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지용. 한겨레 자료사진
조선대 강옥미 교수 논문…“근대시부터 한글 보편성 해체·활자 시각화”
정지용 ‘슬픈 인상화’에 종성·초중성 분리…‘내ㅁ새’, ‘머-ㄴ’, ‘큰기ㄹ’
“‘기표’ 유희 난무, 뜻은 찾기 힘들어…윤활유 측면 있지만 대부분 사라질 것”
정지용 ‘슬픈 인상화’에 종성·초중성 분리…‘내ㅁ새’, ‘머-ㄴ’, ‘큰기ㄹ’
“‘기표’ 유희 난무, 뜻은 찾기 힘들어…윤활유 측면 있지만 대부분 사라질 것”
"인정 어 인정"(상대방 동의를 구할 때 쓰는 말), "용비 어 천가"('인정 어 인정'에서 따온 말투로 의미 없음) "오지고지리고렛잇고아미고알파고"('좋다'는 뜻) 과연 '한국어나 한글이 맞을까?' 의문이 드는 이러한 말투는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급식체'다. 학교 급식을 먹는 연령대인 초·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투라는 뜻이다. 이런 급식체로 대표되는 '한글 해체' 현상은 거의 100년 전인 1920년대부터 이미 나타난 것으로,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8일 조선대 인문학연구원에 따르면 이 대학 강옥미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야민정음과 급식체의 해체주의 표현연구'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강 교수는 급식체에서 기표(記表·단어 자체의 형태)와 기의(記意·단어의 의미)의 1대1 대응이 해체되고 무한한 기표의 유희가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의미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단어의 나열로 한글 해체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1930년대 이상의 작품 등 일련의 시에서 다양한 문자해체와 시각화가 시도됐고, 1980년대 해체시나 이후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 언어에서도 글자의 형태 파괴, 배열의 전환이 시도됐다고 밝혔다.
1920년대부터 한국의 근대시에서 한글 보편성에 대한 해체와 활자의 시각화가 이뤄졌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동시대 잡지인 '학조' 창간호에 나오는 정지용의 '슬픈 인상화'에는 '내ㅁ새', '머-ㄴ', '큰기ㄹ'처럼 종성이 초중성과 분리된 시어들이 사용됐다.
이러한 한글 해체는 1930년 이상, 김기림 등에 이르러 더욱 강화했다. 이상은 '선에 관한 각서6'에서 활자 '4'를 90도, 180도 회전시켜 시에 반복 배치했다. 이상은 '오감도' 연작시에서는 붙여쓰기를 자주 하면서 일반적인 한글 쓰기 방식과도 차별화를 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사용과 붙여쓰기는 급식체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한글 해체라고 강 교수는 말했다. 1980년대 박남철과 황지우 시에서도 활자를 거꾸로 배치하고 전통적인 구문을 파괴하는 한글 해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박남철의 '권투'에서 '오로지 이긴 선수들만 남아있다' 시어는 상하반전돼 쉽게 읽을 수 없도록 표현됐다.
급식체를 살펴보면 '인정 어 인정'은 '동의 어 보감', '용비 어 천가' , '양파 어 니언', '의견 어 피니언' 등으로 확장됐다. 용비, 양파, 의견은 인정과 전혀 의미가 다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단어로 파생됐다. '오지고지리고렛잇고알파고'도 '-고'라는 마지막 글자만 같고 의미의 유사성은 전혀 없다. 급식체의 이러한 표현 역시 이전 현상에서 나타난 것처럼 기표와 기의의 1대1 연결구조를 해체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급식체는 단어의 일부를 떼어내서 다른 글자로 대체하고 대체된 단어는 원래 단어의 의미와 연관성이 없다"며 "기표의 유희만 난무하고 기의는 찾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은 급식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스스로 기성세대와 차별화하고 그들만의 동질성을 나타낸다"며 "급식체가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의사소통의 윤활유 측면에서 본다면 (급식체 사용에) 수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언어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 중 얼마는 살아남을 것이고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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