람들의 내면을 은유하는 두 점의 그림이 내걸렸다. 얼핏 보면 시원하게 펼쳐진 정원 풍경이다. 쏟아져 내리듯 푸르죽죽하게 칠해진 양쪽의 녹음과 그 사이의 여백이 빛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풍경을 보면 볼수록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림 속 정원을 보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 때문이다. 시커먼 창틀 안에서 뒷짐을 지고 정원을 뚫어지게 보는 중년 여인의 뒷모습과 창틀 바깥에 서 있다가 그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여인의 앞모습. 둘의 얼굴이 마주치는 구도지만, 서로를 외면한다. 다가가며 고개를 숙이는 여인의 눈꺼풀은 감겨 있다. 중년 여인은 변함없이 전방의 녹음을 응시할 뿐이다. 상호 소통하지 않고 자기만의 영역에 고립된 코로나 시대 인간 군상일까.

대구미술관 전시에 나온 팀 아이텔의 신작 &lt;멕시코 정원_전경2&gt;. 코로나가 유럽에 한창 확산하던 지난 3~5월 그려 완성했다고 한다.
대구미술관 전시에 나온 팀 아이텔의 신작 <멕시코 정원_전경2>. 코로나가 유럽에 한창 확산하던 지난 3~5월 그려 완성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생각하는 회화’ ‘구상과 추상이 뒤얽힌 회화’로 세계 미술계에 선풍을 일으킨 독일 신라이프치히 화파 팀 아이텔(49)의 신작 <멕시코 정원> 연작이다. 한창 유럽에 코로나가 창궐하던 3∼5월 프랑스 파리 작업실에서 그린 이 두 점의 대작은 대면 접촉을 틀어막은 코로나19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선 문필가 고 황현산과 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표지 그림으로 유명한 팀 아이텔의 신작이 대구미술관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이 미술관이 올해 첫 해외전시로 마련한 팀 아이텔의 개인전 ‘무제(2001-2020)’에서다.

이번 개인전은 신작 3점을 포함해 20년간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다. 그는 파리에서 격리 생활을 하는 중에도 대구 전시를 위해 신작 <멕시코 정원_전경1>과 <멕시코 정원_전경2>를 출품했다. 또 <검은 모래>(2004), <보트>(2004), <오프닝>(2006), <푸른 하늘>(2018) 등 대표작 66점과 그림의 모티프가 된 사진 370여장, 작품에 영향을 준 서적 30여권도 같이 나왔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은 처음 공개되는 것들로,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정 공간, 불특정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어 그림 속 이미지를 ‘숨은그림찾기’ 하듯 살필 수 있다.

팀 아이텔의 2018년 작 &lt;앉아 있는 형상&gt;에 나온 작가의 자화상.
팀 아이텔의 2018년 작 <앉아 있는 형상>에 나온 작가의 자화상.

서부 독일의 레온베르크 출신인 팀 아이텔은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과거 동독 영역이던 라이프치히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라이프치히 화파는 구상회화가 강했던 동독과 추상성이 강했던 서독의 화풍을 결합해 1990년대 이래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색감, 화면 분할, 등 돌린 인물 등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을 그려내는 팀 아이텔의 작업 또한 전통 유화 느낌을 살리면서도 화면 구성 방식 등에서는 추상성이 도드라진다.

<멕시코 정원>에서 보듯 전시작 가운데는 격리된 일상, 사람들과 세상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는 고통, 자연에 대한 갈망,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유추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 음울한 색과 모호하게 붓질된 사람들의 표정이 기하학적인 색면 속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팀 아이텔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의 예외 없이 옆을 보는 측면이나 뒷모습만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도 <앉아 있는 형상>(2018) 외엔 모든 작품이 그렇다. 푸른 하늘이나 깊은 산맥을 배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응시하는 뒷모습이나(<산>, 2018) 온통 시커멓게 칠해진 화면의 일부만 산을 비춘 구도(<무제>, 2018)에 거대한 자연을 향해 터놓고 교감하고 싶은 작가 혹은 우리의 욕망을 응시하게 된다.

2010년 작 &lt;반사&gt;. 서로 다른 자리에 다른 자세를 취한 세 남자의 모습이 연못에 투영된 구도를 통해 계층 간의 단절과 간극을 상징한 작품이다.
2010년 작 <반사>. 서로 다른 자리에 다른 자세를 취한 세 남자의 모습이 연못에 투영된 구도를 통해 계층 간의 단절과 간극을 상징한 작품이다.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에 대한 오마주로 차린 2전시장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기하학적으로 절제되고 정갈한 선·면 분할을 인간 군상이 유영하듯 살펴보고 들어가려 하는 구성을 취한 작품들이다. 같이 있는 것 같아도 시선이 엇갈리거나 서로 외면하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 고립을 피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잠긴 듯한 사람들. 팀 아이텔의 그림은 관객에게 끊임없는 물음을 자아낸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각기 다른 상념을 가지고 서성이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팀 아이텔의 사색하는 회화다.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재감과 주체적 감각을 일깨우는 그의 그림은 오랫동안 살펴보고 되새김할 만한 가치와 재미가 넉넉하다. 10월18일까지. (053)803-7907.

대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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