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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오빠 조동진을 위한 헌시, 슬픔을 향한 위로

등록 2020-11-12 04:59수정 2020-11-12 08:09

[가수 조동희, 9년만에 2집 발표]
포크계 전설 조동진·조동익의 동생
타이틀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
암으로 떠난 오빠 조동진 위해 써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들 노랫말로”
가사 먽저 쓰고 조동익이 곡 입혀
어쿠스틱 버전엔 장필순이 코러스
9년 만에 2집 앨범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발표한 조동희. 최소우주 제공
9년 만에 2집 앨범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발표한 조동희. 최소우주 제공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 그는 이런 문장 하나를 썼다. 2017년 초의 일이다. 슬픔은 앞선 무언가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오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지기 마련인 것처럼, 슬픔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는 문장을 밀고 나가진 못했다. 마음속에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펜은 거기서 멈춰 섰다.

같은 해 8월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암이었다. 오빠의 장례식장 한쪽 벽에서는 그의 오래전 인터뷰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20여년 전 영상 속 오빠는 젊었다. 오빠는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가진 슬픔이란 감정은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 같아요.” ‘오빠도 같은 생각을 했구나.’ 시대를 넘어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슬펐다. 오빠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문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노랫말을 써 내려갔다.

가수 조동희가 11일 발표한 2집 앨범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에는 슬픔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이야기가 담겼다. “삶은 소중한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슬픔은 결국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오는 거니까.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며 삶의 낙관을 잃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걸 깨닫는 순간 평화가 찾아오더라고요.” 최근 만난 조동희가 말했다. 2집은 2011년 11월 발표한 1집 <비둘기> 이후 9년 만이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요.”

9년 만에 2집 앨범 &lt;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gt;를 발표한 조동희. 최소우주 제공
9년 만에 2집 앨범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발표한 조동희. 최소우주 제공

조동희는 한국 포크계의 대부인 조동진과 전설의 포크 듀오 ‘어떤날’ 조동익의 동생이다. 이번 앨범은 조동익과 공동으로 작업했다. 조동희가 쓴 노랫말을 보고 조동익이 그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면, 다시 노랫말을 다듬고, 멜로디를 고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완성된 멜로디에 작사가가 노랫말을 입히는 통상적인 대중가요 작법과 반대로 작업을 한 것이다. “가사를 곡에 끼워 맞추는 작업보다 자연스럽다고 할까요? 이런 방식이 곡과 노랫말의 조화가 더 잘 이뤄지게 하는 것 같아요.”

타이틀곡은 앨범과 같은 제목의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다. 조동희가 2017년 영원히 잠든 26살 위 오빠인 조동진을 위해 쓴 곡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한 개인의 자전적 기억을 넘어, 보편적 감성을 끌어낸다.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 산다는 건 하루하루 어려운 시// 내 곁을 따르는 저 긴 그림자는/ 저 멀리 그대의 선물이에요/ 내 마음에 그대의 웃음을 담아요/ 난 이미 행복한 사람이니까.”

앨범에는 이 곡의 어쿠스틱 버전을 비롯해 모두 11곡이 수록됐다. 특히 조동희의 개인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노래가 눈에 띈다. ‘사슴꿈’ ‘라디오’ ‘동쪽여자’가 대표적이다. ‘사슴꿈’은 아름다운 사슴이 나오는 꿈을 꾼 뒤, 사랑하고 싶은 대상을 사슴에 녹여 표현한 곡이다. “복권을 사는 대신, 사슴꿈을 꾸고는 노래를 만들었죠.”(웃음) ‘라디오’는 그가 1980년대부터 들어온 라디오에 대한 느낌을 학창 시절 일기장에 쓴 것과 같은 노랫말로 표현했고, 자기 이름의 뜻을 제목으로 삼은 ‘동쪽여자’는 정서의 뿌리가 된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수록곡 가운데 조동희가 노랫말을 쓰지 않은 유일한 곡은 ‘초생달’(초승달)이다. ‘어떤날’의 두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1989년 2집에 수록된 노래다. “어떤날이 부른 곡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예요. 꼭 나만의 ‘초생달’로 불러보고 싶어서 이번 앨범에 담았어요.” 예스러운 느낌을 내기 위해 이 곡에는 엘피(LP) 사운드의 잡음을 입혔다.

9년 만에 2집 앨범 &lt;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gt;를 발표한 조동희. 최소우주 제공
9년 만에 2집 앨범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발표한 조동희. 최소우주 제공

이번 앨범에는 조동익의 삶과 음악의 동반자인 가수 장필순의 목소리도 담겼다.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 어쿠스틱 버전에 코러스로 참여한 것이다. “제주도에 있는 동익 오빠 작업실에서 앨범 녹음을 했어요. 어쿠스틱 버전에는 ‘소년합창단’ 같은 성스럽고 아름다운 코러스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거실에 있던 필순 언니에게 부탁드렸죠. 흔쾌히 해주시더라고요. 홈 리코딩의 장점이자 ‘패밀리 비즈니스’의 장점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웃음)”

돌이켜보면,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영화학도였던 그는 오빠인 조동진과 조동익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음악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고, 작사가와 가수로서 작은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인생의 등불 같은 분들이죠.” 그는 그 ‘씨앗’과 ‘날개’로 “노래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는 자신의 노래를 널리 알리는 일이 아니다. 치매 노인이나 수감된 청소년 등을 찾아가, 그들만의 노래를 가질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는 “고통받는 이들이나 노래가 필요한 이들이 남의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노래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꿈”이라고 했다. “노래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고, 삶을 긍정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노래하는 삶이 위로와 낙관으로 빛나는 이유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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