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차려진 ‘견훤, 새로운 시대를 열다’ 전시장 도입부 모습. 900~901년 후백제의 연호로 ‘바르게 연다’는 뜻을 지닌 ‘正開’(정개)가 몸체에 새겨진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 승탑의 재현 유물이 들머리에 보인다. 이 승탑은 후백제 연호가 확인되는 유일한 실물 유산이다.
삼국시대, 백제가 한반도 서남부를 지배하며 문화예술을 꽃피운 고대 국가라는 건 역사적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이후 9~10세기 한반도 남부에서 통일신라 지배에 마침표를 찍고 중세의 시대를 연 ‘또 하나의 백제’를. 892년 무진주(광주)에서 경북 상주 출신 풍운아 견훤(867~936)이 건국해 900년 완산주(전주)에 도읍하고 백제 부활을 알렸던 나라, 바로 후백제다.
후백제의 동쪽 변경인 전북 장수 침령산성에서 출토된 철기류 제품들. 낫 같은 농기구와 함께 바퀴 달린 도르래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백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국호 ‘백제’를 다시 썼던 후백제 44년 역사의 자취를 실제 유물로 재조명하는 최초의 기획 전시가 꾸려졌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지난 10월 말부터 시작한 개관 30돌 특별전 ‘견훤, 새로운 시대를 열다’다.
10세기 초 후백제는 곡창 호남평야와 철의 산지인 전라도 동부 산악 지역을 장악한 한반도 남부의 최강국이었다. 태봉국이나 고려보다 국력이 월등했고 군사도 훨씬 많았으나, 아들과의 갈등으로 견훤이 감금되는 내분 끝에 936년 태조 왕건과의 선산 일리천 싸움에서 패해 멸망하고 만다. 전시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견훤이 활동한 주요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후백제 실물 사료를 연대기별로 배치하면서 폄훼되고 묻힌 후백제의 실체를 부각한다. 도입부의 유물은 ‘바르게 연다’는 뜻의 후백제 연호 ‘正開’(정개)가 희미하게 새겨진 남원 실상사 조계암 편운화상 승탑의 복제품이다. ‘정개’는 견훤이 901년 광주에서 천도한 새 도읍 전주에서 반포한 연호다. 후백제 연호가 확인되는 유일한 실물 유산이고 새 나라 새 시대에 대한 후백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각별하다.
사실 후백제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유물은 기와다. 광주, 익산, 광양, 전주 등 전라도 일대의 후백제 관련 유적에서는 독특한 무늬가 새겨진 기와들이 출토된다. 기와들엔 연꽃잎, 소용돌이 등의 무늬가 질박하게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기와의 미감과 확연하게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편안하고 구수한 손맛이 우러나온다.
견훤이 군사를 일으키며 왕을 칭한 곳으로 기록된 광주 무진 고성에서 출토된 봉황무늬 수막새. 봉황은 용과 더불어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봉황무늬 기와들은 개성 고려 궁성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견훤이 남도와 남해안 변방을 지키며 세력을 규합해 후백제의 기틀을 닦았던 무대로 추정하는 광주 무진 고성과 남해안 광양 마로산성 유물도 색다르다. 견훤이 스스로를 왕으로 칭한 장소인 광주 무진 고성에서 출토된 봉황무늬 수막새는 개성 고려 궁성에서도 출토된 왕권의 상징물이다. 견훤이 장교로 복무했다고 추정되는 광양 마로산성의 출토품 가운데 상상 속의 바다 동물과 포도가 돋을새김된 해수포도무늬 청동거울은 국내 유일의 작품이다. 백제의 옛 지명인 마로관(馬老官)이 찍힌 기와는 광양 지역이 고대부터 중국·일본과의 교역지로 상당한 경제력과 문화적 기반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백제 무왕이 만든 미륵사의 무대인 익산 출토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견훤은 익산을 역사적·정신적 토대로 중시해 미륵사 등에서 법회를 자주 열었다고 전해진다. 연대와 관직명 추정 명칭이 적힌 항아리에서 견훤의 관심을 체험할 수 있다.
전라도 일대의 후백제 관련 유적에서는 여러 무늬가 새겨진 수막새 등 다양한 종류의 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연꽃잎, 소용돌이 등의 무늬를 질박하게 수작업으로 새겨 넣었는데, 신라의 도읍 경주에서 출토된 정교한 장식기와들과는 판이한 이질적 면모를 보여준다.
전주에 도읍하고 후백제를 선포한 이후를 다룬 전시 중반에는 전주 동고산성에서 출토된 ‘全州城’(전주성) 새김 기와와 장수 침령산성에서 나온 자물쇠와 목간이 주목된다. 국내 청자 도입 초기 후백제인이 관여한 유적으로 관심을 끈 진안 성수면 도통리 청자 가마 유적의 유물도 눈맛이 새롭게 한다. 말미를 수놓는 유물은 완주 봉림사 터 출토 석조 삼존불이다. 가슴을 가로지른 띠와 매듭, 옷자락 등의 조각 양상이 경북 문경 상주의 신라 불교 조각상과 꼭 닮았다. 견훤이 신라 장인을 포로로 데려와 불상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시장 말미에 나온 완주 봉림사 터 삼존불상. 가슴을 가로지른 띠와 매듭, 옷자락 등의 조각 양상이 경북 문경 상주 등지의 신라계 불교조각상과 닮았다. 봉림사 터는 후백제의 왕실사찰로 추정되는 곳으로, 신라 장인을 절에 데려와 불상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남아 있는 유물이 적어 전시는 단순하고 기록은 빈약하지만, 역사적 공백과 어우러져 후백제 유물이 내뿜는 특유의 쓸쓸하고 비감 어린 분위기는 다른 박물관 전시에서 느껴볼 수 없는 부분이다. 내년 1월31일까지.
전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도판 국립전주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