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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작가 20년전 발견 작품, 새로 밝혀진 사실로 더 풍성

등록 2020-08-17 18:35수정 2020-08-18 02:37

[‘배운성 근대를 열다’전]
1920년대 프랑스 유학 월북작가 배운성
20년 만에 다시 갤러리 웅 등서 전시회
드러나지 않는 작품사로 숱한 화제 뿌려
“앞으로도 무수한 담론 담는 원천 될 것”
월북작가 배운성의 대표작인 <가족도>. 1930년대 초반에 독일에서 조선의 대가족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애초 사진으로만 전해지다 1999년 수집가 전창곤씨가 프랑스 파리 골동품상 가게에서 기적적으로 찾아낸 배운성 컬렉션에 포함돼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림 속 가족은 그가 집사 일을 하며 봉사했던 당대 조선 갑부 백인기 일가라는 설이 그동안 유력했으나 최근에는 배운성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이 등장해 논쟁이 일고 있기도 하다.
월북작가 배운성의 대표작인 <가족도>. 1930년대 초반에 독일에서 조선의 대가족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애초 사진으로만 전해지다 1999년 수집가 전창곤씨가 프랑스 파리 골동품상 가게에서 기적적으로 찾아낸 배운성 컬렉션에 포함돼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림 속 가족은 그가 집사 일을 하며 봉사했던 당대 조선 갑부 백인기 일가라는 설이 그동안 유력했으나 최근에는 배운성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이 등장해 논쟁이 일고 있기도 하다.

“기적이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품을 꼭 입수하세요.”

대물을 잡았다는 예상은 적중했다. 1920년대 국내 최초로 유럽에 미술 유학을 떠났던 월북작가 배운성(1900~1978)의 실제 작품이 40점 넘게 파리 골동품 가게에 남아 있었다니!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의 대가 이구열 선생한테서 온 메시지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1999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 현지에 나온 역대 한국 미술가의 작품을 수집하던 불문학 연구자 전창곤씨는 이 선생의 답신을 받고 설렜다. 그는 우연히 파리 드루오 경매장을 들렀다가 카페에서 현지 화랑주들의 밀담을 엿들었다. ‘코레앵’(한국), ‘자포네’(일본) 등을 소곤거리는 대화였다. 끼어들어 물어보니 일본 예술품을 취급한다는 한 화랑주가 “내가 아는 골동상이 배운성이란 한국 작가의 작품에 관해 아느냐는 질문을 하더라”고 일러주었다.

&lt;어머니의 초상&gt;. 193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 그렸다. 애초 작가의 어머니 초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작가의 프랑스 시절 유학생 출신으로 절친한 사이였던 윤을수(1909~1971) 신부가 남긴 엽서 기록을 통해 윤 신부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으로 드러났다.
<어머니의 초상>. 193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 그렸다. 애초 작가의 어머니 초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작가의 프랑스 시절 유학생 출신으로 절친한 사이였던 윤을수(1909~1971) 신부가 남긴 엽서 기록을 통해 윤 신부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으로 드러났다.

배운성?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1930년대 활동한 작가라는 정보만으로 지인인 파리 유학생 출신 미술사 연구자 이지호씨를 통해 이구열 선생에게 문의했고, “정말 중요한 작가”라는 회답을 받은 것. 전씨는 곧장 인수 작업을 시작했다. 파리 변방의 골동품 가게를 수소문해 구석에 고이 보관된 배운성의 작품을 발견했다. 묵주를 든 중년 조선 여인 초상과 서구식 바를 배경으로 전통 모자를 쓰고 미소 짓는 작가의 자화상이었다. 한국 근대미술사의 빈틈을 메워줄 배운성의 그림을 보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국 작가의 그림에 호기심을 갖는 듯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썼다고 그는 나중에 술회했다.

2000년까지 1년 동안 그는 자화상과 동서양 인물화, 전통 풍속과 풍경을 서양 화법으로 그린 그림 등 모두 48점을 입수했다. 그리고 고증을 거친 끝에 2001년 마침내 이 그림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회고전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었다. 월북작가 배운성의 숨은 명작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lt;박씨의 초상&gt;. 1930년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소장가 전창곤씨가 기록을 살핀 결과 1927년 유학 중이던 이종우의 파리 작업실에서 배운성, 이종우가 같은 모델을 두고 그린 작업으로 드러났다. 전씨는 이 그림과 같은 배경에 같은 복식을 한 남자를 그린 이종우의 그림 &lt;박함채 초상&gt;을 근거로 제시했다.
<박씨의 초상>. 1930년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소장가 전창곤씨가 기록을 살핀 결과 1927년 유학 중이던 이종우의 파리 작업실에서 배운성, 이종우가 같은 모델을 두고 그린 작업으로 드러났다. 전씨는 이 그림과 같은 배경에 같은 복식을 한 남자를 그린 이종우의 그림 <박함채 초상>을 근거로 제시했다.

20년 전 한국 미술판에 큰 파란을 일으킨 배운성의 발굴 작품들이 지금 서울 종로구 홍지동 자하문로 갤러리 웅, 본화랑, 아트아리에서 29일까지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개막해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배운성: 근대를 열다’전이다. 20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출품작은 같지만, 그사이 많은 연구와 분석이 쌓여 작품을 둘러싼 담론이 풍성해졌다.

2층에 나온 대표작이자 국가등록문화재인 <가족도>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대표적이다. 1930년대 초반 독일에서 조선의 대가족을 떠올리며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애초 사진으로만 전해지다 1999년 전창곤씨의 눈에 들어 국내로 들어왔다. 그림 속 대가족은 그가 집사로 일했던 집안으로, 그를 자기 아들(백명곤)과 함께 독일 유학까지 보내준 조선 갑부 백인기의 일가라는 설이 유력했다. 하지만 최근엔 배운성 자신의 가족을 묘사했다는 설이 새롭게 대두했다.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작가의 어머니 초상화와 <가족도> 속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의 모습이 여러모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하던 시절 윤을수 신부와 가까웠던 배운성은 조선의 전통 옷을 입은 성모자상도 유화로 그렸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뒷면에는 부처 앞에 불자가 예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하던 시절 윤을수 신부와 가까웠던 배운성은 조선의 전통 옷을 입은 성모자상도 유화로 그렸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뒷면에는 부처 앞에 불자가 예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간 밝혀진 사실은 또 있다. 배운성이 1930년대 후반 파리에서 그린 <어머니의 초상>은 애초 작가의 어머니 초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작가가 파리 유학 시절 절친했던 윤을수(1909~1971) 신부가 남긴 엽서를 통해 윤 신부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임이 드러났다. 더 흥미로운 건 <박씨의 초상>이다. 역시 1930년대 그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창곤씨가 기록을 살핀 결과 1927년 유학 중이던 이종우의 파리 작업실에서 배운성·이종우가 같은 모델을 두고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는 이 그림과 같은 배경에 같은 복식을 한 남자 모델을 그린 이종우의 그림 <박함채 초상>을 근거로 제시했는데, 실제로 두 그림은 필치만 다를 뿐 배경의 커튼, 의자, 인물의 용모와 복식이 거의 같다.

성모자상의 뒷면에 그려진 예불도. 왜 기독교 성화와 불교 관련 회화를 같은 화폭에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서양 문화를 함께 섭렵했던 작가의 작업 특징을 보여주는 양면화다.
성모자상의 뒷면에 그려진 예불도. 왜 기독교 성화와 불교 관련 회화를 같은 화폭에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서양 문화를 함께 섭렵했던 작가의 작업 특징을 보여주는 양면화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하던 시절 윤을수 신부와 가까웠던 배운성은 조선의 전통 옷을 입은 성모자상도 유화로 그렸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뒷면에는 부처 앞에 불자가 예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어 또 다른 감상의 묘미를 제공한다. 왜 기독교 성화와 불교 관련 회화를 같은 화폭에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서양 문화를 함께 섭렵했던 작가의 작업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전에서 프랑스문화원을 운영 중인 컬렉터 전창곤(62)씨는 “배운성의 작업은 앞으로도 무수한 담론과 이야기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가 그의 작품을 둘러싼 진실을 좀 더 눈여겨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갤러리 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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