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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박성연의 ‘빛나는 재즈’ 경제난도 병마의 불운도 흐리지 못했죠”

등록 2020-08-24 18:43수정 2022-03-17 12:08

[가신이의 발자취] 재즈계 대모 박성연 선생을 기리며
어렵게 야누스 운영하면서도
속된 욕망 언제나 경계하셨죠
야누스 40년 무대에서 부른
블루스는 정말 멋졌어요
박성연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매일 서초동서 새로 시작합니다

2012년 ‘땡큐, 박성연’ 공연에서 아껴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박성연. JNH뮤직 제공
2012년 ‘땡큐, 박성연’ 공연에서 아껴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박성연. JNH뮤직 제공

2012년 어느 저녁, 박성연 선생님께서 전화로 날 찾으셨다. 찾아 뵈니, 재즈 클럽 야누스 근처 음식점에서 혼자 소주잔을 앞에 두고 계셨다. 그때도 건강이 매우 안 좋아 술을 드시면 안될 때였다. 평생 소장하던 엘피(LP) 전부를 오늘 파셨다고 했다.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야누스 운영난 때문이었다. 야누스로 가보니 엘피로 가득 차 있던 벽이 휑하게 비어 있었다. 그날 선생님은 내 앞에서 꺼이꺼이 우셨다. 어지간히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던 분이었다. 그 슬픔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야누스를 돕기로 하고 여러 보컬들과 힘을 모아 헌정 공연을 준비했다. 한국 재즈의 산실이 되어준 야누스를, 평생 혼자 힘겹게 끌고 온 그 삶에 경의와 고마움을 바치는 공연이었다. 그래서 제목이 ‘땡큐, 박성연’이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객석에서 앙코르가 터져 나왔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께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후배들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전성기 때 입었던 옷인데, 가장 화려한 날 입겠다고 아껴뒀던 것이라 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떼며 선생님은 환하게 웃고 계셨는데, 주위는 숙연해졌다. 곧이어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평생 경제난과 병마와 싸웠던 인생의 불운도, 이 빛나는 순간에는 범접하지 못했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90년대 말이었다. 클럽이 서울 이화여대 후문 쪽에 있을 때였다. 정기 공연을 위해 클럽을 찾아갈 때마다 선생님은 늘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유력 후원자가 내 공연을 보고 난 후 테이블 합석을 청했다. 나는 잘라 거절하고 대기실로 와버렸다. 선생님은 “잘했어”라고 오히려 나를 칭찬했다. 평생 어렵게 클럽 운영을 하면서도, 선생님은 속된 욕망을 언제나 경계하셨다.

선생님을 우리 집에 모시고 몇 달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사시던 곳이 재개발에 들어가 잠시 거처가 없어졌을 때였다. 선생님의 짐은 단출했다. 몸을 뉘일 작은 2인용 소파, 보물처럼 항상 머리맡에 두시는 시디(CD) 플레이어, 그리고 작은 장식장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클럽 야누스가 선생님의 실제적 집이었던 셈이다.

2018년 야누스 40주년 기념 무대에서 노래하는 박성연(오른쪽)과 말로. JNH뮤직 제공
2018년 야누스 40주년 기념 무대에서 노래하는 박성연(오른쪽)과 말로. JNH뮤직 제공

선생님은 노래하기 전에 슬쩍 마이크를 내려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매일 쓰시던 그 마이크에는 삶의 인장처럼 항상 붉은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었다. 야누스 무대에는 아무나 설 수 없었다. 선생님은 연주자들을 엄격하게 선별하셨다. 실력 있는 보컬이 나타나면 주저없이 무대에 올리고, 후배들과 함께 노래하기를 즐기셨다. 모자란 점은 가차없이 지적하고, 칭찬엔 늘 인색함이 없으셨다.

5년 전 어느 날, 선생님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해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그런 뒤 요양원 생활을 시작하셨다. 주인 잃은 야누스는 기약 없이 문을 닫았다. 야누스 명맥이 끊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 인수자를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내가 재즈 클럽 에반스를 운영하던 홍세존 대표와 공동 인수하게 됐다.

2018년 11월, 야누스 40주년 기념 무대에 선생님이 휠체어를 타고 올랐다. 객석은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블루스를 더 잘 부르게 될 것”이라고 하시던 자신의 말처럼, 선생님의 그날 블루스는 정말 멋졌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운명을 얘기하듯 ‘에브리타임 위 세이 굿바이’(Everytime we say good bye)를 부르셨다. 관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생님의 무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죽을 때까지 무대에서 노래하겠다”던 선생님의 말씀을 그날 몸으로 증명해 보이셨다.

오늘 밤 서울 서초동 야누스 무대에 불이 켜지면, 자유로운 재즈가 다시 흐를 것이다. ‘야누스’ 박성연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매일 밤 새롭게 시작될 뿐이다.

말로 ㅣ 재즈 보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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