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통해 오디션 프로젝트 ‘김태원석함’을 진행하고 있는 록밴드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김태원 클라쓰’ 제공
참가자는 잠시 허공을 올려다봤다. 긴장감에 표정은 굳었고, 기타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떨리는 표정도 잠시, 자신만의 감정으로 노래를 시작하자 실내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곡의 생경한 선율로 물들었다.
지난 9일 저녁 7시, 서울 강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는 록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유튜브로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젝트 ‘김태원석함’ 녹화가 한창이었다. 지난 4월부터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해온 이 프로젝트의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자리였다. 300명의 지원자가 도전했고, 작사·작곡·보컬·창의성 등의 평가를 거쳐 이들 가운데 최종 선정된 2명(오샘, 전주홍)이 결선 무대에 올랐다. 결선인 만큼 부활 멤버(박완규, 채제민, 최우재) 전원이 평가자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김태원석함’은 다듬어지지 않은 숨은 원석 같은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고자 김태원이 기획한 프로젝트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오디션이 중단되고, 음악 활동에 제약을 받는 인디 뮤지션에게 자신의 음악을 알릴 기회를 주고 싶다는 뜻에서 시작했다. 이에 공감한 케이티(KT) 그룹과 음원 플랫폼 지니뮤직이 그와 손을 잡았다. 지니뮤직 관계자는 “최근 새롭게 세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기업’이란 비전과 이 프로젝트의 기획의도가 잘 맞아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저녁 7시부터 서울 강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오디션 프로젝트 ‘김태원석함’에 참가한 도전자와 록밴드 부활 멤버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박완규, 전주홍, 오샘, 김태원, 최우재, 채제민. ‘김태원클라쓰’ 제공
특히 이 프로젝트는 예선과 본선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코로나19 시대에 대안적인 오디션 방식을 보여줬다. 4명이 경합한 준결승전과 결승전만 대면 오디션으로 치렀다. 김태원은 최종 우승자의 싱글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케이티와 지니뮤직은 앨범 제작과 프로모션을 맡을 예정이다. 우승자는 오는 18일 공개된다.
김태원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는 뭘까. 녹화에 앞서 만난 그는 “연예인이 아니라, 뮤지션(음악가)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2011년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뒤로는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를 안 했어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아쉬움이 자꾸 들더라고요.” 그는 가수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유명해지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진정한 음악가라면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둘 게 아니라 “음악에 미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 인생을 얘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음악이 너무 좋았고, 음악을 떠나봤더니 죽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와 음악을 한 겁니다. 그렇게 미쳐 있던 시간이 저의 가장 큰 자산이 됐죠. 미쳐야 다른 이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줄 수 있어요.”
그가 주목하는 도전자는 음악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부족함이 있고, 소외된 이들이다. “완성된 이들은 (가수가 될 수 있는) 다른 길이 많아요. 저는 콤플렉스 때문에 오디션에서 배제된 사람, 긴 시간 고독 속에서 사색한 사람을 찾으려 해요. 자신이 어떤 원석인지 모르는 친구들이죠. 어려운 작업인데 ‘절망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이런 마음에서 빚어진 그의 말은 참가자뿐만 아니라 영상을 보는 많은 이들을 위로한다. 유튜브 영상에는 ‘오랜 경험과 고민에서 나온 말에 힐링 되고 위로를 받게 된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지난 9일 저녁 7시부터 서울 강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오디션 프로젝트 ‘김태원석함’에 평가자로 참여한 록밴드 부활 멤버들. 왼쪽부터 김태원, 채제민, 최우재, 박완규. ‘김태원 클라쓰’ 제공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가 무겁기만 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평가는 냉정하고 조언은 따뜻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또 발랄하고 엉뚱하다. “김태원씨는 오디션을 본 적이 있습니까?”(채제민) “있죠. (수십년 전) 광주 나이트클럽에서 봤어요. 연주를 마치니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니덜이 밴더여?’ 바로 떨어졌어요.”(일동 웃음) 밴드 리더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물어보는 참가자에게는 “밥 먹을 때 앞자리를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앞자리요?”(참가자) “네. (자신을 마주 보는) 앞자리에 아무도 안 앉고 옆자리나 대각선 자리에 앉으면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얘들(부활 멤버) 다 내 앞에 안 앉아.” 이런 유쾌함 덕에 ‘김태원석함’을 방송하는 유튜브 채널 ‘김태원 클라쓰’는 개설 넉 달 만에 구독자가 5만명을 넘어섰다.
‘원석’을 찾는 과정에서 부활은 지난 11일 신곡 ‘순간’을 내놨다. 올겨울 부활 35주년을 맞아 발표할 정규 14집 앨범의 선공개 곡이다.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곡을 김태원과 나머지 멤버들이 만들던 방식에 비춰 이례적이다. “이루마의 오랜 팬이었어요. 그의 곡이 가진 멜로디 라인이 너무 아름다워서 제안했죠.”
그는 곡을 받고 오랜 생각 뒤 ‘글’(노랫말)을 썼다고 했다. “삶을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위대한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영화의 한 프레임처럼 떠오르는 순간 말이죠. 어린 시절 해 질 무렵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때,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활을 결성했을 때, 그런 찬란한 순간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인디 뮤지션 발굴 오디션 ‘김태원석함’ 포스터. 지니뮤직 제공
정규 14집은 8년 만의 작업이다. 1996~1998년 보컬로 활동한 박완규가 다시 합류했다. 앨범이 늦어진 이유를 묻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아팠다”는 말이 돌아온다. 그는 신장과 간이 안 좋다. 지난해 8월에는 행사장 무대에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좋아하던 술도 쓰러진 뒤로는 마시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룹 이름을 닮아서일까. “지금까지 서너번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어요. 큰 상처를 입었는데, 그것을 이겨냈을 때 음악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더라고요.” 데뷔 35년을 맞은 그는 “이제 음악을 좀 알 것 같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원석’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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