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전시장 2층에서 만난 박봉수 작가. 그의 뒤로 지인과 관객들의 꿈 텍스트를 수집해 붙인 족자 두루마리가 내걸려 있다. 작가는 다음달 5일 이곳에서 ‘드림 옥션’으로 이름 붙인 꿈 두루마리 경매를 벌일 예정이다.
“유럽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작업하면서 꿈을 사고파는 것이야말로 한국인이 지닌 진짜 아름다운 문화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일단 꿈을 사고팔 때 기분이 너무 좋잖아요.”
올해 40살이 된 소장작가 박봉수씨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꿈을 모아 전시하고 통째로 사고파는 경매판을 벌이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름의 분석을 슬쩍 곁들였다. “사려는 이를 배려하고, 파는 이를 믿는다는 것이니까요.”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낡은 우체국을 개조해 만든 대안공간 탈영역우정국에서 지난 21일부터 ‘몽상가들의 모임’이란 제목으로 차려진 박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은, 꿈을 관객 앞에서 보여주고 사고판다는 틀거지가 단연 눈길을 잡아당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설치·조각·미디어아트를 공부한 이 신예 작가는 꿈을 아예 전시장에 실체로 빚어서 갖고 들어왔다. 1층에 선보인 설치영상물 <드림인큐베이터>가 그런 작업이다. 깊은 수면 상태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관련 분야 전문가와 협업해 유동하는 영상 이미지로 전환해놓고 가볍게 휘날리는 직물 천 위에 투사해 신비스러우면서도 눈으로 만져지는 듯한 꿈의 물화된 상을 전달한다. 사람이 가장 깊게 잠든 ‘렘 수면’ 상태에서 나온 뇌파의 데이터 영상은 마치 누에고치처럼 꿈틀거리거나 나비처럼 율동하면서 우리 무의식 내면의 자유로운 경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박봉수 작가의 2채널 설치 영상 <드림인큐베이터>. 사람이 가장 깊게 잠든 상태에서 나온 뇌파의 기록 데이터를 나비처럼 율동하는 영상 이미지로 만들어 공간에 드리운 직물에 투사한 것으로 꿈의 실체를 드러내려 한 작품이다.
한술 더 떠 작업에 협력한 영국의 지인 19명과 전시장을 찾은 관객 18명한테서 인상적이고 좋은 꿈들을 기부받아 이를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꾸었던 꿈’ ‘좋은 기운을 전달하는 꿈’을 간단히 서술해달라고 부탁해 다양한 내용의 꿈 텍스트를 받은 뒤, 이를 종이에 인쇄한 것을 족자 두루마리에 붙여 2층 전용 공간에 내걸었다.
“4년 전 런던에서 결혼해 신혼살림을 꾸리고 있던 한국인 친구한테 ‘토마토만한 크기의 블루베리를 맛있게 먹는 길몽을 꾸었다’고 얘기했더니 팔라는 거예요. 커피와 케이크를 대접받고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팔았더니 친구가 원하던 임신이 단박에 이뤄졌어요. 타국 땅에서 이런 경험을 하니 너무 신기했고, 현대미술 맥락에서 미디어아트와 아카이브 퍼포먼스 등으로 다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지요.”
인간 의식 너머 자유로운 생리현상이라 할 만한 꿈은 국내외 예술가들이 즐겨 다뤄온 소재다. 꿈에 대한 한국인들의 믿음은 유별나게 깊다. 고대 삼국을 통일한 주역인 신라 장군 김유신의 큰 여동생 보희가 자신이 눈 오줌에 도읍 서라벌이 잠겨버린 꿈을 작은 여동생 문희한테 팔았고, 훗날 문희가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혼인했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나올 정도다. 옛적부터 꿈을 사고파는 풍습이 전해져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세계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렵다. 이를 주목한 작가는 팬데믹 사태 전인 2018~19년 런던에서 작업할 때부터 꿈 수집 퍼포먼스 공연과 현지 사회학 전문가들과의 대화, 한국 역사서의 꿈 관련 사료와 연구논문 분석 등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다음달 5일 오후 5시 전시장에서는 ‘드림 옥션’으로 이름 붙인 꿈 두루마리 경매가 펼쳐질 예정이다. 아트컨설팅 회사 그레이월을 운영해온 미술기획자 변홍철 대표가 경매사로 나서 출품된 꿈들의 내용을 설명하고 시작가 1만원의 가격대에서 사고파는 국내 초유의 꿈 미술품 흥정을 벌이게 된다. 꿈을 사고파는 전통 풍속을 실제 경매를 통해 다수 관객과 공유하는 형식으로 구현하면서 꿈의 가치를 성찰하는 결실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작가는 의미를 부여했다. 작가와 관객 사이 ‘꿈의 대화’가 이어지는 워크숍(29일)과 꿈 해석 전문가들을 초빙한 심포지엄(30일) 등도 함께 열린다. 6월8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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