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여성학자 최시현 교수
“지난해 가을 박사논문으로 발표할 때까지는 책으로 낼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그런데 출판사 쪽에서 우연히 논문을 봤다며 뜻밖의 출판 제안을 했어요. 워낙 뜨거운 사회적 쟁점인 ‘부동산’과 ‘젠더 문제’를 모두 담고 있어서 대중적으로 읽힐 만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죠.”
최근 여성학 박사학위 논문을 갈무리해 펴낸 책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창비)로 주목을 받고 있는 최시현(41)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의 얘기다.
‘남편과 자녀에게 충실한 가정경제 관리자가 되기 위해 부동산에 뛰어든 중산층 여성들의 주거생애사를 분석하고 계급 상승의 욕망과 젠더 권력의 격전지로서 부동산의 작동 원리를 해명했다’는 이 책은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 ‘복부인 현상’을 학술적으로 광범위하고 집중적으로 분석해내 화제다. 지난달 31일 연세대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연세대 여성학 박사논문 풀어 책으로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40~70대 여성 25명 주거생애사 인터뷰
‘경제적 목적 넘어 자아 인증의 수단’
‘현모양처 충실하려다 복부인 내몰려’
“개인으론 풀 수 없는 젠더 불평등 문제”
“애초 연구 관심은 ‘여성과 노동’이었어요. 학부에서 인류학과 사회학을 전공해 졸업하고 5년간 아이티(IT)기업에서 관리 업무를 했는데, 여성의 노동조건이나 지위가 상대적으로 열악했거든요.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여성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그 자신 사회생활 속에서 체험한 ‘젠더 불평등 문제’가 연구 동기가 된 셈이다. 석사 논문 주제를 찾던 그는 ‘부모의 자산, 특히 집의 상속에 대한 아들과 딸의 인식차가 뚜렷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남성들 대부분은 부모에게 물려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데 비해 저를 포함해 여성들은 별 기대를 하지도 않고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집’이 단순히 정서적 공간이 아니라 자산공동체(부동산)이고, 대물림을 통해 중산층의 신분과 계급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박사 논문의 주제로 ‘여성과 집 문제’를 조명하기로 했다.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비혼 남성을 포함해 모두 37명의 인터뷰 대상자를 찾았어요. 처음엔 ‘첫번째 집 장만을 어떻게 했는지’부터 조사를 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산층 여성들에게 ‘집’은 경제적 목적 만이 아니라 ‘주부’로서 자아 인증의 수단이 되고 있었어요.”
‘자녀 교육을 위해 아파트를 갈아탄 여성, 명의위장 등 편법으로 부를 일군 여성,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내 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여성’ 등등 그는 집을 욕망하는 복합적인 이유와 다채로운 사례를 면밀히 들어다봤다. 그 결과, 1950년~80년대 사이에 출생한 중산층 여성 25명의 주거생애사로 주제를 뚜렷하게 세워 박사 논문의 제목을 <한국 중산층 여성의 주택실천과 ‘투기화된 삶’>으로 정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 이들은 중산층 여성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투기 열풍은 기업가, 고위 관료, 토지 브로커 등 특수 계층이 주도했다. 그런데 198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주택의 상품화 경향이 가속화되면서 자금 운용 능력이 있는 중산층까지 투기에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투기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당시 여론은 부동산 중개업소나 아파트 분양권 추첨 현장 등 대중화된 투기의 장에 등장한 중산층 가정주부들에 주목했다. 이들은 ‘복부인’이라는 수상한 이름으로 불리며 투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책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대목은 ‘5장 투기화된 삶, 그리고 딜레마에 빠진 여성들’이다. 그는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 덕분에 여성들이 스스로 가정 내 주권을 되찾고 자율성을 확립한 측면도 있지만, 이 행위의 결과는 오로지 남편과 자녀를 위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로 귀속되면서 여성들 스스로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족주의의 강화에 일조했고 부동산 투기의 심화 또한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저는 모릅니다. 집사람이 한 일이에요.” 청문회 때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남성 정치인들의 ‘떠넘기기 변명’이 바로 여성들이 처한 ‘딜레마’를 반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들 대부분이 여전히 주거 불안을 호소하고 있었어요. 집값이 오르면 어디로 옮겨가야 하나 걱정, 다주택이면 세금 걱정, 어떻게 물려줘야 하는지 걱정…,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잖아요?”
최 교수는 책에서 ‘부동산 투기를 비롯한 한국 사회 모순이 결국은 젠더 불평등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는 결론과 더불어 비혼, 무자녀 같은 개인적 선택이나 ‘복부인’ 같은 비정상적인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사회적 공동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후속 연구로 ‘청년세대의 주거실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그는 ‘퀴어가족’와 같은 다양한 유형의 가족 관계가 보편화되면 자산 대물림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다음 연구 대상자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왜 꼭 집을 자식들에게 물려줘야 하나요?”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지난해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을 바탕으로 책을 낸 최시현 박사. 김경애 기자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40~70대 여성 25명 주거생애사 인터뷰
‘경제적 목적 넘어 자아 인증의 수단’
‘현모양처 충실하려다 복부인 내몰려’
“개인으론 풀 수 없는 젠더 불평등 문제”
창비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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