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
주디스 버틀러의 페미니즘철학 조명
“주체는 끝없는 부정의 과정서 형성,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원초적”
“주체는 끝없는 부정의 과정서 형성,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원초적”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
사라 살리 지음·김정경 옮김/앨피 펴냄·1만2500 주디스 버틀러(사진·51)는 페미니즘 이론의 계보에서 최근 세대에 속하는 철학자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막강해서 페미니즘 이론을 이야기하는 글마다 버틀러라는 이름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여성이 내놓은 논쟁적이고 전복적인 주장은 수많은 쟁점을 만들어냈다. 그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즘 철학자’로 꼽히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에게 따라붙는 또 하나의 타이틀은 ‘퀴어(동성애자) 이론의 창시자’라는 말이다. 버틀러는 자신이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가 동성애에 관한 매우 도전적인 이론을 내세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의 경우엔 동성애를 긍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더 원초적임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라 살리(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가 쓴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은 이 급진 철학자의 사상을 소상히 안내하는 교양서다. 현대 사상의 흐름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이론가들을 소개하는 영국 루틀리지 출판사의 ‘크리티컬 싱커스’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다. 지은이는 버틀러의 초기작 〈욕망의 주체들〉에서부터 〈젠더 트러블〉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흥분하기 쉬운 발화〉를 거쳐 〈권력의 정신적 삶〉까지 주요 저작 전체를 조망하면서, 각각의 저작이 지닌 의미를 살핀다. 버틀러도 난해한 글쓰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다. 1999년 미국의 우익 성향 학술지 〈철학과 문학〉은 버틀러를 ‘최악의 문체’상 수상자로 뽑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글을 불명료하게 쓸지는 몰라도 그런 글을 쓰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문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명료하고 확정적인 문체는 이미 어떤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불투명하고 암시적인 글쓰기는 그 자체로, 진리를 선포하는 듯한 명징한 문체에 내장된 이데올로기적 강요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버틀러의 또다른 독특함은 헤겔 철학을 사유의 모태로 삼았다는 데 있다. 알다시피, 현대 페미니즘 이론을 포함한 이른바 탈근대 철학은 ‘헤겔 반대’를 일종의 구호로 내걸었다. 헤겔 철학이야말로 그들이 거부하는 근대 백인 남성의 이론적 총화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틀러는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해했다. 통상의 해석을 따르면, 〈정신현상학〉은 절대정신이라는 주체가 형이상학적 여행을 떠나 절대지라는 진리를 완성하는 것으로 끝나는 철학적 드라마다. 출발 지점에 이미 주체가 선명히 서 있는 것이다. 버틀러는 이런 해석을 부정하고, 〈정신현상학〉의 주체를 ‘과정 중의 주체’ 혹은 ‘형성 중의 주체’로 이해한다. 끝없는 부정의 과정 속에서 주체가 형성되며, 그 형성 과정은 끝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주체는 완결되거나 완성된 어떤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다. 주체는 언제까지나 미확정적이다. 확정된 주체는 없다. 이 주체 이론을 페미니즘 영역으로 옮기면, ‘여성이라는 확정된 주체는 없다’라는 논리가 도출된다. 통상의 페미니즘 이론이 남성에 대항해 저항의 거점으로 설정하는 여성이라는 주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여성을 포함해 모든 주체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잠정적으로 구성되는 것일 뿐이다. 여성을 여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성으로 지칭된 존재가 여성의 정체성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버틀러는 사회적 성(젠더)이든 생물학적 성(섹스)이든 완성된 채로 미리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런 급진적 논리는 동성애를 다룰 때도 관철된다. 버틀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이 말하는 ‘근친상간 금지’보다 ‘동성애 금지’가 더 앞선다고 주장한다. 부모-자식 사이의 동성애 관계가 금지·억압당하면서 이성애로 방향을 트는데, 여기서 ‘이성애적 우울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우울증 안에 여전히 동성애 욕망이 숨쉬고 있다는 게 버틀러의 통찰 혹은 주장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라 살리 지음·김정경 옮김/앨피 펴냄·1만2500 주디스 버틀러(사진·51)는 페미니즘 이론의 계보에서 최근 세대에 속하는 철학자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막강해서 페미니즘 이론을 이야기하는 글마다 버틀러라는 이름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여성이 내놓은 논쟁적이고 전복적인 주장은 수많은 쟁점을 만들어냈다. 그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즘 철학자’로 꼽히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에게 따라붙는 또 하나의 타이틀은 ‘퀴어(동성애자) 이론의 창시자’라는 말이다. 버틀러는 자신이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가 동성애에 관한 매우 도전적인 이론을 내세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의 경우엔 동성애를 긍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더 원초적임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라 살리(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가 쓴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은 이 급진 철학자의 사상을 소상히 안내하는 교양서다. 현대 사상의 흐름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이론가들을 소개하는 영국 루틀리지 출판사의 ‘크리티컬 싱커스’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다. 지은이는 버틀러의 초기작 〈욕망의 주체들〉에서부터 〈젠더 트러블〉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흥분하기 쉬운 발화〉를 거쳐 〈권력의 정신적 삶〉까지 주요 저작 전체를 조망하면서, 각각의 저작이 지닌 의미를 살핀다. 버틀러도 난해한 글쓰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다. 1999년 미국의 우익 성향 학술지 〈철학과 문학〉은 버틀러를 ‘최악의 문체’상 수상자로 뽑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글을 불명료하게 쓸지는 몰라도 그런 글을 쓰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문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명료하고 확정적인 문체는 이미 어떤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불투명하고 암시적인 글쓰기는 그 자체로, 진리를 선포하는 듯한 명징한 문체에 내장된 이데올로기적 강요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주디스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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