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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비탈에 버틴 소나무에서 ‘경지에 오른 사람’ 봤죠”

등록 2021-04-06 18:44수정 2021-04-07 02:06

[짬] 한국 첫 여성 암벽등반 사진작가 강레아씨

강레아 작가가 한겨레신문사 옥상의 반송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강레아 작가가 한겨레신문사 옥상의 반송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한국 최초의 여성 클라이밍 사진작가 강레아(53)씨의 개인전 ‘소나무-바위에 깃들다’가 7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 밈>에서 열린다. 4월 26일까지. 지난달 2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그를 만나 암벽과 소나무와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그는 19살 무렵 친구들과 가야산에 갔다가 묘한 경험을 했다. 새벽 3시쯤 도착해 하늘색이 검정에서 서서히 군청색, 다시 주황으로 바뀌면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에 매혹된 것이다. 그는 산 아래 두 번째 동네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산속에서 살아 산은 가족같이 익숙한 존재였으니 산의 일출은 별 느낌이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와서 산과 멀어졌는데 바깥에서 보니 산이 새롭게 보였다. 사진으로 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산을 자주 찾게 되었고 카메라도 샀다. 찍든 안 찍든 산에 갈 때마다 배낭에 늘 카메라를 넣었다. 대학에서 의상과를 다녔고 디자인을 배우면서 아르바이트로 웨딩사진을 했는데 “남의 돈을 받으며 사진을 찍는데 대충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사진과에 입학했다.

암벽을 시작했으나 바로 배낭에 있는 카메라를 꺼낼 수는 없었다. “초보들은 산이 급하니 카메라에 손이 갈 수가 없다. 인수봉 동양길에는 중간에 ‘테라스’가 있다. 25미터마다 끊어서 쉬어야 하는데 발을 살짝 디딜 수 있으니 허리가 덜 아프다. 그래도 초보들은 자일을 붙들고 서서 쉬는데 나는 감히 초보인데도 살짝 걸터앉아 잠이 들었다. 눈을 떴는데 허공이었다. 깜짝 놀랐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겁이 없는 것 같다.” 곧 암벽에 익숙해지면서 암벽에 매달려 사진도 찍게 되었다. 산 관련 잡지 몇 군데에서 프리랜서로 15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산 사진을 했다. 김자인 등 유명 클라이머들의 표정을 담은 사진으로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었다. “한계에 도달해 동공이 풀리는 순간에 인간의 의지가 발현되는” 사진을 찍는 것에 희열을 느꼈단다.

산에서 사람을 찍다가 왜 소나무로 넘어왔을까? 그는 인수봉 오아시스 소나무 이야기를 했다. 인수봉은 한국 암벽등반의 메카라고 할만하다. 암벽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수봉 오아시스를 모를 리 없고 그곳을 족히 100년 가까이 지켜왔던(지난해 태풍 ‘링링’으로 쓰러졌다) 소나무를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19살에 가야산 일출 보고 산 끌려
알바 웨딩사진 하다 사진과 재입학
“동공 풀리는 클라이머 고통에서
엿보이는 인간 의지에 큰 희열”

7일부터 ‘소나무-바위 깃들다’전
“소나무를 클라이머 찍듯 찍었죠”

그는 소나무를 말할 때 존칭을 썼다. “인수봉 오아시스의 그분을 첨 볼 때부터 잘 모셔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 후론 다른 암벽을 탈 때도 암벽에 자라는 소나무들을 찍게 되었다. 내가 클라이머들을 찍을 때 발현이란 표현을 썼는데 소나무도 그렇게 보인다. 암벽 위의 소나무에 가까이 가보면 흙이 없다. 틈도 흙도 없는 바위에 소나무 씨앗이 하나 날아와서 뿌리를 내리고 바위를 연 것이다.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그 자태를 보고 있으면 자연에서는 우리 인간이나 지렁이나 소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줄에 매달려 사진을 찍고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소나무를 의인화한 것이다. 소나무를 사람 찍듯, 클라이머 찍듯 찍었다. 저 바위 비탈에서 버티고 있음은 어떤 경지에 오른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산 만경대에 있는 소나무가 노래하는 듯하다.” 이 작품을 두고 강 작가가 한 말이다. 작품 사진 강레아 작가 제공
“북한산 만경대에 있는 소나무가 노래하는 듯하다.” 이 작품을 두고 강 작가가 한 말이다. 작품 사진 강레아 작가 제공

가장 애착이 가는 전시작을 물었는데 미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다 애착이 간다. 한 분, 한 분 모두 소중하다. 다만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 소나무를 꼽을 수는 있다. 눈이 많이 올 것 같아서 전날 밤에 차에서 자고 새벽에 북한산 만경대에 올랐다. 과연 폭설이 와서 내가 오른 후에 입산통제가 된 모양이다. 평소에 사람들이 꽤 오는 곳인데 아무도 없었다. 운무가 심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고 그분만 보였다. 5시간이나 그분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강 작가는 이 사진에 대해 “북한산 백운대 뒤쪽 바위 사이에서 위태위태 살아가신다”라고 말했다.
강 작가는 이 사진에 대해 “북한산 백운대 뒤쪽 바위 사이에서 위태위태 살아가신다”라고 말했다.

강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도봉산 소나무가 도시의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도봉산 소나무가 도시의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나무 사진들은 암벽에 매달려 찍은 게 몇 안 된다고 했다. 절실하기는 하늘의 도움 즉 날씨였단다. “나는 항상 악천후에만 사진을 찍는 셈이 되었다. 자일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암벽에서 사진을 찍을 땐 아래위는 이동하면서 앵글 조절이 되지만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아주 제한적이다. 따라서 소나무 외에 다른 것들이 있으면 피해야 하는데 날씨 말곤 방법이 없다.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 중에서 여러 장이 그랬다. 눈이 오거나 비가 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몰려와야만 가려지는 것이다. 여러 번 가는 것 외엔 다른 재주가 없다”

암벽등반이 궁금했다. 그는 “20대 때 같이 산을 타기 시작했던 친구들은 모두 5.13(숫자가 클수록 고난도 암벽)까지 올라갔는데 나만 아직 5.10에 머무르고 있다. 그 사람들은 나더러 언니는 산보다 사진이 먼저라서 그런 거라고 놀린다. 요즘 젊은 클라이머들은 곧잘 카메라를 들고 산에 오른다.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 순간이 오면 바위에 집중하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맞다. 나는 결정적 순간이 오면 카메라에 먼저 손이 가니 암벽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다. 요즘도 1주일에 2차례는 인공암장에서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잠깐 쉬면 바로 초보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 촬영할 때 위험함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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