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재창립한 한국홀리협회 회장 김무열 전북대 명예교수가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 있는 완도호랑가시나무 기준목 앞에서 찍는 모습이다. 사진 천리포수목원 제공
“1981년 전북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뒤 천리포수목원에서 1년간 근무하면서 민병갈 원장님과 인연을 맺었어요. 그때 1978년 민 원장님께서 완도호랑가시나무를 세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사연을 들었는데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평소 서울 양재동꽃시장에서 묘목을 많이 구해왔는데, 어느날 수목원 직원이 ‘특이한 호랑가시나무를 봤다’고 지나가듯 얘기를 했대요. 잎 끝에 5개의 뾰족한 가시가 달려 육각형인 호랑가시나무가 일반적인데 가시가 거의 없이 둥글고 부드러운 잎이었다는 거였죠. 곧바로 민 원장님이 양재동의 묘목상에게 출처를 추적한 끝에 전남 완도군 대문리 완도수목원 근처 야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직접 찾아냈다고 했어요.”
지난 12월17일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재창립한 한국홀리협회의 회장 김무열 전북대 명예교수의 회고담이다.
“호랑가시나무는 일찍부터 서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랑받아서 성스러운 ‘홀리’(holly)로 불리죠. 학술적으로 감탕나무속(Ilex) 식물들을 통칭하는 영어 이름이 홀리(Holy)이기도 하고요. 암나무·수나무 두 종류가 있는데 암나무엔 한겨울 내내 빨간 열매가 맺혀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어요. 그래서 원래 미국인인 민 원장님께서 1970년 수목원 설립 초기부터 호랑가시나무를 많이 심고 모아 연구했고 1978년 한국홀리협회도 창립하셨던 거죠.”
김 회장은 3일 전화 인터뷰에서 “고 민병갈 설립자의 탄생 100돌을 기념해 재창립한 한국홀리협회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관상자원인 감탕나무속 식물을 보전하고 널리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2월17일 김용식 천리포수목원 원장, 김무열 명예교수 등 한국홀리협회 관계자들이 재창립 기념으로 심포지엄을 연 뒤 수목원 내 에코힐링센터 정원에 완도호랑가시나무 ‘페리스 드림’을 심었다. 완도호랑가시나무는 1978년 민병갈 설립자가 최초로 발견한 한국특산 자생종이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고 민병갈 원장
홀리협회 창립 2002년 작고 때까지 활동
‘홀리’는 감탕나무속 식물의 영어 이름
1978년 완도호랑가시나무 자생도 첫 발견
지난 연말 탄생 100돌 기념 협회 재창립
“자생지 보존·자원식물 육성 등 목표”
천리포수목원 설립자인 고 민병갈 원장이 생전에 호랑가시나무 무늬가 새겨진 조끼를 즐겨입을만큼 호랑가시나무를 좋아해 많이 수집하고 키웠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고 민병갈 원장은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 직후 미 군정청 해군장교로 한국에 건너와 정착한 ‘귀화 미국인 1호’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행 상근고문으로 일하며 친분을 맺은 민병도 총재의 이름을 따 1979년 미국 이름 ‘칼 페리스 밀러’ 대신 서양인 최초의 한국 국적자 ‘민병갈’이 됐다. 1962년 휴가 때 우연히 천리포에 왔다가 한 마을 주민들의 부탁으로 야산을 사준 것이 계기가 되어 수목원까지 세운 일화도 유명하다.
특히 민 원장은 호랑가시나무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는 1972년 서양호랑가시나무 재배품종 ‘제이 시 밴 톨’을 들여와 수목원에 심었고, 76년에는 제주도 월림리에서 자생종 호랑가시나무를 처음 채집한 이래 호랑가시나무, 꽝꽝나무, 감탕나무 등 국내 감탕나무속 식물을 두루 수집했다. 그는 생전 호랑가시나무 무늬가 들어간 조끼를 즐겨입기도 했다. 그 덕분에 2021년말 기준으로 천리포수목원은 감탕나무속 식물만 563분류군을 보유하고 있다.
1978년 미국홀리협회의 한국지부를 꾸린 그는 98년 미국협회의 총회를 천리포수목원에서 열 정도로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했다. 2000년에는 천리포수목원을 미국협회에서 아시아 최초 공인 호랑가시수목원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2000년께 민 원장님의 암 발병 소식을 듣고 부라부랴 완도호랑가시나무의 학계 정식등록에 나섰어요. 2002년 ‘완도호랑가시’(Ilex x wandoensis)로 학명을 붙여 함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죠. 그해 4월 민 원장님 작고 직전 학명에 ‘밀러 앤 김’까지 붙여 식물분류학회 등록 절차도 마무리됐고요. 그런데 막상 민 원장님께서 별세한 이후로 협회 활동은 지지부진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어요.”
이처럼 완도호랑가시나무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김 명예교수는 지난해 36년 만에 정년퇴임을 하면서 국립수목원에 52종 한국특산식물의 정기준표본을 기증한 데 이어 천리포수목원에도 완도호랑가시나무 부표본을 기증했다.
감탕나무속의 난대성 식물인 호랑가시나무는 일반적으로 잎끝에 뾰족한 가시가 달리고 육각형이 것이 특징이다. 한겨울 내내 빨간 열매가 맺혀 있어 서양에선 크리스마스 트리로 널리 쓰이며 ‘홀리’로 불린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전남 완도에서 처음 발견된 완도호랑가시나무는 잎에 가시가 거의 없고 부드러운 타원형인 것이 특징이다. 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호랑가시나무는 생태환경에 따라 변이를 계속하고 있어 다양한 원예종 개발이 가능하다. 천리포수목원에서 개발한 새품종 ‘호랑가시나무 디오르’(Ilex cornuta D'Or)는 노란색 열매가 맺혀 관상가치가 높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호랑가시나무는 난대성으로,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서쪽과 중국의 산둥반도 일대에 주로 서식해요. 그동안에는 전북 부안군 산내면 호랑가시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22호)를 비롯해 변산반도 일대가 최북단 서식지로 알려졌지만, 기후온난화 영향으로 점점 북상해 서울 지역에서도 자라고 있어요. 특히 완도호랑가시나무는 감탕나무와 호랑가시나무의 교잡종으로, 지금도 계속 신품종을 개발하고 있죠. 수목원의 연구부장인 최창호 박사가 신품종 5개를 등록해 놓기도 했어요.”
천리포수목원에서는 고 민 원장이 완도에서 옮겨와 심은 완도호랑가시나무 기준목을 중심으로 증식과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민 원장은 생전 나무 한그루라도 더 심으라며 무덤조차 만들지 말라고 유언을 했지만, 유족과 수목원 임직원들은 완도호랑가시나무 옆에 고인을 모셨다가, 10주기인 2012년 수목장으로 다시 안치했다.
“완도호랑가시나무는 학술적으로나 원예적으로나 가치가 뛰어나죠. 그런데 정작 완도의 첫 발견지를 비롯해 자생지 어느 곳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받지 못한 상태여서 안타까워요.”
김 명예교수는 호랑가시나무 잎으로 만든 남미 파라과이의 마테차처럼 자원식물로 육성하는 방안도 협회의 주요 활동 목표라고 소개했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한국식물화가협회 회원들이 그린 완도호랑가시나무 등 감탕나무속 식물 세밀화 전시에 이어 1월 말까지 밀러가든 플랜트센터에서 자체 보유한 감탕나무속 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