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독한문화원장.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양철학의 역설>.
1973년 박정희 독재 정권이 조작한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독일에서 30년 이상 ‘정치 망명객’으로 살아온 김성수(87) 독한문화원장이 최근 낸 책이다. 1974년 독일에 정치 망명을 신청한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야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앞서 2002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을 두고 “당시 중앙정보부도 간첩 혐의자를 찾지 못했던 조작 사건”이었다고 규정하고 1년이 지난 뒤였다.
연세대 철학과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비교철학 공부를 위해 독일 유학을 떠난 그는 1980년에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첫 철학 저술인 이번 책에는 그리스 이래 유럽 철학의 기본 성격은 ‘물질과 의식’, ‘현상과 본질’, ‘부분과 전체’와 같은 이분법적 사유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딜레마’나 ‘이율배반’, ‘자가당착’과 같은 역설(Paradox) 현상을 일으킨다는 저자의 생각이 담겼다.
“1990년대 사회주의 진영 붕괴와 세계 각 곳에서의 갈등과 충돌 심화 그리고 심각한 자연파괴와 자연재해를 보면서 2000년대 초부터 그 근원의 철학적 해명을 찾으려고 했죠.” 지난 22일 이메일로 만난 그가 밝힌 저술 동기이다. 왜 이분법적 사유는 역설로 이어질까. “이분법적 사유는 분별과 시비를 무한정 멈출 수 없게 하기 때문이죠. 각기 자기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면서요. 하나의 테제가 등장하면 안티테제로 대립하고 이 대립을 종합해도 일시적이죠. 이 대립과 갈등의 이론적 전개는 끝이 없어요. 이 과정에서 역설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죠.”
역설은 왜 문제일까? “역설은 그 내용의 성격상 이율배반, 진퇴양란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대두하는 극단주의 또는 원칙주의 등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행동으로 전환되어 전쟁과 자연파괴, 약 주고 병 주는 현상 등의 인류재앙을 초래해요. 또 정신적으로는 회의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죠.” 대안은? “동양철학인 노장철학의 무위사상과 불교 철학의 여여(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한결같다)사상 그리고 천지인 3위 일체 사상에서 이분법성의 한계를 성찰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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