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만평을 그리는 권범철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 전시장에서 ‘재상 이낙연’과 ‘복서 이재명’을 그린 신작 풍자화 작품들 사이에 서 있다.
조선시대 ‘재상 이낙연’인가? <한겨레> 만평을 그리는 권범철(46) 작가는 최근 얼굴의 터럭 한 올도 놓치지 않는 전통 초상화 필법을 본떠 대선주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초상을 그렸다. 정객의 연륜이 녹아든 미간과 볼의 중첩된 주름살이 날카로운 눈매와 어우러져 마치 조정 중신의 얼굴상처럼 느껴진다. 사모를 쓰고 흉배 관복을 입은 그의 초상은 한참 보고 나서야 웃음을 머금게 된다. 작가는 웃통을 벗고 글러브를 치켜든 ‘복서 이재명’의 <타임>지 가상 표지화도 제작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안경을 끼고 눈 밑 뺨에 반창고를 붙인 채 정면을 응시하는 표정이 기세등등해 보인다.
권 작가는 최근 청와대 아랫동네인 서울 종로구 창성동 갤러리 자인제노에 개인전 ‘그림판 15-20’을 열어 유력 정치인의 재치 넘치는 풍자화들을 내걸었다. 이낙연과 이재명 외에 성난 ‘헐크’로 변신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럽 왕정시대 책사를 연상시키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흉상, 우주비행사 특수복을 입고 웃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의 모습도 등장하는데, 곱씹어 보는 맛이 쏠쏠하다.
12일부터 전시장에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권범철 작가의 신작 만평 그림. 최근 끝난 미국 대선 이후의 국내외 정세를 소재로 삼았다. 바이든 당선자 앞에 미끄러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과 피로한 빛을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 먹먹한 표정을 짓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인다. 이들 주위로 각양각색의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는 국내 주요 정객들의 모습이 전태일 열사, 택배기사·상담원 등의 평범한 노동자 군상과 뒤섞여 있다.
전시 제목에서 보듯 2015년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200장 넘게 그린 시사만평의 주요 이미지를 콜라주한 작품 여섯 점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세월호 사건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소녀상 문제 등으로 시끄러웠던 ‘친박의 시대’는 물론 촛불혁명과 탄핵을 거쳐 탄생한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상황들이 빼곡하다. 미국 대선 이후 국내외 정세를 유명한 남·북·미 정상 등 시사적 인물과 택배노동자, 편의점 직원 등 평범한 군상과 뒤섞어 표현한 신작 만평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지난 6년간의 만평 작업을 중간 정리하는 차원에서 차린 전시”라며 “만평들을 정리해보니 숱한 격동의 시간이 지나갔지만, 정작 힘겹게 사는 약자들의 현실은 별로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20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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