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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나만의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나를 부르는 내 인생의 OST

등록 2020-12-07 04:59수정 2020-12-07 09:11

충북문화재단 지원으로 문화기획사인 문화충동이 진행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로라의 음악공방’에서 수강생과 강사들이 음원을 녹음하고 있다. 문화충동 제공
충북문화재단 지원으로 문화기획사인 문화충동이 진행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로라의 음악공방’에서 수강생과 강사들이 음원을 녹음하고 있다. 문화충동 제공

“자신의 이야기로 노랫말을 한번 써보세요.” 싱어송라이터 조동희가 말했다. 그가 진행하는 작사학교 ‘작사의 시대’ 강의에서다. ‘뭘 쓰지?’ 박지건(22)씨는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어두운 기억 저편에서 홀로 웅크리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외로움.’ 그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는 외로운 아이였구나.’ 그렇게 박씨는 유년 시절의 자신과 대면했다.

박씨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집에서도 프랑스말을 썼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였다. 덕분에 박씨는 일찍부터 그곳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피부색과 외모는 달랐다. ‘왜 나는 친구들과 다르게 생겼을까?’ 마음속엔 이런 의문이 새겨졌다. 6살이 됐을 때,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와 단둘이 귀국했다. 한국에선 주변 사람과 외모는 비슷했지만, 쓰는 말이 달랐다. 학교에 입학하자 ‘왕따’가 시작됐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니, 무언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에게/ 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던 나에게/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기를// 거대한 세상에서 망가진 가족을 원망하지 않기를/ 너의 뒤에 서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를/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던 때를 잊기를….”

그는 지난 10월 ‘작사의 시대’를 찾았다. 남이 만든 노래로도 위안을 얻는데, 내 노래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강의를 듣고 직접 노랫말을 쓰다 보니, 유예된 감정이 터져 나왔다. 고통스러웠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하자,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가수가 아니더라도 감정을 노래라는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텄다. “제 이야기가 저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가닿았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살롱인텔리겐챠에서 열린 싱어송라이터 조동희의 작사학교 ‘작사의 시대’에서 수강생들이 노랫말을 작성하고 있다. 김경욱 기자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살롱인텔리겐챠에서 열린 싱어송라이터 조동희의 작사학교 ‘작사의 시대’에서 수강생들이 노랫말을 작성하고 있다. 김경욱 기자

지난달 16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누상동 살롱인텔리겐챠에서는 ‘작사의 시대’ 강의가 한창이었다. 7명의 수강생은 저마다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뽑아 노랫말의 진행 형태를 분석하고, 과제로 써온 노랫말을 발표했다. 수강생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노랫말이 하나씩 낭송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동희는 ‘낯설게하기’를 강조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쓰면 일기예요. 반면, 그 이야기에서 보편적인 감성을 끌어내 낯설게 표현하는 작업이 바로 작사인 거죠.”

바야흐로 남이 만든 노래를 듣는 시대에서 ‘나만의 노래를 만드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관련 강좌나 학원, 음원 제작을 도와주는 스튜디오는 손쉽게 검색이 가능하고, 지방정부 차원의 지원 사업도 다양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강좌나 프로그램이 일시정지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내 인생의 오에스티(OST)’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노래를 만드는 것을 넘어, 삶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송미연(42)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30대 초반, 3년가량 민중가요 노래패에서 활동할 정도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잘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슴속에 품어온 꿈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는 “남이 만든 노래가 아니라, 내 이야기와 내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고 말했다.

충북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문화기획사인 문화충동이 진행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로라의 음악공방’에서 수강생과 강사들이 음원을 녹음하고 있다. 문화충동 제공
충북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문화기획사인 문화충동이 진행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로라의 음악공방’에서 수강생과 강사들이 음원을 녹음하고 있다. 문화충동 제공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면서다. 바깥출입도 어렵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마냥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많았으니까요.” 눈물도 많이 났다. 자신을 객관화할수록 안쓰럽고,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편으론 마음이 정리되고,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엄마가 돼보니, 엄마가 생각났다. 세상을 떠난 탓에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엄마였다. 그리운 마음을 써 내려갔다. 7~8살의 ‘나’를 떠올렸다. “엄마 손 꼭 잡고서 목욕탕 가던 길/ 눈을 데려온 바람 너무 차가운데/ 꼭 잡은 엄마 손은 너무나 따뜻했어// 내 등을 밀어주시던 엄마 손 생각나네/ 내 볼을 쓰다듬으시던 엄마 손 생각나네/ 둘이서 마주 앉아 마시던 요구르트/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맛있던 요구르트/ 지금도 생각나네.”(겨울엄마) 사랑하는 딸들을 위한 노래도 만들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의 모습을 담은 ‘두발자전거’란 노래다. 그는 친구와 함께 곡 작업을 한 뒤 이들 노래를 음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직장인 장혁준(41)씨와 박경민(38)씨는 자신들의 노래(‘그 여름날’)를 최근 음원으로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곡은 멜론, 지니뮤직 등 각종 음원 사이트에 올라 있다. 음원 출시가 가능했던 것은 서울시가 종로구 낙원상가에 마련한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의 지원 덕분이다. 음악·악기 중심의 생활문화공간인 이 센터에선 지난 6월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생애 첫 음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3차례 공모 사업을 벌여, 모두 3개 팀을 선정해 음원 제작을 지원했다.

생활문화공간인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이 진행하고 있는 ‘생애 첫 음원 만들기’ 프로젝트 1차 공모에 선정된 직장인 밴드 ‘온/오프 식스’의 장혁준씨가 기타 솔로를 녹음하고 있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제공
생활문화공간인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이 진행하고 있는 ‘생애 첫 음원 만들기’ 프로젝트 1차 공모에 선정된 직장인 밴드 ‘온/오프 식스’의 장혁준씨가 기타 솔로를 녹음하고 있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제공

장씨와 박씨는 직장인 6명으로 밴드 ‘온/오프 식스’를 꾸려 이 프로젝트에 지원해 선정됐다. 밴드 이름에는 오후 6시 ‘칼퇴근’이라는 직장인의 염원을 담았다. 이들은 최근 센터를 통해 비대면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박씨가 쓴 ‘그 여름날’뿐만 아니라, 장씨가 쓴 ‘그만 좀 물어봐’와 ‘로맨틱한 걸’ 등 모두 3곡을 무대에서 선보였다. 이 가운데 ‘그만 좀 물어봐’는 연애할 때부터 순간순간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상대방이 표현하길 원하는 아내를 위해 만든 사랑 노래다. 노래를 들은 아내의 반응은 어땠을까. “시큰둥하던데요.”(웃음)

장씨는 “나만의 노래를 만드는 일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밤 10~11시에 퇴근하더라도, 새벽 1~2시까지는 곡을 쓰거나 악기 연습을 해요. 다음날 일찍 출근하더라도 즐거운 일을 하다 보니 크게 피곤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다만, 그는 이런 취미 활동을 지극히 개인적으로만 한다고 덧붙였다. “직장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정체를 숨기고 사는 거죠.”(웃음)

나만의 노래를 만드는 청소년들도 있다. 충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문화기획사인 문화충동이 진행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로라의 음악공방’에서는 청소년 13명이 3개 팀으로 나뉘어 노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토요일마다 기본적인 화성학, 작사법, 음악 관련 컴퓨터 소프트웨어 이용법 등을 배우며 음원 제작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음원은 이달 안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한창 듣고 부를 시기에 이들이 나만의 노래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면서 직접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를 누구나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한다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유리(17) 학생의 말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수줍게 고백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를 완성해가는 중이다. 장르는 리듬 앤드 블루스(R&B)다. 김성민(17) 학생은 이별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만들고 있다. “연인이 떠나고 남겨진 사람의 복잡한 감정과 소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결과물이 나오면 가장 먼저 부모님께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수를 준비하거나 꿈꾸는 이들이 아니다. 김유리 학생은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고, 김성민 학생은 음악 교사가 꿈이라고 했다. 이들은 “가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을 배우러 왔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에 걸쳐 나만의 노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번지며 과거와 달리 노래를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의 김소연 실장은 “과거 음반이나 음원을 낼 수 있었던 이들은 기획사에 소속된 이른바 프로 뮤지션이나 직업 가수 등 소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기술의 변화 등으로 누구나 자신의 노래를 음원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가수가 아니어도 생활 속에서 주도적으로 음악을 즐기려는 이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나만의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의 ‘내 인생의 오에스티’는 그렇게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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