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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헌법 파괴에 수학 교수까지 동원하다

등록 2021-11-15 09:59수정 2021-11-15 10:07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7) 사사오입 개헌

이승만 영구집권 위해 1954년 개헌
투표 결과 정족수에 1명 모자라자
법무장관 “0.33은 독립 1인 아냐” 궤변
수학자에게 ‘사사오입’ 확인 코미디도
함세웅 신부가 쓴 ‘사사오입 개헌’ 붓글씨.
함세웅 신부가 쓴 ‘사사오입 개헌’ 붓글씨.

“악한 행동에 대한 판결이 곧바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아들들의 마음은 악을 저지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악인이 백 번 악을 저지르고서도 오래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그분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므로 잘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악인은 하느님 앞에서 경외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잘되지 않을뿐더러 그림자 같아 오래 살지 못함도 알고 있다.”(코헬렛 8,11-13)

코헬렛은 구약성경 지혜 문학에 속한 작품으로 얼마 전까지는 이를 전도서라 불렀습니다. 왕을 자처한 한 현인이 인간 역사의 삶과 고뇌 속에서 끊임없는 성찰로 내적 평화와 자기완성을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우리 역사 속 선현과 도인의 교훈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저는 지혜 문학을 공부하면서, 평범해 보이는 교훈들을 하느님 안에서 해석하면 곧 하느님의 말씀(성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2년 베트남과 국교를 맺은 직후,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안내를 맡은 분은 호찌민이 프랑스를 몰아내고 미국도 쫓아낸 훌륭한 정치 지도자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안내인의 표정엔 자부심과 긍지가 가득했습니다. 호찌민은 부하 동지들과 똑같이 식판에 배식을 받았으며,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해 통일 베트남의 남쪽 바다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일화도 전해주었습니다. 그의 검소하고 겸허한 삶이 오늘날 베트남의 부흥을 뒷받침했고 베트남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이승만 개인을 위한 개헌

호찌민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정치 지도자는 이승만 대통령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미국에 피신해 있으면서, 자신을 왕족이라 사칭하고 그 소중한 독립 자금을 남용한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앞세워 큰 분란을 일으켰던 이승만은 끝내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친일파와 손잡고 정권 연장을 위해 헌법을 농단했습니다.

얼마 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이 ‘사사오입’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사사오입 개헌에 대해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걸까? 실체를 간과한 단선적 비유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역사 기도를 시대순으로 연재하다 보니 공교로운 타이밍입니다만, 어쩌면 사사오입 개헌이 우리 헌정사에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남겼는지 알릴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개헌은 대체로 대통령의 임기 규정을 바꾸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임기를 바꿔서, 다시 말해 특정 대통령의 임기를 늘려서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었다면 우리가 그 긴 질곡의 세월을 거쳐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1952년 6.25 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은 발췌개헌을 통해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고자 합니다. 2년 전 총선에서 그를 지지했던 인사들이 대거 낙선하면서 국회의원 간선제로는 재선될 가능성이 작았기 때문입니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이 포진한 국회는 당연히 반발했습니다. 결국 경찰이 의사당을 포위했고, 기립투표 방식으로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중임에 성공합니다.

1차 중임으로 8년간 집권이 보장되었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매우 부족했던 듯합니다. 아예 종신 집권을 노렸으니까요. 대통령 임기 4년, 2회까지 가능한 연임 제한 규정은 그대로 두고, 부칙에 ‘헌법 개정 당시의 대통령은 연임 제한 적용을 받지 않는다’라고 부기한 것입니다.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 조항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고, 누가 봐도 의도가 뻔했습니다. 의원들이 극렬히 반대할 것도 자명했습니다.

이승만은 대대적인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갑니다. 1954년 민의원 선거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인사들만 공천을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자유당은 개헌 정족수 136석에 훨씬 못 미치는 114석에 불과했습니다. 협박하고 매수하고 회유하고, 이승만 정권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계산상으로는 137명의 의원을 개헌 찬성파로 확보했습니다.

 투표 결과 번복 위해 깡패 동원

1954년 11월 27일 개헌 투표가 이루어졌습니다. 결과는 재적 의원 203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0명, 기권 7명, 무효 1명이었습니다. 국회 부의장 최순주가 개표 결과를 발표하자 의사당 안의 야당 의원들은 만세를 불렀고, 자유당 의원들은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들이 확보했다고 했던 137명 중에 최소 2명이 이탈한 것입니다.

국회 부의장은 헌법 98조에 의거, 개헌안이 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참고로 헌법 98조는 ‘헌법 개정의 의결은 양원에서 각각 그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써 한다’입니다. 개헌 정족수는 203명의 3분의 2(135.333) 이상이므로 당연히 136명입니다. 적어도 그날 의사당 안에서 찬성 135명이 의결 정족수 미달이란 사실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부결된 다음 날 자유당 의원총회가 열리고 여기에서 ‘번복 가결동의안’이 상정된 것입니다. 의결 정족수를 사사오입(四捨五入)하면 135명이므로 헌법 개정안은 가결된 것이란 논리입니다. 조용순 법무부 장관은 0.333은 독립된 한 사람이 아니므로 개헌 정족수는 135명이 바르다고 유권해석을 내립니다.

점입가경으로 이 논쟁에 수학자가 등장합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이자 대한수학회장을 역임한 최윤식 교수도 사사오입에 찬성했다는 것입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싶습니다. 상식적으로, 수학과 교수가 사사오입 개헌을 어떤 공식이나 계산으로 옹호했다는 것일까요?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자유당 국회의원 이익흥과 손도심이 최 교수를 찾아가 ‘203의 3분의 2가 얼마냐? 그 숫자를 사사오입하면 얼마가 되느냐?’를 질문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계산 식을 서울대 수학과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엉겁결에 답을 말한 최 교수는 뜻하지 않게 정권에 제대로 이용당했습니다.

11월 29일 깡패들의 협박을 받은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개헌안 번복 가결동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영구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당시 중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말씀하셨습니다. “딱 한 표가 모자라 부결되었습니다”라는 보고를 받은 이승만이 “그게 왜 부결이야? 다시 계산해 봐라!”라고 역정을 내자, 자유당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개정안을 통과시킨 거라고요.

과정이 어쨌든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무리수를 전 국민이 지켜보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1954년의 헌법 개정은 사실상 위헌이었습니다. 정족수에 대한 잘못된 해석뿐 아니라 특정 개인에게 대통령의 지위를 영구 보장한다는 조항은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영구 집권에 성공했지만, 민주주의 정신과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자존심은 짓밟혔습니다. 모든 작용엔 반작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극히 퇴행적이었던 이승만의 욕심은 4·19 혁명으로 단죄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욕심이 뿌려놓은 씨앗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는 잡초처럼 대한민국 정치사에 어둠을 드리웠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악의와 악행을 지켜보고 경계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극히 일부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학습하고 그것을 갈망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로지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헌법에 손을 대도 된다는 사실을 배웠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습니다. 이것이 매우 가슴 아픕니다.

사사오입 개헌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비록 비틀거리거나 뒤로 한발 뒤로 물러나기도 하지만, 우리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깃든 어둠이 완전히 멸할 때까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사사오입 개헌은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언제든 반복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 겨레와 국가가 오직 빛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공동체가 하루바삐 다가오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정의로우신 하느님, 저희 모두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시고 특히 정치인들이 올바르게 살도록 이끌어주소서. 아멘!

함세웅 신부 _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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