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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정밀아, 노래에 담은 ‘푸른 언덕’ 청파동 소리들

등록 2020-11-15 16:39수정 2020-11-16 02:37

정규 3집 <청파소나타> 발매
전면철거 개발 고민 담은 곡도
3집 앨범 &lt;청파소나타&gt;를 발표한 가수 정밀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이다. 금반지레코드 제공
3집 앨범 <청파소나타>를 발표한 가수 정밀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이다. 금반지레코드 제공

‘푸른 언덕’이란 이름을 간직한 서울 용산구 청파동은 그에게 작은 풀 한 포기, 새소리까지 또렷한 땅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해 동네를 산책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결과다.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부려놓은 귀여움”이 있었다. 문 앞에 놓인 아기자기한 화분에선 작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주민의 마음이 전해졌고, 전봇대나 담벼락에 붙은 판박이 스티커에선 재잘거리는 동네 꼬마들의 발랄함이 묻어났다.

청파동에서 푸른 언덕을 떠올리긴 어렵다. 서울역 뒤쪽에 엎드려 있는 이 언덕에는 다닥다닥 들어선 집들이 빼곡하다. 집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들쭉날쭉 자리하고 있는데, 골목길은 그 집들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실핏줄처럼 온 마을을 잇는다. 길에는 그곳에 뿌리박고 사는 주민의 모습뿐만 아니라, 옛 모습을 간직한 봉제공장의 미싱이 도는 소리, 원단을 가득 싣고 좁은 길을 휘젓고 다니는 오토바이 소리, 서울역을 오가는 기차 소리가 가득하다. “1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근처 산책만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네를 탐구하는 탐구가, 소리를 모으는 채집가가 됐어요.” 가수 정밀아가 말했다.

그가 3년 만에 내놓은 정규 3집 <청파소나타>는 이 ‘푸른 언덕’과 세상의 풍경,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매일의 오늘을 사는 세상을 담은 단편영화 같은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코로나19와 주변 소음이 이 앨범을 태어나게 한 셈이죠.”

3집 앨범 &lt;청파소나타&gt;를 발표한 가수 정밀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이다. 금반지레코드 제공
3집 앨범 <청파소나타>를 발표한 가수 정밀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이다. 금반지레코드 제공

앨범의 배경은 청파로와 서울역 일대다. 시간상으로는 새벽부터 잠들기 전, 계절상으론 가을부터 이듬해 초여름까지다. 첫 곡 ‘서시’는 정밀아가 직접 녹음한 새벽녘 새소리로 시작한다. 이어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단어를 재해석한 노랫말이 그의 잔잔한 목소리를 타고 귓가에 내려앉는다. “하늘, 하늘을 바라보는가/ 바람, 바람은 멈추었는가/ 별, 별빛 아래 써 내려간/ 시, 시는 생동하는가.”

타이틀곡인 ‘서울역에서 출발’은 정밀아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뒤늦게 음악가가 된 딸을 걱정하는 고향 집 엄마와 전화로 이야기하는 대화 형식으로 흐른다. 경쾌하고 발랄한 노래는 엄마와 딸, 서울역이란 공간이 주는 설렘 등이 그려지면서 한 편의 단편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옛 풍경을 간직한 곳을 배경으로 한 앨범이다 보니, 전면 철거 방식의 개발에 대한 고민을 담은 노래도 있다. ‘오래된 동네’는 재개발의 풍경이 음악으로 수렴된 곡이다. 그가 걸어 다닌 청파로 일대와 만리동, 아현동의 실제 모습이 투영됐다. “오래된 도시에 더는 오래된 것들이 없고/ 오래된 동네에 더는 오래된 사람이 없네// 이곳의 주인은 누구, 누가 이곳에 사는지/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오늘의 풍경을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낸 곡도 눈에 띈다. ‘환란일기’와 ‘광장’이 대표적이다. ‘환란일기’는 코로나19로 “보통 아닌 것들이 보통이 되는 오늘”의 풍경을 고스란히 노래로 녹여냈다. ‘광장’은 그가 청파동에서 출발해 걸어 다니며 마주한 서울역광장, 시청 앞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을 담은 곡이다. 다만, 정밀아는 광장의 풍경만을 노래하지 않고 그곳에 서서 우리에게 묻는다. “젖은 마음을 내어 말릴 한 평 마음의 광장”이 있느냐고.

그는 “‘내가 지금 속해 있는 환경과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노래할 것인가’라는 물음표가 커지면서 이번 앨범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환란 가운데서도 노래가 움트듯 피어오른 이유다. 그 물음표에 대한 답은 ‘서시’에 담겨 있었다. “밤, 이 밤은 물러날지니/ 아침, 새 아침이 밝아오리라//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라//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라.”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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