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조회수 5억회를 넘어선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 안무영상.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강렬한 전주가 흘러나오자, 검은색(블랙) 옷을 입은 이들의 군무가 시작된다. 배경은 온통 분홍빛(핑크)이다. “보란 듯이 무너졌어/ 바닥을 뚫고 저 지하까지~” 카메라는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지만, 모든 멤버의 모습을 한 화면에 온전히 담으며 최소한으로만 움직인다.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 안무영상은 뮤직비디오나 음악 방송과 달리 단출하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형형색색의 조명도 없다. 멤버들의 군무만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그런데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6일 아침 7시5분께 유튜브에서 조회수 5억회를 넘어섰다. 지난해 7월6일 공개된 뒤 6개월 만이다. 수많은 케이(K)팝 가수가 뮤직비디오로도 달성하기 힘든 대기록을 안무영상만으로 세운 것이다. 한국 가수 가운데 안무영상으로 유튜브 조회수 5억회를 넘긴 것은 블랙핑크가 처음이다.
유튜브 조회수 5억회를 넘어선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 안무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케이팝 안무영상이 진화하고 있다. 연습실에서 스마트폰이나 고정 카메라로 간단히 찍어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개하던 시대는 지났다. 안무영상이 수억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홍보 도구’로 떠오르면서, 기획사들이 과거와 달리 관련 영상 제작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 안무영상은 역동적이다. 카메라가 움직이며 다양한 각도에서 멤버들의 춤을 보여준다. 배경도 기획사 연습실이 아니라, 그룹 이름을 상징하는 분홍색 스튜디오다. 화질도 다른 아이돌 그룹의 안무영상에 견줘, 표정이 생생히 드러날 정도로 고화질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온’ 키네틱 매니페스토 필름. 유튜브 화면 갈무리
뮤직비디오를 결합한 형태의 안무영상을 선보이는 팀도 있다. 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해 ‘온’ 발표 당시, 이 곡과 관련한 ‘키네틱 매니페스토 필름’을 공개했다. 동적인(키네틱) 신체 언어만으로 선언(매니페스토)하듯 노래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뜻을 담은 영상이다. 공식 뮤직비디오와 연습실 등에서의 모습을 담은 안무영상과 별개로 안무에 초점을 둔 웅장한 스케일의 영상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미국 엘에이(LA) 세풀베다댐 앞에서 멤버들이 30여명의 댄서, 12명의 마칭 밴드와 함께 펼치는 대규모 퍼포먼스가 시선을 압도한다.
안무영상을 여러 버전으로 제작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빌보드 싱글차트(핫100) 1위에 오른 ‘다이너마이트’ 기본 안무영상 외에도 안무를 추가한 댄스 브레이크 버전의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트와이스 역시 지난달 발표한 신곡 ‘크라이 포 미’ 안무영상을 두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발표했다. 에스파는 ‘블랙맘바’ 기본 안무영상 외에도 군복 등에서 영감을 받은 기능성 옷인 테크웨어를 입은 안무영상을 지난 12일 공개했다.
트와이스의 ‘크라이 포 미’ 안무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안무영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방송도 관련 영상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케이블 방송 <엠넷>(Mnet)은 자체 제작한 아이돌 안무영상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선보이는 <스튜디오 춤>을 운영 중이다. 무대 장치나 세트 배경이 없는 대신 조명과 다양한 카메라 각도를 통해 퍼포먼스를 최대한 부각하는 프로그램이다.
신곡을 발표하며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개하던 안무영상의 변화를 주도한 이들로는 엑소(EXO)와 방탄소년단이 꼽힌다.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 들어 많은 아이돌 그룹이 카메라가 움직이는 (무빙) 버전의 안무영상을 제작하고 있지만, 이는 엑소가 이미 2013년 ‘으르렁’ 때 선보여 호응을 얻은 기법”이라며 “2015년, 직전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선보인 오프닝 무대 퍼포먼스를 다각도로 담아 별도의 영상으로 선보인 방탄소년단의 ‘가요대제전 인트로 퍼포먼스 트레일러’ 영상도 중요한 분기점이다. ‘온’의 키네틱 매니페스토 필름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팬들이 안무영상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칼군무’와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박희아 평론가는 “케이팝은 음악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와 시각적 요소가 어우러진 장르”라며 “무대 장치와 클로즈업이 많은 음악방송이나 이야기를 담은 뮤직비디오로는 칼군무와 퍼포먼스를 온전히 즐기기에 한계가 있다. (춤을 그대로 따라 하는) 커버댄스의 국내외 유행도 안무영상이 케이팝의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잡은 이유”라고 짚었다.
안무영상에 대한 기획사의 태도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잘 찍은 안무영상 하나가 비용을 많이 들인 뮤직비디오보다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기획사들이 최근엔 더욱 공을 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