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인 2006년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전사회적으로 제기된 인문학 진흥의 필요성이 2007년 시작한 ‘인문한국’ 사업을 낳았다. 고려대 제공
교육부가 인문학 진흥을 위한 국책사업이었던 ‘인문한국’(HK)을 ‘인문한국플러스’(HK+)란 이름의 후속사업으로 이어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 인문한국 사업에 참여했던 연구소가 인문한국플러스 사업에 다시 참여하는 것을 봉쇄해, 지난 10년 동안 이 사업으로 쌓은 성과를 외면하고 연구자들을 배제한다는 반발이 일고 있다.
9일 교육부는 한국연구재단 누리집에 ‘2017년 인문한국플러스 지원사업 신청요강 공고’를 냈다. 이를 보면, 2017년 한해만 136억원을 들여 인문학 연구소 8곳(‘인문기초학문’ 분야 5곳과 ‘해외지역’, ‘소외·보호/창의·도전’, ‘국가 전략·융복합’ 분야에서 각 1곳)을 선정해 지원하고 사업을 7년 동안 이어갈 계획이다. 사업기간 동안 ‘(연구비) 3억원당 1명 이상’의 인문한국(HK)교수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이 뼈대다.
문제는 “2007년 이후 인문한국 사업 수행 연구소는 신청 불가”라는 제한 규정을 뒀다는 점이다. “기 인문한국 선정 연구소는 인문한국플러스 사업에 신청이 불가하다”고도 못박았다. 다만 “2017년 인문한국 지원사업이 종료되는 연구소는 하반기 실시될 총괄평가 결과와 2018년 예산 규모 등을 고려하여 2018년 인문한국플러스 ‘2유형’(인건비 제외, 운영비·연구비만 포함) 지원 자격을 부여한다”고 했다. 내년 상황을 봐서 제한적인 사업 지원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인문한국 사업 연구소들의 모임인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10년 동안 공들여 닦아놓은 연구기반을 활용하기는커녕 봉쇄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학문 저변의 확대를 위해 신규 연구소를 지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연구기반을 쌓아온 기존 연구소들을 배제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올해는 기 선정연구소의 사업 지원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내년부터 지원자격을 주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굳이 1년의 공백기를 두어 무조건 퇴출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협의회는 비판했다.
인문한국 사업은 교육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이 “대학 내 인문학 연구소 집중 육성을 통해 인문학 연구 인프라 구축 및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 연구 성과를 창출한다”는 목표로 2007년부터 10년 동안 시행해왔다. 현재 43개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2007년 처음 선정됐던 16곳은 8월말로 사업이 종료된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한국문화연구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현재 이들 16개 연구소에는 인문한국연구교수(비정년트랙) 92명이 있다. 기존 연구소의 재진입이 배제되면, 대학에서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하는 인문한국교수(정년트랙)와 달리 이들은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원 기준을 기존 ‘1억5000만원당 1명’에서 ‘3억원당 1명’으로 바꾸어 연구자 수를 줄인 조처도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인문한국 사업과 인문한국플러스 사업이 병행되므로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교육부는 “대학 쪽의 채용 부담을 완화하여 국공립대의 사업 신규 진입 활성화를 도모”했다고 밝혔다.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 쪽은 “교육부는 지난 6월부터 이전에 없던 ‘기존 연구소 재진입 불가’ 방침을 꺼내들었고, 공론화 과정 없이 후속사업 공고를 강행했다. 앞으로 불거질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 연구소는 그동안의 실적에 대한 평가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하는데다가, 신규 연구소와 같은 기준으로 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올해에는 배제가 불가피했다. 게다가 신규 진입을 바라는 연구소들의 목소리도 높다”고 말했다.
최원형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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