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홍익대 윤병렬 초빙교수
윤병렬(66) 홍익대 초빙교수는 독일에서 1983년부터 96년까지 철학을 공부했다. 3년 동안 수학 교사로 있던 경남 마산(현 창원)의 한 고교에 사표까지 쓴 독일 유학이었다. 본대학에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연구로 박사를 따고 귀국했으나 철학 연구자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20년 이상 강사를 하다 만 64살에 홍익대 교양과 교수로 임용돼 딱 1년간 정규직 교수를 지냈다. 지난해 정년 퇴임해 지금은 다시 ‘강사’다. 그는 2004년부터 2년간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도 지냈다.
서양철학 전공자이지만 그의 현재 관심사는 한국 고대철학이다. 2004년 이후 고구려 고분벽화와 선사시대 고인돌 같은 유물에서 한국의 고대철학을 탐색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7년 전 <한국해학의 예술과 철학>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는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을 출간했다. 두 책 모두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올해는 2008년 냈던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철학적 세계관> 개정판을 지식산업사에서 발간했다. 그를 지난 1일 홍익대에서 만났다.
그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인 주작·현무·청룡·백호가 그려진 사신도와 별자리(태양과 달, 북두칠성, 남두육성) 그림의 기원을, 한반도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에서 발견된 별자리 구멍(성혈)과 연결지었다. 2500년 전 청동기 시대 고인돌 덮개돌에 파인 구멍을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같은 별자리로 분석한 국내 고천문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끌어와, 선사시대에 쌓인 별자리 지식과 그 사유체계가 고구려 고분벽화로 이어졌다고 본 것이다.
이런 가설을 토대로 ‘고대 한국인의 철학적 세계관’에 대한 그의 사유가 펼쳐진다. “그림이나 유물로 철학을 읽어내는 연구를 ‘표현인문학’이라고 합니다. 고구려 이전 문헌은 남아 있지 않지만 벽화나 고인돌로 고대 그리스나 중국 못지 않았던 고대 한국인의 철학적 지혜를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분벽화에 나오는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사신도와, 하늘 세계의 동서남북을 주재하는 천문체계인 사수도(태양·달·북두칠성·남두육성)에서 저자가 찾은 철학은 ‘존재의 영혼 불멸과 보살핌 사상’이다. 한반도 고대인들이 인간을 포함해 온 누리를 보살피고 수호하려고 했고, 죽음을 절대적인 허무와 종말로 보지 않고 불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인돌 덮개에 별자리를 새긴 것은 망자의 고향이 하늘의 별세계란 것을 천명한 거죠. 고구려인들은 또 죽음을 하늘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봤어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사후 세계처럼 어둡고 슬프게 그리지 않았죠.” 덧붙였다. “한반도 고대인들은 죽으면 영혼이 북두칠성으로 가서 오래 놀다가 은하의 강을 건너 남두육성으로 돌아간 뒤 삼신할매가 엉덩이를 두들기면 다시 지상으로 온다고 봤어요. 고구려인들은 하늘나라(천공)에 유토피아를 그렸고요. 그들은 땅과 하늘, 빛과 어둠이란 이원론을 극복하고 온 우주를 하나로 봤죠.”
그가 한국 고대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하이데거 영향이 컸단다. “도가사상에 심취했던 하이데거를 연구하려고 도가를 공부했어요. 그러다 우리에게도 도가 같은 심오한 사상이 없나 찾게 되었어요. 독일에서 고구려 벽화를 본 순간 깜짝 놀랐죠. 그림에 ‘정신의 소인’이 찍혀 있더군요.”
고분벽화 연구에 본격적으로 매달린 때는 교수 공채 경쟁에서 번번이 밀려 강사 생활에 회의가 들 무렵이었단다. “300번 정도는 공채에서 탈락했을 겁니다. 강사 생활이 힘들어 어떻게 살까 고민도 할겸 해서 2004년 타이 푸켓으로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리조트에서 하늘을 보니 남두육성이 잘 보이더군요. 그때 고구려 사람들이 그 별자리를 숭배했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고구려인은 남두육성을 모든 생명에 축복을 부여하는 상징으로 봤죠. 그 별을 보며 고분 벽화에 매달려야겠다고 맘먹었죠.”
수학교사 그만두고 1983년 독일로
13년간 유학 ‘하이데거 연구’ 박사 2004년부터 ‘한국 고대철학’에 매진
“고인돌 별자리 체계, 고구려 벽화로”
“이원론 극복하고 온 우주를 하나로”
저서 통해 ‘한반도 철학 고유성’ 강조 그에게 한국 고대 사상의 핵심이 뭔지 물었다. “고조선이나 고구려인들은 세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봤어요. 또 온 우주를 유기적으로 봐, 인간은 ‘코스모스 안에서 의미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죠.” 저자의 작업은 인류 지성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독일 철학자 H. 롬바흐(1923~2004)의 말처럼, 사람들은 결코 ‘미개’했던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선사 시대 사람들은 야만적 도구로 사냥하고 원숭이와 비슷했다고만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들이 고인돌에 별자리를 새긴 것은 해와 달의 움직임이 농사와 배를 타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서이죠.” 이런 한국 고대철학 탐사에 대한 한국철학계의 반응은? “한국 고대철학 연구자 대부분이 유학 전공입니다. 불교나 도교도 중국에서 들어온 걸 연구해요. 고인돌이나 고분벽화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노력은 전무하죠. 고분벽화 연구는 1990년대 후반에야 남한에서 시작했고 고인돌은 고천문학자 몇 분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어요. 문화적 망각입니다. 고대 한국인의 고매한 정신문화를 망각한 거죠.” 그는 두 권의 책에서 한반도 고대 철학의 자생성과 고유함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바로 ‘국수주의’란 비판에 맞닥트린다. “우린 외국에서 온 유교와 불교, 도교만 중심축에 앉히고 이것이 전통철학의 전부인 양 착각해요. 고구려 몰락 이후 불교와 유교가 우리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 된 탓이죠. 우리도 중국 못지않게 보편학으로서 철학을 발전시킨 나라라는 걸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철학에 우리도 기여한 바가 있다는 거죠.” 그는 이미 600쪽이 넘는 연구서 <하이데거와 도가>도 탈고해 놓았다. 계획은? “학계에서 인정하든 안 하든 앞으로 계속 작업할 겁니다. 사실에 입각해 우리 것 가운데 이런 게 있다고 알려주려고요. 한국은 중국의 아류가 아니며 역사 만큼 오래된 사상의 뿌리, 철학의 뿌리가 있다는 걸 알려줘야죠. 홍익인간 사상도 세계철학 지평에서 새롭게 조명하려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정규직 교수 1년 뒤 다시 ‘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윤병렬 홍익대 초빙교수는 지난 삶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죠. 오랜 강사 생활에 결혼도 쉽지 않아 50대에 식을 올렸어요. 아내가 그때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죠 하하.” 그는 독일에 갈 때부터 하이데거 연구를 염두에 뒀단다. 그가 ‘유물로 철학하는 것’도 하이데거로부터 다르게 사유하는 법을 배운 덕이라고 했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탈형이상학적이고 해체적입니다. 유럽의 전통 형이상학과는 달라요. 그에게서 경직되지 않고, 틀에 박히지 않는 사유하기를 배웠죠.” 강성만 선임기자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철학적 세계관> 표지
13년간 유학 ‘하이데거 연구’ 박사 2004년부터 ‘한국 고대철학’에 매진
“고인돌 별자리 체계, 고구려 벽화로”
“이원론 극복하고 온 우주를 하나로”
저서 통해 ‘한반도 철학 고유성’ 강조 그에게 한국 고대 사상의 핵심이 뭔지 물었다. “고조선이나 고구려인들은 세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봤어요. 또 온 우주를 유기적으로 봐, 인간은 ‘코스모스 안에서 의미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죠.” 저자의 작업은 인류 지성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독일 철학자 H. 롬바흐(1923~2004)의 말처럼, 사람들은 결코 ‘미개’했던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선사 시대 사람들은 야만적 도구로 사냥하고 원숭이와 비슷했다고만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들이 고인돌에 별자리를 새긴 것은 해와 달의 움직임이 농사와 배를 타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서이죠.” 이런 한국 고대철학 탐사에 대한 한국철학계의 반응은? “한국 고대철학 연구자 대부분이 유학 전공입니다. 불교나 도교도 중국에서 들어온 걸 연구해요. 고인돌이나 고분벽화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노력은 전무하죠. 고분벽화 연구는 1990년대 후반에야 남한에서 시작했고 고인돌은 고천문학자 몇 분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어요. 문화적 망각입니다. 고대 한국인의 고매한 정신문화를 망각한 거죠.” 그는 두 권의 책에서 한반도 고대 철학의 자생성과 고유함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바로 ‘국수주의’란 비판에 맞닥트린다. “우린 외국에서 온 유교와 불교, 도교만 중심축에 앉히고 이것이 전통철학의 전부인 양 착각해요. 고구려 몰락 이후 불교와 유교가 우리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 된 탓이죠. 우리도 중국 못지않게 보편학으로서 철학을 발전시킨 나라라는 걸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철학에 우리도 기여한 바가 있다는 거죠.” 그는 이미 600쪽이 넘는 연구서 <하이데거와 도가>도 탈고해 놓았다. 계획은? “학계에서 인정하든 안 하든 앞으로 계속 작업할 겁니다. 사실에 입각해 우리 것 가운데 이런 게 있다고 알려주려고요. 한국은 중국의 아류가 아니며 역사 만큼 오래된 사상의 뿌리, 철학의 뿌리가 있다는 걸 알려줘야죠. 홍익인간 사상도 세계철학 지평에서 새롭게 조명하려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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