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항쟁과 5·18의 두 법정’.
최근 나온 <헌법과 양심의 길을 따라-고봉 김이수 헌법재판관 고희 기념 헌정 논문집>(솔과학)에 실린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의 논문 제목이다. 공직 퇴임 이후 조선대 이사장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가 지난해 <법학평론> 11권에 실은 글이다. 그의 별칭은 ‘미스터 소수의견’이다. 2012년부터 6년 동안 헌법재판관으로 일하며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해 소수의견을 지속해서 냈다는 이유에서다.
<헌법과 양심의 길을 따라-고봉 김이수 헌법재판관 고희 기념 헌정 논문집>. 솔과학 제공
그는 이 논문에서 광주항쟁 참여자들이 국헌 문란의 폭동을 했다는 이유로 내란죄로 처벌된 ‘1980년 법정’과 그 이후 항쟁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데 관여한 전두환 등 핵심 책임자들이 거꾸로 내란죄로 처벌받게 된 과정을 꼼꼼히 짚었다.
“5·18을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썼지만 저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는 5·18 때 광주 향토사단인 31사단 검찰관으로 근무했고 광주항쟁 참여자를 내란죄로 단죄한 ‘80년 법정’에도 관여했다. “제가 군판사로 관여한 재판부는 주로 전남 지역 5·18 사건을 담당했어요. 저 역시 그때 몇 사람에게 내란죄를 인정해 유죄 판결을 했어요. 소요죄나 계엄법 위반 정도로 그칠 일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연계하기 위해 내란죄를 인정했어요. 지나친 일이었죠.”
지난 23일 전화로 만난 김 이사장은 책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항쟁 때 광주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을 보고만 있었다는 부채의식과 군판사로서 궁극적으로 항쟁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소요죄를 넘어 내란죄를 인정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 전역 이후 법관 생활 내내 이어졌으며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재판을 해내겠다는 각오로 이어졌다.”
그는 광주항쟁 최후의 날에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등 17명을 군 검찰관으로서 직접 검시하기도 했다. “윤상원은 다른 주검과 달리 독특하게 화염방사기로 그을린 흔적이 있었어요. 기억에 많이 남아요. 한 여성은 가슴에 칼자국이 있어 ‘유방부자창’이라고 기록했는데 1988년 광주청문회 때 정치권으로부터 이 내용을 확인해달라는 전화도 받았죠.”
그가 헌법재판관으로 관여한 결정에 대한 평석 위주의 논문을 모은 <헌법과 양심의 길을 따라>에는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학자와 헌법재판소 연구관 등 29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지난 13일 한국언론회관에서 논문 봉정식이 열렸다.
“헌법학 교수들이 먼저 논문집 출간을 제안했어요. 제 제자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인연이 있는 분들도 아닌데 논문집을 만들겠다고 해서 저로서는 무척 영광이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솔과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