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BTS).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콘서트와 각종 음악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는 등 올 한해 가요계는 직격탄을 맞았지만, 음반 시장만큼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스타’를 대면할 기회를 잃은 국내외 음악팬들이 시디(CD)와 엘피(LP), 카세트 등 실물 음반 구매를 통해 억눌린 소비 욕구를 분출한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의 ‘연간 음반 판매량’(상위 400개 실물 음반 기준) 자료를 보면, 올해 음반 판매량은 4026만1800여장으로 지난해에 견줘 6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는 지난 12일까지 계산한 수치로, 아직 집계하지 않은 3주치 판매량을 더하면 올해 증가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음반 판매량은 2014년 일시적으로 감소한 뒤, 2015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와 같은 상승률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7.8% 증가했는데, 올해는 그것의 8배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가수별 앨범 판매량을 보면, 방탄소년단(BTS)이 압도적인 수치로 1위에 올랐다. 디지털 음원 시장이 강세인 시대에 이들이 올 한해 전세계적으로 판 음반은 916만7879장이었다. 이어 세븐틴이 271만2620장으로 2위에 올랐고, 엔시티(NCT)와 블랙핑크가 각각 3위(218만6710장)와 4위(170만6814장)를 기록했다. 엔시티의 서울 팀인 엔시티127을 비롯해 아이즈원, 트와이스, 엑소의 백현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모두 올해 음반을 100만장 이상 판 밀리언셀러다.
한국 음반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방탄소년단의 전세계적 인기뿐만 아니라 블랙핑크, 세븐틴, 엔시티 등 다양한 케이(K)팝 그룹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개 팀(방탄소년단, 세븐틴, 트와이스)에 불과했던 밀리언셀러가 올해 8개 팀으로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남성 가수의 음반 판매량 가운데, 방탄소년단의 점유율이 지난해 29.6%에서 올해 28.4%로 다소 완화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10월 첫 정규앨범 <디 앨범>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블랙핑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눈에 띄는 점은 수출액의 변화다. 관세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음반 수출액 현황’ 자료를 보면, 11월 기준 올해 음반 수출액은 1억2340만달러(약 135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78.2% 급증했다.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가 더욱 커졌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수출 대상 국가도 2017년 78곳에서 올해 114곳으로 46.1% 늘었다.
나라별로는 미국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미국의 한국 음반 수입량은 지난해에 견줘 117.2%나 폭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 다음으로 한국 음반을 많이 사가는 나라로 집계됐다. 2018년부터 이어진 1위 일본, 2위 중국, 3위 미국 구도가 올해 처음 깨져, 미국이 2위로 올라섰다. 대륙별 음반 수출량에서도 비아시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17년 아시아 92.6%, 비아시아 7.4%로 아시아 판매량이 압도적이었으나, 올해는 비아시아의 비중이 24.2%로 확대됐다.
앨범 판매량의 급격한 증가세는 케이팝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콘서트 등 대면 활동이 어려워지자, 팬들의 소비가 앨범 구매로 집중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통상 팬들의 소비 형태를 보면, 가수의 앨범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콘서트 참여, 이에 따른 굿즈 구매 등으로 이어진다”며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막히면서 팬들이 공연장에도 못 가다 보니, 음반 구매로 소비가 집중되는 이른바 ‘대체 소비’ 현상이 나타나면서 음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짚었다. 관세청 통관기획과 관계자도 “한류 문화콘텐츠의 세계적 인기와 더불어 국외 팬들이 소장 목적으로 한류 스타의 시디 등을 사면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음반 수출이 역대 최고치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런 경향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김진우 위원은 “코로나19 백신이 공급되고 있다고는 해도 당장 콘서트가 정상화하긴 힘든 상황”이라며 “케이팝의 성장세와 함께 음반 판매량은 올해 수준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