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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파브르의 체액 3부작 마지막편 ‘눈물의 역사’ 를 보고

등록 2006-02-01 18:02수정 2006-02-02 17:49

“맨몸뚱아리로 펼치는 유럽식 굿판’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얀 파브르(48)의 내한 공연이 다음주로 다가왔다. 오는 10~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얀 파브르의 ‘체액 3부작’ 마지막 편 <눈물의 역사>는 연극과 무용, 문학과 미술을 총망라한 종합 예술 작품이다.

연출가이자 안무가, 희곡작가이자 화가, 무대연출가이자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전방위 예술가로서 얀 파브르는 1980년대 이래 줄곧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논란의 정점에 서 왔다. 발레 작품을 만들면서 토슈즈를 무용수의 ‘손’에 신기거나, 비키니를 입혀 ‘귀족 포르노’ 발레를 조롱했는가 하면, 도화지에 자신의 피 한방울을 흘려놓고, 그걸 빨아먹는 모기를 그림으로 그렸다. ‘체액 3부작’ 1편인 <나는 피다>에서는 남자의 성기를 도끼로 자르고, 신부의 하얀 드레스를 생리혈로 물들이기도 했다.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눈물의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명의 전문가를 초청했다. 얀 파브르 내한 공연의 산파 구실을 한 김성희(40) 가네샤 프로덕션 대표와 무용평론가 김남수(38)씨가 만나 대담을 했다. 두 사람은 “구시대적 문법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공연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역사, 사회학을 공부하는 인문학자들이 꼭 봐야할 공연”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얀 파브르
얀 파브르
김성희(이하 희) 첫 장면이 압도적이에요. 흰 정장을 입은 십여명의 배우들이 시작하자마자 약 15분동안 발악적으로 울죠. 인간의 탄생이 ‘눈물’로 시작한다는 점을 대놓고 말하는 거에요. 특히 지난해 아비뇽 무대(아비뇽 페스티벌이 열리는 프랑스 아비뇽 대성당 뒷마당으로, 세계적 거장들만 초청하는 권위있는 무대)는 야외라서 더 무섭게 들렸어요. 그것도 한 밤중에, 다 큰 어른들이 젖 먹던 힘을 다해 울어대니 얼마나 시끄러웠겠어요. 정치가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구경왔다가 무척 당혹스러워 했죠. 얀 파브르의 생각은 단호해요. “몸 속의 액체에는 영혼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눈물뿐 아니라 오줌, 피, 땀 등의 액체에서 인간의 삶의 메아리가 울려나온다는 거에요.

김남수(이하 수) 체험된 신체 이전의 원초적인 신체로 돌아가서 작업하는 것이 얀 파브르의 연출이에요. 어떤 기능이나 작용을 가지기 이전의 몸을 일컬어 들뢰즈는 ‘기관없는 신체’라고 했어요.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크게 영향받은 물질 덩어리로서의 몸이 얀 파브르에게는 자연스런 출발점이 되는 거죠. 얀 파브르는 무대의 들뢰즈라고 할 수 있어요.


장면 하나하나가 사진이자, 미술작품이에요. 2시간 내내 눈 앞에서 명화들이 흘러가요.

아비뇽 대성당의 성곽은 마치 16세기 화가 브뢰겔의 <바벨탑>을 연상시켜요. 히에로니무스 보슈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한 것 같기도 하구요. 둘 다 지옥도의 대가들인데, 색깔은 완전히 다르죠. 유리공예로 은유되는 눈물의 이미지, 장대 위에 걸린 처녀의 팬티, 눈물 닦은 손수건을 짜는 여자 등등은 모두 눈물과 관련한 제의의 한 부분이죠.

얀 파브르는 80년대에는 이해받지 못한 아방가르드였지만, 지금은 거장이 됐어요. 독일의 피나 바우쉬(66)가 ‘탄츠 시어터’를 창시했다면, 그는 ‘비주얼 씨어터’의 시조가 됐죠. 처음엔 공연 도중 나가버리는 관객이 많았는데, 이제 표가 없어서 못 볼 정도에요. 하지만 지금도 <르몽드>와 <피가로>는 그의 작품을 놓고 논란을 벌이곤 해요. 인간의 역사가 논란을 통해서 발전하듯, 예술도 마찬가지죠. ‘이런 게 예술이 될 수 있나’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얀 파브르의 한국 방문 명분은 충분해요.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 공연 문화에는 그런 지적 충격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얀 파브르의 연출은 아이콘이나 상징 등등이 매우 풍부해요. 마치 ‘각주없는 유럽 중세사’를 펼쳐놓는 것 같아요. 작품을 이해하려면 많은 인문적 소양과 지식이 필요해요. 푸코나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의 작업과도 맞물려 있구요. 국내의 지식인들에게는 ‘메마른 철학’이 풍부하게 육화되는 현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공연은 철학이나 문학, 역사학도들이 꼭 봐야할 것 같아요.


유럽에서는 가장 지적인 사람들이 컨템포러리 공연을 열심히 따라 다녀요. 가장 앞선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뭔가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주고, 논란이 되는 작품이라야 화제작이 되죠. 그의 공연을 보고나면 뇌가 끈적끈적해지면서 즐거워져요.

얀 파브르는 새로운 공연 문법의 창시자에요. 정제된 춤을 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부수고 있어요. 또한 중세의 황무지를 통해 성배와 구원의 내러티브를 풍요롭게 엮는 데 성공해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유럽 무당의 한 바탕 굿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의 공연은 워낙 다층적이라 한쪽 면으로만 보면 바보되기 십상이에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안경’을 쓰고 봐야 해요. 그게 안되면 그냥 ‘열린 마음’으로 보면 되죠. 사실 이런 공연은 어린아이들이 해석을 더 잘 하더라구요. (?5c대담 전문 인터넷 한겨레 www.hani.co.kr)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예술의 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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