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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귀농 1년 만에 ‘공부 금단’ 겪고 다시 ‘동아시아사’ 연구했죠”

등록 2020-02-17 18:52수정 2020-02-18 02:16

[짬] 서강대 사학과 김한규 명예교수

김한규 교수가 서재에서 당나라 시인 이하 시집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결혼 전에 집 사람한테 선물한 책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죠.” 사진 김한규 교수 제공
김한규 교수가 서재에서 당나라 시인 이하 시집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결혼 전에 집 사람한테 선물한 책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죠.” 사진 김한규 교수 제공

“정년퇴직하고 1년쯤 지나 아내가 그래요. 다시 공부하라고요. 낮에는 땅 파고 농사짓느라 바빠 딴 생각할 겨를이 없더군요. 그런데 저녁이 너무 심심했어요. 공부도 술이나 담배처럼 중독성이 있어요. 끊기 힘들어요. 1년 지나 금단 현상이 왔죠.”

김한규 서강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5년 전 정년퇴직하고 아내와 함께 경남 함양군 서상면 산골로 들어갔다. 남덕유산 해발 800m 고지에 ‘나홀로 집’을 지었다. 처음엔 밭농사를 하다 지금은 주로 과일 농사에 힘을 쏟고 있단다. “가까운 민가가 2km 떨어져 있어요. 은퇴하면 조용한 곳에 살려고 애써 찾았죠. 온종일 사람 한 명 보기 힘들어요.”

산속에 갈 때는 책을 끊고 직업을 바꾸겠다는 마음이었지만 그 결심을 1년 만에 물렸다. 그리고 4년 걸려 <동아시아의 창화 외교>(소나무)라는 6백 쪽이 넘는 학술서를 냈다. “5년 만의 수다였습니다.” 지난 11일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김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1982년 첫 책 <고대 중국적 세계 질서 연구>를 시작으로 ‘전통 시대 동아시아 세계 질서’를 주제로 퇴임 전까지 10여 권의 연구서를 냈다. 2004년에 낸 <요동사>는 뜨거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구려나 요·금·원·청의 활동무대였던 요동의 역사를 중국이나 한국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사공동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 동북지역인 요동이 민족국가나 국경선으로 재단할 수 없는 고유의 역사를 가졌다는 그의 주장은 요동이 예전부터 자기 땅이라고 생각한 한국이나 중국 학자들로부터 함께 공격을 받았다.

시를 주고받는 행위인 ‘창화’를 통해 전통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외교를 탐구한 이번 책도 지난 연구 주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명·청 시절에 중국과 조선은 물론 일본과 안남(베트남), 유구(오키나와)까지 포함해 다섯 나라 사이에 있었던 ‘시로 하는 외교’를 들여다봤다.

“각국 사신과 관원이 만나 시를 주고받는 창화 외교는 동아시아에서 수백 년 행한 중요한 외교 양식인데 그간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어요. 중국 학계에서 한·중 사이에 시와 부를 읊으면서 한 ‘시부 외교’를 주제로 논문 몇 편이 나왔을 뿐이죠. 안남과 유구, 일본까지 포괄한 저술은 그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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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창화외교> 표지

명·청과 조선의 창화 외교는 중국 사신이 압록강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다. 사신이 선창하고 조선의 접대 관원은 화답하는 시를 짓는다. 사신이 떠날 때는 창화 시를 판각해 책까지 만들어 선물했단다. 영조 때 나온 <황화집>에는 이런 창화 외교 시 6289수가 실렸다. “압록강에서 한양 가는 길에 사신과 조선 관원 사이에 수십 편의 시를 지었죠. 조선 경내의 창화 외교는 세종 때 중국 사신 예겸과 정인지·신숙주 등 사이에 시작해 수백 년 간 지속했죠.”

창화 외교에는 ‘책봉과 조공체계에 기반한 동문의식’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김 교수 생각이다. 동문은 한자를 같이 쓴다는 말이다. “조선 등 5개국은 동일한 문화공동체라는 자의식이 굉장히 강했어요. 서로 같은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는 순간 시가 나왔어요. 창화 외교 시가 다 그런 내용입니다.”

창화 외교는 또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딱 어울리는 외교 양식”이라고도 했다. “중국이 중심에 서고 사국(사방지국의 준말, 중국의 조봉 책봉국)은 주변적 역할을 하는 이른바 중국적 세계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매우 적합한 외교 양식이었어요.” 비유적으로 중국이 선창하고 주변국이 화답하는 게 중국적 세계질서였다면 창화 외교가 이에 딱 떨어지는 장치라는 것이다. 한·중 창화 외교도 선창자는 늘 중국 사신이었다. “조선 문인 서거정(1420~1488)이 중국 사신 기순을 만나 예외적으로 선창했어요. 도발한 거죠. 그런데 이 모습을 전한 조선의 후대 시화집을 보면 백이면 백 다 서거정을 비난해요.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는 거죠. 여기엔 중국에 대한 사대의 예도 깔렸다고 봐야죠.” 한·중 창화 외교의 공간이 주로 조선 경내였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조선 사신은 중국에 가도 전담 관원의 접대를 받을 수 없었고, 베이징 숙소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었어요. 중국은 신하 사이에는 외교가 없다는 ‘인신무외교’ 원칙을 세워 중국 경내에서 자국 관리들이 조선 사신과 창화하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했어요.”

5년 전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 산골로
아내 권유로 ‘주경야독’ 4년 만에 새책

학술서 ‘동아시아의 창화 외교’ 출간
명·청시대 시 주고받는 ‘창화’ 연구
중국·조선·일본·안남·유구 5개국
“책봉·조공·한자…중국적 국제질서”

안남은 사정이 달랐단다. “중국과 안남을 보면 누가 선창해야 한다, 그런 게 없었어요. 우리와 일본 사이도 그랬고요. 중국적 세계질서에 참여하는 태도의 문제이죠. 월남, 일본 순으로 우리보다 덜 적극적이었죠. 창화 외교를 보더라도 명·청과 조선은 가장 전형적으로 중국적 세계질서에 어울리는 관계였죠.”

창화 외교의 현재적 의미는 뭘까. “창화 외교는 중국의 조공 책봉 체계라는 평화적 국제 질서에서 문화적 역량으로 상대를 심복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어요. 요즘 세계를 보면 쉽게 전쟁을 일으키고 상대를 전멸하려고 하잖아요. 굳이 경쟁하더라도 물리적 경쟁보다는 문화적 경쟁을 하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는 역사 연구자로서 학문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경계해왔다. “목적을 가지고 학문을 하면 왜곡이 생겨요.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그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어요. (동북공정 대립에서) 한국과 중국 학자들이 현실적 목적을 전제로 싸웠어요. 그렇게 하면 가는 길이 뻔해요. 그건 학문이 아닙니다.”

지금껏 그를 연구로 이끈 동인은 ‘지적 호기심’이었지만 나이 먹으면서 생각이 좀 변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는 5년 전 낸 책 <동아시아 역사논쟁> 서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관동군 출신이라는 데 흥미를 느껴 만주 공부를 시작한 게 <요동사> 저술로 이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한규 교수가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다. 김한규 교수 제공
김한규 교수가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다. 김한규 교수 제공

“나이를 먹으면 굳건한 자기 원칙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서적으로 약해지기도 하고요. 나도 모르게 내가 하는 학문이 현실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그런 원망이 정년 즈음부터 조금씩 생겼어요. 학문의 목적까지는 아니지만 현실 문제에 약간 도움이 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 그의 원망은 뭘까? “요즘 평화 문제에 관심이 가요. 우리도 지금 계속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잖아요. 전쟁과 평화는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모든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반복적 교체이죠. 평화 체제에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전쟁이 났는지 그런 점을 보고 싶어요. 동아시아 역사를 전쟁과 평화 관계로 탐색하는 거죠. 스케일이 큰 작업이라 장담은 못 하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보고 싶어요.”

김 교수를 전화로 만난 11일 봉준호 감독이 미 아카데미 영화제 4관왕에 올랐다. “티브이로 봉 감독 수상 소식을 듣고 머리가 띵했어요.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뒤 고려 일부 인사들은 우리도 중국의 한 성으로 편입시켜 달라고 ‘입성’ 운동을 했어요. 그때 원나라에서 거절했어요. 중국의 성으로 만들 가치가 없는 나라라고요. 원래 중국은 황화 중류의 조그마한 나라였지만 그간 수없이 많은 주변 국가를 병합해 거대한 대륙 국가가 됐죠. 몽골과 일본, 한국, 베트남 네 나라만 버텼어요. 그런데 몽골의 반은 중국 식민지가 됐고 일본은 지리적으로 워낙 특수해 사실상 한국과 베트남만 중국의 군사적 침공에서 살아남았어요. 그 힘이 뭔지 곰곰이 생각했어요. 그때 떠오른 게 문화적 역량이었죠.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적 힘 때문에 중국이 쉽게 편입시키지 못한 거죠.”

가장 좋아하는 시는? “역사를 담은 사시에 관심이 많아요. <시경>의 상당수 시가 그런 시죠. 그 시절 사회상을 담은 유행가입니다. 지금 유행가도 몇백 년 뒤에는 사시가 될 겁니다. 두보의 시도 대부분 사시죠. 그 당시 일반 백성의 리얼한 삶의 모습을 담았어요. 중요한 역사 자료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는 당나라 시인 이하의 시입니다. 시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유로운 영혼과 창의적인 지성의 시인이죠. 두보의 사시나 도연명의 전원시를 즐겨 읽으면서 이하의 초현실적인 시를 좋아하는 것은 일견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원래 지식인의 정신세계란 이처럼 모순되고 다중적이지 않을까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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