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동족들 가운데에서나, 너희 땅, 너희 성안에 있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품팔이꾼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그의 품삯은 그날로 주어야 한다. 그는 가난하여 품삯을 애타게 기다리므로,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품삯을 주어야 한다.”(신명기 24,14-15)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온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를 높여 우십시오. …… 그대들이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야고보 5,1-4)
인류의 역사는 강자들 중심으로 강자의 시각에서 쓴 기록입니다. 우리 역사의 현실도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약자의 처지에서 약자들을 배려하는 하느님의 큰 가르침을 선포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품삯을 보장하도록 부자들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20세기 후반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The preferential option for Poor)이 교회와 신앙인의 핵심임을 깨닫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월1일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관련 법령은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령에는 모순과 함정이 있습니다.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서 막상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기술한 저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중요성은 노동자의 품위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근로자라고 지칭한 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메이데이’란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어느샌가 그 말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3월10일은 ‘근로자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18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0년대는 서구 자본주의가 급성장하던 시기입니다.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경제적 풍요를 선물했지만, 그만큼의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웠습니다. 기업가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노동자들을 착취했습니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함께 살아갈 이웃이고 동료가 아니라 이익 창출의 도구였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긴 노동시간에 지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세계 노동운동의 중요한 화두는 8시간 노동의 법제화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의 노동에 시달렸고, 하루 일당은 1달러 정도로 한 달 일해도 20달러 남짓한 노예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골리앗 같은 기업과 정부권력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들이 선택한 수단은 ‘연대’였습니다.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공장의 기계는 멈췄고, 상가는 문을 닫았습니다. 경찰은 5월3일 파업 농성 중인 사람에게 발포해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상처를 입습니다. 다음날인 4일 저녁 노동자들과 시민 등이 헤이마켓 광장에 모여서 이에 항의하는 평화시위를 벌입니다. 경찰이 강제 해산하려 하자, 누군가 경찰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에 공황상태에 빠진 경찰이 총을 무차별로 난사하는 바람에 경찰 7명, 노동자 등 민간인 4~8명이 숨졌습니다. 부상자도 경찰 60명, 민간인 30~40명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폭탄을 투척한 범인을 잡겠다며 노동운동가 여러 명을 체포했고, 그중 8명을 재판에 회부합니다. 이들을 ‘시카고의 8인’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들이 폭탄을 투척했다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8인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고, 심지어 4인에게는 사형이 집행됩니다. 급진 사상을 가진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노동운동 역사의 아픈 사건입니다.
노동절의 기원이 됐던 1886년 5월4일 미국 시카고시 헤이마켓 사건을 묘사한 목판화로 그 해 5월15일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에 실렸다. 위키피디아
그로부터 만 3년 후인 1889년 7월 파리에 세계 노동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노동자대회’를 엽니다. 시카고의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서인데 이것이 바로 노동절의 효시입니다. 1890년 5월1일에는 세계 각국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메이데이 대회가 개최됩니다. 이렇듯 메이데이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과시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관련 행사가 처음 열린 것은 1923년 5월1일입니다.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하에 2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절 행사를 치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노동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시기의 노동운동은 단순한 노동시간 단축이나 임금 인상이 아니라 항일투쟁이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일명 전평)가 조직되었고, 1946년 해방 조국의 첫 번째 메이데이 기념식이 동대문운동장에서 성대히 거행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노동현장에도 이념이 개입되었습니다. 당시 우익 세력인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한 노동자 대회가 별도로 열렸기 때문입니다.
미군정과 대한노총은 폭력적 방법을 동원해 전평을 파괴하고자 했습니다. 정치색을 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이에 1948년부터 10년간 전평을 반대하는 우익 청년들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지정하고, 5월1일 메이데이는 공산당의 선전도구라며 의미를 격하합니다.
1886년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을 기리는 정신은 잊힌 채 노동절이 정권의 도구가 된 셈입니다.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날이 친일, 미군정, 이승만을 중심으로 변질하였습니다. 정권과 자본이 결합해 노동자는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기계로 변질하였고, 노동운동의 빛나는 전통은 박탈당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박정희는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공포해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꿉니다. 노동자란 말에는 계급의식이 묻어 있어 불편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근로자란 단어에는 근면 성실하게 순종적으로 일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도 ‘근로 정신대’였습니다.
기업가들과 정부권력이 노동자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 말이 주는 주체성과 연대성 때문입니다. 인격과 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은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뿌리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노동은 신성하며, 노동자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공영의 대상입니다.
1989년 민주 노조가 뿌리를 내리면서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매년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이 빛을 보아 1994년 기존의 3월10일 기념일을 5월1일로 옮겨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기 위한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기왕 5월1일을 기념일로 정했으니 그 명칭도 노동절로 바꿔서 1886년 메이데이의 의의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노동절은 5월1일이 아니라 9월 첫째 주 월요일입니다. 시카고의 노동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미국은 현재 그릇된 자본주의의 본산이 되어 원래의 정신을 잃었습니다. 오히려 중국이나 러시아 등 공산권에서 노동절을 크게 기념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은 노동절 하루가 아니라 그 주일 내내 축제처럼 성대히 치른다고 합니다. 저는 미국 동전과 지폐에 새겨진 “우리는 하느님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라는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해, 이제는 미국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자본주의의 우상을 말끔히 척결하고 인간 중심의 참되고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가톨릭은 역사 속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못했습니다. 유럽의 제도 교회들은 늘 가진 자의 편이었지만, 가톨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노동헌장’(Rerum novarum)을 발표해 노동자들의 권익옹호를 선언하고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교회상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깊게 뿌리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1955년 교황 비오 12세는 메이데이인 5월1일을 ‘성 요셉 노동자의 주보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노동자 편에 서지 못한 가톨릭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신학자들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메이데이 축제의 역동성을 다소 중화하려는 저의가 담겨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우리나라 100년 노동운동 역사에서 대의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마음에 모시고 기도합니다. 노동운동에 몸담은 분들이 초심을 되살려, 노동운동을 통해 기성 정치인과 기업가들을 감동하게 하고 함께 행복하고 함께 누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욱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더 크고 아름답고 평등한 노동운동을 펼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민주노총이 크게 변한 한국노총과 손잡고, 기업인들과 정부와 대화하고 협력해 북유럽과 같은 사회복지를 보장하는 문화를 형성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기회에 노조 간부들이 가슴에 전태일 정신을 품고, 1886년 미국 헤이마켓 노동자들의 희생을 생생히 기억하며 그분들의 삶을 재현하기 바랍니다.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구원행업과 축복이 바로 인간 노동의 원형이며 근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살아계실 때 몸소 일하시고 인간 노동을 축복의 원천이 되게 하셨고, 노동에 고귀한 품위를 명백히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 하느님과 가정,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정화되고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사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저희의 노동과 노고를 받아주시고 축복하소서. 또한 노동의 대가로 얻은 모든 이익을 기업가와 사주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공평하게 분배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공동체를 이룩하게 해주소서. 인간과 노동이 자본에 우선한다는 성서의 진리를 깨닫고 저희 모두 꼭 실천케 해주소서.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