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콜래드가 찍은 샹뱌오의 사진을 사용해 디자인한 <주변의 상실> 책 표지 이미지. 글항아리 제공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직장을 얻고, 집을 사고, 계속 의미가 외재적인 것으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 시민들이 일상의 사소한 일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자기 자녀들이 베이징으로 가기를 원하게 되죠.”
중국 출신 인류학자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장이 2020년 펴낸 <방법으로서의 자기>에서 진단한 중국 사회의 모습이다. 늘 거창한 담론보다는 구체적인 생활에 천착했던 샹뱌오 소장의 연구 태도를 담은 책은 중국에서 20만 부 넘게 팔리며 큰 호응을 받았다. 이 책은 2022년 10월 말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샹뱌오 소장이 들여다본 중국 사회의 과열 경쟁은 한국 사회와 어떻게 닿아 있는가.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와 샹뱌오 소장이 화상으로 만나, 한·중 두 나라의 경쟁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경쟁에 참여했으나 기본적인 바람도 이루지 못한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한 중국 사회의 극한 경쟁은 1978년 급격한 시장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개혁·개방으로 10억 인민이 거의 동시에 시장경쟁에 뛰어들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주위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보류하는 심리를 갖게 됐다.”(샹뱌오 소장) 이때 중심과 주변은 상대적으로 사회자원이 쏠린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일컫는 비유적 개념이다.
자원 배분을 놓고 격렬한 경쟁이 펼쳐진 지 40여 년. 중국 사회 곳곳에서 피로가 축적되며 경쟁을 자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최근 중국 사회엔 ‘(경쟁에) 말려들었다’는 뜻의 ‘네이쥐안’(內卷), 중국 명문대(일명 ‘985 공정’)를 나와도 양질의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는 뜻의 ‘985 폐기물’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결국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토록 많은 경쟁에 참여했으나 가장 기본적인 바람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샹뱌오 소장의 진단이다.
계층이동을 향한 격렬한 경쟁은 교육도 그 수단으로 둔갑시켰다. 중국에선 대학 입시를 치른 수험생과 석·박사 과정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드물지 않다. “이유는 경쟁 그 자체에 실패해서가 아닙니다.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 속에서 자신의 경쟁 실패를 설명할 수 없었거나, 혹은 왜 이 경쟁을 원치 않는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샹뱌오 소장) 이런 분위기는 압축성장을 겪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문영 교수는 “한국 청년들도 ‘정지 버튼 없는 러닝머신에서 계속 뛰는’, 이른바 보상이 명확지도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경쟁에 처해 있다. 교육자본을 축적했지만 정규직-비정규직의 뚜렷한 이중 노동시장 속에서 극도의 취업 불안정을 경험하는 청년이 스스로를 ‘약자’로 출현시켰다”고 짚었다.
조 교수는 다만 ‘상류층 진입 경쟁의 피로감’을 과도하게 보편화하는 것은 경계한다. “그것도 교육자본을 어느 정도 갖춘 청년들 얘기고요. 플랫폼 배달노동자가 호소하는 경쟁의 피로함은 정보기술(IT) 업계 청년이 호소하는 경쟁의 피로함과 사회적 보상의 정도가 다릅니다. IT 업계 청년을 비롯한 대학생 청년이 자기 불안을 토로하는 공론장은 많아졌으나,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려난 노동자 청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는 또한 주류 담론에서 벗어나 기본소득운동이나 기후정의운동 등 자기만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청년도 한국에서 꾸준히 있었다고 덧붙였다.
샹뱌오 소장은 중국 사회에서 그러한 시도는 아직 주류가 아니며 경쟁 이외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이가 여전히 대다수라고 설명한다. “중국도 ‘탕핑’(躺平·소득 없는 경쟁보단 누워 있는 게 낫다는 뜻) 같은 용어가 생겨나긴 했습니다. 다만 경쟁에 저항하기보다는 일종의 감정 처리에 머무르는 수준이죠. 경쟁에서 탈출한 운동가나 귀농인은 소수의 엘리트일 가능성이 크고요. 지금은 청년들이 (실패했다는) 감정만 있고 명확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분석 도구를 줘야 합니다.”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장. 샹뱌오 제공
‘자기 이해’의 빈자리를 채우는 ‘남의 이해’, 국뽕
자기 이해의 빈자리는 때때로 ‘남의 이해’가 채운다. 대표적 예가 국가주의다.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공격적인 중국 청년 인터넷 부대 ‘샤오펀훙’(小粉紅)은 애국이라는 구호 아래 중국 위상에 흠집을 낸다고 판단되는 ‘적’을 무차별 공격한다. 한국 가수 이효리씨가 2020년 방송에 출연해 “예명으로 ‘마오’ 어떠냐”고 말했다가 샤오펀훙의 악성 댓글 공격에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마비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샹뱌오 소장은 이런 현상도 ‘자기 철학 부재’의 이면이라고 진단한다. “우리 모두 국가권력과 관계없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국가 정책에 익숙하지도 않죠. 그런데 왜 꼭 국가적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하나요? 반드시 ‘중국 담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자기 생활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거대한 국가와 민족의 모자를 눌러써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죠.”
한국도 ‘케이(K)-방역’과 각종 한류 문화 콘텐츠 열풍을 타고 ‘국뽕’ 바람이 거셌다. 샤오펀훙처럼 외부를 공격하는 양상은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드높은 국제사회 위상을 보여주는 영상이 SNS에서 끝없이 재생산됐다.
새로운 가치관으로 부상한,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온라인·사회 내 소수집단에 대한 언어적 차별을 피하자는 주장)도 공론장의 한 축을 차지한다. 샹뱌오 소장은 이 역시 개인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기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윤리적으로 잘 정돈된 ‘입장’이 꼭 개인이 느끼는 경험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학력 중산층의 가치가 거의 공공 담론을 독점하고 있고 ‘진짜’에 대한 유일한 표현 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싫어하는 건 그게 틀렸거나 거짓이라서가 아닙니다. 너무 속 빈 강정 같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금 모두가 천천히 참된 방식으로 자기 경험을 써내려가기 시작(해야)합니다. 많이 쓰다보면 진짜가 남을 겁니다. 그때 ‘쪼잔하게’ 다투는 식의 태도는 지나가고 천천히 참된 느낌과 정말 중요한 일을 결합해서 볼 수 있겠죠.”
성차별, 기후위기 등 논쟁적 현안에 대한 개인의 파편적인 경험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된다. 하지만 온라인 공론장이 가진, 폭발적이고 즉각적인 소통의 위험성도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다름을 조율할 수 있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논쟁하고 토론하면서 상대에게 반성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줘야 하죠. 온라인상에서는 그게 거의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을 일시에 폭발시켜 상대방을 응징하지 않으면 내가 진다, 이런 조바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조문영 교수의 말이다.
순간의 관심을 잡아끄는 SNS의 특성도 소통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SNS는 그 특성상 주제를 깊이 다루지 않고 자극적인 드라마를 다루듯 고도로 상징화하고 상품화합니다. 그래야 유통이 가능하니까요. 그 안에서 우리는 이모티콘 쓰듯 ‘싫다’ ‘좋다’ 선언만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주고받는 게 아니라요.”(샹뱌오 소장)
소모적 소통을 넘어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샹뱌오 소장은 개인의 ‘주변’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원자적인 개인으로서 자신한테 큰 관심을 갖다가도 때로 거대한 사건에 대해 갑자기 거창한 논평을 합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가족 아니면 전세계에만 관심을 두지요. 하지만 개인의 의미와 존엄을 되찾는 방법은 개인이 아니라 관계에 있습니다. 개인의 존엄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그가 강조하는 ‘주변’은 동네 이웃, 단골 가게 주인, 아파트 경비원 등 개인이 물리적으로 몸담은 공동체다. 이들이 작은 개인과 큰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 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샹뱌오 소장이 책 제목을 <방법으로서의 자기>라고 붙인 취지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세상 이해의 도구로 삼자는 것이지만, 이때의 ‘자기’는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개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매번 새로워지는 네트워크”(조문영 교수 추천사)인 셈이다.
“경비원이나 청소미화원 등 평범한 이웃의 삶이 자기가 겉으로 추측하던 것과는 얼마나 다른지, 또 마을 사람들끼리 하는 말다툼에는 어떤 싸움의 기술이 있는지 이런 것들이 실은 아주 재미있는 (연구) 주제거든요. 학생들이 런던이나 뉴욕은 예술적이고 농촌은 따분하다고 느끼는데 이렇게 접근해보면 농촌에도 풍부한 서사가 숨어 있습니다. 관건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펜이 아닌 ‘자기만의 펜’으로 세상을 보는 겁니다.”
인류의 생활과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는 문화인류학은 그런 점에서 좋은 도구가 된다. 샹뱌오 소장은 자기 주변을 소재로 한 논픽션 글쓰기나 일상을 색다른 시각으로 뒤집어 보는 과학소설(SF) 읽기 등을 통해 청년이 자신의 주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조문영 교수 역시 대학 수업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끼리 교류하고 질문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한 적이 있다.
<한겨레21> 줌 회의 갈무리.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맨 위 왼쪽)와 샹뱌오 소장(둘째 줄 오른쪽)이 대담을 나눴다. 책 <주변의 상실>을 한국어로 옮긴 우자한 국문학과 박사과정 학생(둘째 줄 왼쪽)과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맨 아래)가 대담 통역을 했다. 영상 화면 갈무리
조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이 새로 창출하는 ‘주변’의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높은 집값과 잦은 이동으로 한곳에 정착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물리적 주변에 애착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이에 차선책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의 ‘주변’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자기 주변(부근)을 만들어가는 청년을 많이 만난다. 예를 들어 부산에 정착한 젊은 여성 예술가들이 의외로 부산의 지역 예술가들보다 서울 쪽 젊은 여성 활동가들과 온라인으로 연락하고 지내더라. 이유를 들어보니 부산 토착 예술가 모임은 아직 가부장 문화나 인맥 중심 문화가 강해서 교감하기 어려웠다는 거다. 물리적 주변에만 머무르지 않고 각자가 애정을 담을 만한 공간을 온·오프라인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창조해내는 흐름이 아닐까.”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샹뱌오는?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장은 중국 베이징 근교에서 일하는 저장성 출신 노동자들의 거주촌을 6년에 걸쳐 연구해 펴낸 석사논문 ‘저장촌 연구’로 처음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도 출신 정보기술(IT) 인재들의 외국 이민 등을 소재로 세계의 경제 교류와 지역 ‘로컬리티’의 관계를 분석한 박사논문 ‘글로벌 헤드헌팅’도 미국 인류학계에서 영예로 여기는 ‘리즈상’을 받았다. 2020년 펴낸 책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20만 부 넘게 팔리며 중국 대중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류학 교수로도 재직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과 중국을 주 무대로 빈곤 연구에 천착한 연구자다. 서울 관악구 빈민 지역 ‘난곡’에서 가난과 복지의 관계를 관찰한 내용을 석사논문으로 써서 주목받았다. 이후 중국 둥베이지방 사회주의 노동자 계급의 빈곤화 과정을 박사논문으로 썼고, 2014년 중국 북동쪽 지역의 도시 빈곤을 주제로 연구논문을 써서 리즈상을 받았다. <헬조선 인 앤 아웃>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등 빈곤을 다룬 다양한 책을 썼고 2022년 11월 빈곤의 여러 층위를 탐색한 책 <빈곤 과정: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글항아리)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