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열풍이 소극장마저 삼킬 태세다. 이러다 연극은 씨가 말라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고개를 든다. 문제는 ‘뮤지컬이 소극장에 맞는 장르냐’ 하는 것이다. 뮤지컬 인기의 비결은 화려한 춤과 신나는 노래, 현란한 의상과 조명 같은 것일 텐데, 소극장에선 상당부분 불가능한 것들이다. 대극장의 경우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이 배우에 대한 환상을 제공하지만, 소극장에선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마저 잡아내는 ‘인색함’의 빌미가 된다.
유행으로의 무작정한 질주보다는 소극장에 맞는 형식과 내용을 창출하는 일이 필요한 때다. 마침 가능성 있는 소극장 뮤지컬 두 편이 무대에 올랐다. 젊은 패기가 돋보이는 <슬픔 혹은>(김한길 작·연출)과 삼일로 창고극장의 앵콜 공연 <결혼>(이강백 작·정대경 연출).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공연들이다.
몸팔고 장기팔아 희망찾기
‘슬픔 혹은’
‘가족’이라는 열쇠말로 관객을 울리겠다고 작정한 ‘신파’다. 춤이 없는 대신 스토리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음악드라마에 가깝다.
“배운 것 없고 능력도 없어 애인이 몸 팔아 벌어온 돈으로 피시방이나 다니는” 대책없는 청년 응덕(장덕수·김진욱)은 자신의 장기를 팔아 애인 수진(추정화)과 ‘굴밥집’을 내려고 한다. 그러나 수진은 3개월만 같이 살면 5천만원을 준다는 돈 많은 환자 ‘윤 회장’의 제안에 은근히 욕심이 생긴다. 이들의 은밀한 계획은 끝내 들통이 나고, 출연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꺼번에 갈등을 터뜨리며 ‘애거사 크리스티’적 해결을 시도한다. <슬픔 혹은>이라는 제목처럼,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내가 거짓말 할 때 울던 엄마/ 내 손을 잡고선 미안하다 말하고 눈감은 엄마/ 떠나간 엄마” 응덕이 ‘엄마’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마지막 절정에서 객석은 낮게 흐느낀다. 티브이 드라마 <사춘기>의 아역 탤런트 출신 장덕수의 노래와 <춘천 거기>의 김진욱이 펼치는 실감나는 연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작가 겸 연출가 김한길(34·혜화동1번지 4기동인)씨는, 객석을 향한 방백 장면이나, 응접실이 아닌 방 바닥에서 맨발로 등장하는 배우들을 통해, 자신이 오태석(서울예대 극작과 교수)의 제자임을 자랑스레 선언한다. 4월9일까지 대학로 두레홀2관. (02)741-5979.
90분 안에 결혼승낙을 받아라 ‘결혼’
땡전 한푼 없는 ‘남자’(박정민)가 결혼을 하겠다고, 하인이 딸린 고급 주택을 ‘90분 20초’ 동안 빌린다. 세잔의 <파란 풍경 속의 부부>가 붉고푸른 색채를 내뿜는 고급 응접실에서 ‘여자’(박정현·정한울)는 남자를 저울질하고, 남자는 빨리 여자의 승낙을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빌린 구두와 넥타이, 시계와 반지가 차례차례 남자에게서 “떠나가고”, 그는 결국 팬티 한장만 달랑 남긴 채 알몸이 된다. “내 것은 없어 어느 곳에도/ 있다면 그건 빌린 것일 뿐/ 나의 육신도 또 나의 마음도/ 사는 동안 빌린 것일 뿐/ 이 세상 모든 것은 덤일 뿐.” 극작가 이강백(59·서울예대 극작과 교수)이 32년 전 발표한 이 ‘고전’은 결혼이라는 주제에 머물지 않고, 인생에 대한 철학적 우화를 들려준다. 삼일로 창고극장 정대경(47) 대표는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롯한 초창기 수입 뮤지컬의 음악감독을 지낸 경험을 살려, 깔끔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축소판을 ‘브레히트적으로’ 빚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인(최윤)을 비롯한 배우들의 노래와 춤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청년 이강백식 낭만주의가 남루한 현실을 딛고 서려면 몇 겹의 복선이 더 필요할 듯하다. 2층에 갤러리를 마련해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소극장 운동의 성지’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을 찾는 일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오픈 런. (02)319-8020.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90분 안에 결혼승낙을 받아라 ‘결혼’
땡전 한푼 없는 ‘남자’(박정민)가 결혼을 하겠다고, 하인이 딸린 고급 주택을 ‘90분 20초’ 동안 빌린다. 세잔의 <파란 풍경 속의 부부>가 붉고푸른 색채를 내뿜는 고급 응접실에서 ‘여자’(박정현·정한울)는 남자를 저울질하고, 남자는 빨리 여자의 승낙을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빌린 구두와 넥타이, 시계와 반지가 차례차례 남자에게서 “떠나가고”, 그는 결국 팬티 한장만 달랑 남긴 채 알몸이 된다. “내 것은 없어 어느 곳에도/ 있다면 그건 빌린 것일 뿐/ 나의 육신도 또 나의 마음도/ 사는 동안 빌린 것일 뿐/ 이 세상 모든 것은 덤일 뿐.” 극작가 이강백(59·서울예대 극작과 교수)이 32년 전 발표한 이 ‘고전’은 결혼이라는 주제에 머물지 않고, 인생에 대한 철학적 우화를 들려준다. 삼일로 창고극장 정대경(47) 대표는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롯한 초창기 수입 뮤지컬의 음악감독을 지낸 경험을 살려, 깔끔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축소판을 ‘브레히트적으로’ 빚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인(최윤)을 비롯한 배우들의 노래와 춤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청년 이강백식 낭만주의가 남루한 현실을 딛고 서려면 몇 겹의 복선이 더 필요할 듯하다. 2층에 갤러리를 마련해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소극장 운동의 성지’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을 찾는 일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오픈 런. (02)319-8020.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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