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4집 앨범 <박수무곡>으로 돌아오는 국악 밴드 고래야. 플랑크톤뮤직 제공
악기 소리가 들려온다. 아득한 곳에서 시작된 것 같은 멀고 희미한 소리다. 둥~짝! 둥~둣, 둥~둣, 둥~둣. 선율은 느리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같은 리듬이다. 이내 악기 소리에 맞춰 흐르는 목소리. “멀리 들리는 경적 소리. 따라가 보니 일이 났소. 나는 싫어요. 나는 싫어. 험한 꼴 보기가 나는 싫어.” 반복되는 가락 속에 노래가 절정에 이르면, 장단은 이내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에 에헤야 에에헤야. 에 에헤야 에에헤야.” 어느덧 악기 소리는 물러가고, “짝짝짝짝” 하는 박수 소리가 가락을 주도한다.
국악 밴드 ‘고래야’가 오는 20일 발표하는 4집 앨범 <박수무곡>은 신명 가득한 ‘박수소리’란 곡으로 시작한다. 함경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토속 민요인 ‘전갑섬타령’을 새롭게 편곡한 곡이다. ‘박수소리’는 나뭇조각 6개를 엮어서 만든 국악기 ‘박’이 리듬을 끌어가며 박수 소리를 불러낸다. 박은 궁중음악에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지휘자 같은 구실을 하는 타악기다.
20일 4집 앨범 <박수무곡>으로 돌아오는 국악 밴드 고래야. 플랑크톤뮤직 제공
박수는 세계 공통의 언어다. 장단을 맞추거나 기쁨·축하·환영을 표할 때, 사람들은 손뼉을 마주쳐 소리를 낸다. <박수무곡>은 이 원형의 소리이자, 악기의 시원 같은 존재로 채워져 있다. “공연장에서 관객과 함께 즐기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박수는 좋은 소재였죠.” 지난 13일 만난 고래야의 멤버 경이(타악기)가 말했다. “자진모리·휘모리·굿거리 장단 등을 몰라도 관객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출 수 있도록 ‘심플’하게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가 박수인 이유다.
음반에는 모두 9곡이 담겼다. ‘박수소리’를 시작으로 ‘왔니’ ‘날이 새도록’ ‘먼동이 틀 때’ ‘큰일’ ‘떠난다’ ‘왔단다’ ‘지나온 날’ ‘잘 자라’로 이어진다. 박수 소리는 수록곡 전체를 엮는 실처럼 음반 곳곳에 배치돼 있다. 특히 수록곡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멀리서 들리는 ‘박수소리’를 따라가 보니, 악사들이 판을 벌이고 있어요. 악사들이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왔니’ 하고 묻는 거죠. 그곳에서 이들 모두는 ‘날이 새도록’, ‘먼동이 틀 때’까지 놀아요. 흥겹게. 그런데 그렇게 놀다 보면 ‘큰일’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너무 놀기만 했으니.” 함보영(보컬)이 말했다.
경이가 말을 받았다. “이룬 것은 없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생각도 들 거예요. 그럴 때 ‘떠난다’고 외치며 자신이 있던 공간을 떠나보지만, 새롭게 찾아간 곳도 크게 다를 건 없죠.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닌 거예요. 그렇게 다시 돌아와(‘왔단다’),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고, 비로소 모든 날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이야기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해결되며 ‘잘 자라’로 마무리를 짓게 돼요.”
20일 4집 앨범 <박수무곡>으로 돌아오는 국악 밴드 고래야. 플랑크톤뮤직 제공
고래야는 6인조 밴드다. 경이와 함보영을 비롯해 김동근(대금·소금·퉁소), 김초롱(타악기), 나선진(거문고), 고재현(기타)이 멤버다. 2010년 꾸려진 뒤,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동양·서양, 과거·현재가 어우러진 음악을 선보여왔다. 올해가 데뷔 10주년이다. 4년 만에 발표하는 이번 앨범은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인 셈이다. 특히 멤버 절반인 3명이 바뀌고 난 뒤, 처음 내놓는 결과물로 1, 2, 3집과 차별화된 음악을 선보인다. “앞선 앨범은 어쿠스틱 앙상블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앨범은 일렉 기타로 녹음했어요. 음원도 코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요.”(경이)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들의 음악은 국외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34개 나라 51개 도시에서 공연을 해왔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에는 미국 공영 라디오 엔피아르(NPR)의 간판 프로그램인 <작은 책상 콘서트>에도 출연했다.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팝스타인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다녀간 프로그램으로 2017년에 한국 음악인으로는 유일하게 민요 록밴드 ‘씽씽’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힘을 준 노랫말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천진난만한 답이 돌아온다. “나는 이대로 무럭무럭 자라서 큰일을 해내는 큰사람이 될 거야.” 노래 ‘큰일’에 담긴 가사다. 더 깊고 푸른 바다를 향한 고래의 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