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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40년 전 돌아가도 ‘야누스’ 열어 재즈할 거예요”

등록 2020-08-23 19:28수정 2020-08-24 02:36

‘한국 1세대 재즈 보컬’ 박성연씨 별세
1978년부터 첫 재즈클럽 ‘야누스’ 운영
2018년 11월23일 서울 서초동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노래하고 있는 고 박성연. JNH뮤직 제공
2018년 11월23일 서울 서초동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노래하고 있는 고 박성연. JNH뮤직 제공

한국 1세대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본명 박송자)씨가 23일 오전 8시2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

고인은 한국인이 연 최초의 재즈클럽 ‘야누스’를 만들고 운영하며 국내 재즈계의 발전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1960년대 중반 고교를 졸업한 뒤 주한미군 무대에서 노래할 가수를 뽑는 오디션에 합격해 데뷔했다. 재즈 불모지인 한국에서 “재즈를 실컷 노래하고 싶어” 1978년 서울 신촌에서 한국 토종 재즈클럽 야누스를 열었다. 한국 재즈 1세대 연주자들은 대부분 생계를 위해 나이트클럽 등에서 연주한 뒤 야누스에 모여 밤새 재즈 즉흥연주를 펼쳤다. 수많은 재즈 음악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누스가 한국 재즈의 산실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야누스를 운영하며 오랜 세월 재정난과 싸워야 했다. 신촌에서 대학로, 이대 후문, 청담동 등을 거쳐 서초동 교대역 부근으로 옮겨 다녔다. 문을 닫을 뻔한 위기도 몇 차례 있었지만, 그는 사재를 털고 후원자의 도움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특히 2012년에는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모아온 엘피(LP)음반 전부를 1천만에 처분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 사연을 들은 후배 음악가들이 그를 돕기 위해 헌정 공연 <땡큐, 박성연>을 열기도 했다. 고인은 지병 등의 이유로 2015년부터는 클럽 운영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후배 보컬리스트 말로가 이어받아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그는 1989년 첫 앨범 <박성연과 재즈 옛 더 야누스 Vol.1>을 발표했으며, 이후 모두 4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지난해 초엔 후배 가수 박효신과 함께 자동차 광고 모델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 광고의 배경 음악으로 자신의 곡 ‘바람이 부네요’를 박효신과 듀엣으로 다시 녹음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서울숲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서며 관객들과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는 2018년 야누스 40돌을 맞아 휠체어를 탄 채 클럽에서 특별 공연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결혼도 못 하고 적자만 냈지만, 후회는 없어요. 40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야누스를 할 거예요.”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아침 7시다. (02)2072-2033.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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